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영국 Aug 11. 2022

생각의 총량

레벨 업을 꿈 꾸는 웃픈이의 현실

게임에서 흔히 쓰이는 개념 중에 하나로 HP와 MP라는 것이 있다. HP는 Health Point, MP는 Mind Point의 약어다. 게임 내에서 HP가 0이 된 캐릭터는 사망한다. MP가 0이 되면 마법이나 특기를 사용할 수 없다. 이런 특성에 따라 HP와 MP를 단순히 우리말로는 체력과 정신력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나의 MP는 굉장히 낮다. 현실세계에서 마법과 같은 비현실적 능력을 사용할 수 없지만 그래도 MP는 중요하다. 나는 현실세계에서의 MP의 개념을 생각의 총량으로 이해한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항시 존재하는 잔존 생각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 가족의 안위와 투자가 그것이다.


두 가지 생각은 어찌 보면 연결되어 있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길 바란다. 늘 행복하길 바란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한 달에 내가 얻는 근로소득은 고정적이다. 바꿔 말하면 근로 소득은 한계치가 있다. 퇴직하기 전까지 얻을 수 있는 총소득을 유추할 수 있다. 즉, 내가 얻을 수 있는 총소득으로 나는 가족의 안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책임저야 한다. 한정된 소득이라는 조건 덕분에 투자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총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가끔 이 두 가지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녀석이 있다. 업무와 관련한 생각이 그것이다. 결혼해서 독립된 나의 가족이 생기기 전, 내 머릿속 생각 거의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했던 것은 아마 업무 생각이 맞을 것이다. 개인의 성장이나 성취감, 이런 거에 푹 빠진 때도 있었다. 지금 그러한 것들은 전부 사치다. 가끔 불쑥 비집고 들어오는 업무에 대한 생각도 최대한 적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만큼 지금의 나에게는 가족과 투자가 내 생각의 전부다.


돌이켜보니 삶이 참 단순해졌다. 생각의 절반은 그저 우리 가족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족과 관련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생각한다. 나머지 절반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일상의 루틴이 단순해졌다. 늘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와서 같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탄다. 같은 승강장 위치에서 지하철로 환승해 비슷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한다. 최소한의 생각과 노력으로 최대한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비슷한 시간에 퇴근한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 사이에 사소하고 단순한 생각이 끼어들 틈은 없다. 딱히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간혹 생각의 총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끼어들면 스스로에게 스로틀링(과부하)이 걸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살고자 한다. 필요한 생각만 간결하게 하고 싶다. 더더욱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싶다.


게임 속 캐릭터는 레벨이 오를수록 HP와 MP의 최대치가 증가한다. 게임 속 캐릭터와 다르게 현실의 나는 갈수록 HP의 한계치가 감소한다. 간신히 MP의 한계치가 감소하지 않도록 안감힘을 쓰고 있다. 웃픈 현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한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