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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Nov 16. 2021

우주의 한 점 먼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딩크족이다. 글쓰기의 최소원칙이라는 책에서 그는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요.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면, 그럼 세계는 뭐냐?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죠. 저는 우주에 관한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빅뱅 같은 천체물리학에 관한 책들을 좋아하고, 스티븐 호킹의 책도 좋아해요. 그 책들을 보면서 우주에서 신성을 보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우주의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세계도 바꿀 수 있고, 그밖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저는 그 반대편에 있어요. 저는 인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봐요. 물론 영생에 대한 관념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관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것에 관해서는 뭐랄까, 아주 오래전부터 도저한 허무주의를 갖고 있었어요. 제가 20대 후반에 쓴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보신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 앞으로도 저는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작가 김영하와 나는 각각의 독립변수다. 그가 아이를 갖지 않는 것과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김영하 작가 개인의 자유다. 그가 아이를 갖지 않는 것에 대해 특별한 의견을 남길 생각도 없다. 다만, 우연히 읽은 김영하 작가의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에는 유독 눈이 가는 구절이 있다.






 인생이라는 경주에서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 지금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 보다 경사가 급하다. 모순되게도 이러한 길을 지금까지 달려왔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야 한다. 누군가를 제치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지금보다 느린 속도로 달릴수록 몸에 두르고 있는 의무와 책임의 무게가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김영하 작가처럼 거창하게 허무주의라고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허무주의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냥 이따금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주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내가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불멍, 물멍, 바람멍이 생각나는 이유도 이러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가끔은 모든 게 다 허무하게 느껴진다. 김영하 작가의 표현처럼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고 우주의 먼지 한 점에 불과하다. 숨이 곧 멎을 것처럼 치열하게 달리고, 무언가를 포기하고, 마음을 감추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결국 마음속에 남는 것은 응어리진 한과 목으로 삼킨 눈물뿐인데 말이다. 여기에 서글픈 마음과 상처는 덤이다. 그러다 보면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다. 머릿속에서 펼쳐진 지옥도에서 아수라가 되어 도륙과 파괴를 일삼는 상상을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끝없는 경주를 결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성이라는 바위에 감성이라는 달걀을 아무리 던져도 바위는 꿈쩍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이유도, 열심히 달려야 할 이유도 있다. 이유가 족히 100개는 넘는다.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단 하나의 허무한 감정이 100개의 이유를 결코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깊고 어두운 늪에 몸이 조금은 잠긴다. 그렇게 우주의 한 점 먼지처럼 허무에 몸을 맡기고 정처 없이 유영하는 일탈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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