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차 상담일지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해볼까 상담실에 도착하기 전 잠깐 고민을 해본다. 오늘은 제발 울지 말자고 다짐도 해본다.
오늘도 지난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로 상담을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유난히 바쁜 날이었고, 특히 면접을 봤는데 잘 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면접 이야기를 하면서 4년 전 억울하게 권고사직을 당했던 그날로 돌아갔다. 면접에서 날 좋게 평가했던 그 면접관, 그리고 나도 좋은 인상을 받았던 그 면접관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변호사와 회의를 끝내고 온 그녀는 전 사원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그 변호사가 멍청하다고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회사의 개발자들의 텃세는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다. 온보딩 기간은 보통 3개월을 주는데 1개월 만에 내가 적응하지 못한다며 퇴사를 권고했다. 나도 그들의 평가 이상의 적대시하는 눈빛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나가겠다고 했다. 회사에서 퇴사하자마자 그동안 쌓인 독소가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대상포진이었다.
그 이후로 2번의 이직으로 회사에서 잘 적응하고 일을 했음에도 그 경험으로 인해 면접을 보고 초반에 회사에 적응할 때마다 그때 그 상황이 반복될까 봐 두렵다. 그래서 면접을 잘 봤다고 느낌에도 불안하다. 그때도 면접을 잘 봤다고 느꼈으니까.
이렇게 나 혼자서만 알고 있었던 일들을 제삼자에게 풀어놓으니 그동안 외면했던 집안일을 치운 느낌이 들었다. 특히 냉장고 청소를 끝낸 기분이 들었다. 매일 냉장고 문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고 다시 넣어두는데, 저 깊숙한 곳에 이미 상해서 곰팡이가 핀 음식물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만 하고 엄두가 나서 꺼내지 못한 것을 마음먹고 버린 기분이다.
속이 다 시원했다.
이날 상담을 받고 실제 냉장고 청소를 했다. 10년 만에.
물론 두 차례의 이사로 그때그때 냉장고를 옮기면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긴 했지만, 직접 내가 하진 않았다. 이삿짐 센터 아주머니가 넣어놓으면 그대로 생활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고 묵힌 음식물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냉장고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언젠가는 청소를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다가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쉬는 시간이 생기면서 내 손으로 직접 냉장고 청소를 했다. 3분의 2를 다 버렸다. 냉장고 안 구석구석을 다 분해해서 식초와 물을 섞어 열심히 닦았다. 내 속도 깨끗해지길 바라면서.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등은 벌써 푹 젖었다. 냉장고 안 공간이 이렇게 넓었나, 이렇게 환했나 싶을 정도로 빈 공간이 생겼다. 2시간 정도 청소를 하고 그날 깊게 잠에 들었다. 묵혔던 감정, 음식물 모두 잘 처리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