"벌꿀 같은 하루"

기억의 단맛

by 애나 강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늦은 오후,
주방 한편에 놓인 작은 유리병을 바라본다.
꿀빛이 유리벽에 고요히 번져, 오래된 기억을 깨운다.

어릴 적, 감기에 시달리던 어느 겨울.
엄마는 늘 꿀 한 스푼을 뜨거운 물에 타 주셨다.
잔을 감싸 쥔 손끝에 스며들던 온기,
목 안을 천천히 적시던 달콤한 위로.
아픈 것도, 서러운 마음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잦아들었다.

살아가다 보면 세상은 종종
쓴맛이나, 짠맛, 혹은 무채색의 공허함을 들이민다.
그럴 때 나는 꿀을 꺼낸다.
뜨거운 차에 타서 천천히 저어 마시거나,
바삭하게 구운 식빵 위에 조용히 한 줄을 그어 올린다.
단맛은 늘 과하지 않게, 하지만 충분히 다정하게,
내 하루의 균형을 되찾아준다.

꿀은 벌이 만든 느린 기적이다.
작은 날갯짓으로 수천 송이 꽃을 오가며 모아온 인내,
시간과 바람이 함께 익혀낸 자연의 선물.
그래서일까. 꿀을 바라보면 늘 느린 삶이 생각난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조금 돌아가도 결국 도착한다는 것.
꿀이 달콤한 건 당분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기다림의 온기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의 나는, 나에게도 꿀을 바른다.
후회와 피로로 굳어진 마음에
다정한 문장 한 줄을 써 내려가며 스스로를 어루만진다.
“괜찮아. 너는 오늘도 충분히 잘 살아냈어.”
그 말을 곱씹는 사이, 하루의 거친 모서리가 서서히 녹아내린다.

유리병 속 꿀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가 내게 남겨준
작은 온기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필요할 때마다 한 스푼 떠서 삶에 녹이면
세상은 덜 차갑고, 내 안의 속도도 부드럽게 늦춰진다.

오늘도 나는 벌꿀을 한 스푼 들어 올린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내 안의 달콤함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다짐한다.
언젠가, 내 삶도 누군가의 하루에
꿀 한 스푼 같은 위로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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