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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사 Sep 14. 2020

기술사 취득기 #1 왜 기술사를 따려고 하는가

건축시공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 1년 5개월 정도가 흘렀다. 기록을 잘 남겨서 기술사에 도전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지만, 한편으론 '내가 뭐라고 이런 글을 쓰나..' 싶기도 했다. 더 잊히기 전에 이제라도 찬찬히 기록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글은 '나는 왜 기술사도전했는가'이다. 이 질문은 공부를 시작함에 있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기간은 다르겠지만 기술사 공부는 마라톤과 같은 장기 레이스다. 그렇기에 이 질문의 답이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포기하게 될 확률이 더 높다. 끝까지 달릴 수 있는, 그리고 달려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함께 공부를 하던 이들 중, '그냥 한 번 해보자' 하고 시작했던 사람들은 다 중도포기를 선언했다. "이렇게까지 내 일상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할만한 건 아닌 것 같다"하는 말을 하면서. 나 역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좋은 날씨에 독서실에 처박혀 있나' 하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붙들어준 대답이 있었다.


그것은 '한 곳에 정착하고 싶어서'였다.


대학교 졸업 후 건설회사에 취직을 했고, 바로 건설현장에 투입되어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냈다. 처음엔 지방뿐 아니라 해외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고향인 서울을 떠나 지방 오지에 혼자 떨어져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침 7시 출근도,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에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다. 내가 외로움이란 감정에 유독 약했는지도 모르겠다.


두 개의 현장을 준공하고 나니 4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나이도 어느새 서른 살이 넘어 있었고 결혼도 생각할 나이였다. 하지만 기약 없는 떠돌이 생활에 지쳐있었고, 이렇게 살다간 결혼도 못하고 내 삶을 의미 있게 꾸리지 못할 것 같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방법은 본사 발령 아니면 이직이었다. 마침 본사에 가고 싶은 부서가 있었고, 그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어디 현장에 누구입니다. 그 부서에서 꼭 일하고 싶습니다!" 좀 무모했지만 그만큼 간절함이 있었다. 다행히도 그 부서장은 나를 건방지기보다는 패기 있는 직원이라고 생각해주셨고, 전화를 한지 딱 6개월 후에 그 부서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 본사 생활은 꽤 만족스러웠다. 정장에 사원증을 매고 빌딩 숲 사이를 누비니 이제야 진짜 직장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현장으로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엔지니어가 계속 본사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길어야 5년이라고 생각했고 그 안에 승부를 보아야 했다. 한 곳에 정착해서 일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을 찾아가리라.


이직 시장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지원서를 냈지만 쉽지 않았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러던 중 정말 가고 싶은 회사에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 최종 발표가 나던 날의 절망감을 잊을 수 없다. 알아보니 나보다 더 좋은 회사에서 경력이 더 많은 사람이 뽑혔더라. 수긍이 가는 결과였다.


이직 시장에는 나보다 좋은 대학 나온 사람, 더 큰 회사를 다니는 사람, 스펙이 뛰어난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시 대학을 나올 수도, 이제 와서 다시 신입사원 공개채용 시장에 뛰어들 수 없으니 이걸 뒤집을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그것은 '기술사'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이미 각자의 답을 가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코스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생각했다. "계속 그렇게 살래? 회사에서 '여기로 가라' 하면 아무 말 못 하고 가야만 하는, 기러기 아빠로 아이들 크는 것도 못 보고 그렇게 살래?"


그 답의 약발이 떨어질 것을 대비하여 또 다른 대답을 준비하기도 했다. 나는 재수를 해서 대학을 갔지만 누군가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니?' 묻는다면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물론 딴짓 안 하고 책상에 앉아서 열심히 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다시 되돌아간대도 그때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하지는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어떠한 목표를 위해 '이렇게 하다가는 죽겠다' 싶을 정도로 미쳐본 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을 그렇게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책상에 어디선가 읽은 문구 하나를 써붙였다. "실패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은 몇 배나 더 고통스럽다."


이 두 가지 대답은 화창한 봄날 벚꽃이 필 때, 다들 놀러 가는 여름휴가 시즌에, 시끌벅적한 연말에 나를 굳게 잡아주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 안 나갈 때도, 회식에 불참할 때도, TV 프로그램 하나 못 볼 때도 나를 흔들리지 않고 버티게 해 주었다.


그렇게 1년 4개월이 지났고,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다. 시간을 돌려 처음 공부를 시작했던 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그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대학을 합격했을 때나 취직을 했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기뻤다.


아마 공부를 시작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승진을 위해, 더 많은 월급을 받기 위해, 이직을 위해, 자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자랑스러운 남편이자 아빠가 되기 위해, 나의 한계에 도전해보기 위해 등. 무엇이든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WHY다. 왜 하는가. 그것이 명확해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진급 안 하고 말지 뭐', '이미 자랑스러운 남편이고 아빠일 거야' 등 자기 합리화와 함께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자격증을 따지 않으면 안 되는, 무조건 따야만 하는 나만의 간절한 이유를 만들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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