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쉐도우 스피킹의 허와 실
쉐도우 스피킹은 많은 학습자가 택하고 있는 회화 학습법이다. 뜻 그대로, 그림자처럼 특정 스피커의 소리를 따라가면서 흉내 내는 학습이다.
그러나 쉐도우 스피킹으로 누구는 효과를 보고 누구는 (대다수) 효과를 보지 못한다. 쉐도우 스피킹이 애초에 과연 효과가 있는 학습법인지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쉐도우 스피킹은 소리 개선에는 확실히 효과가 있지만, 스피킹의 핵심인 문장 구사력 향상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쉐도우 스피킹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효과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쉐도우 스피킹의 정의
먼저, 쉐도우 스피킹이라고 해서 다 같은 쉐도우 스피킹이 아니다. 누구는 영어 스크립트를 보고 누구는 안 보고 하고, 누구는 영상을 중간중간 끊어 가며 따라 하지만 누구는 멈춤 없이 쭉 이어간다.
쉐도우 스피킹에 대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 다른 종류의 쉐도우 스피킹을 생각하며 갑론을박하기 때문이다. 쉐도우 스피킹 방식에 따라서 효과도 달라진다.
필자는 학습 목적에 따라 쉐도우 스피킹을 정의하도록 하겠다. 학습 목표가 있어야 이에 따라 구체적인 방식이 도출될 수 있다. 쉐도우 스피킹에는 딱 하나의 정도(正道)가 있는 게 아니다. 학습 목표에 따라 학습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당연히 목표 설정과 학습 방식에 따라 효과도 달라진다.
필자는 쉐도우 스피킹의 목적을 ‘영어 소리’ 개선 단 한 가지로 잡겠다. 영어 소리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있다.
∙발음: 개별 단어의 소리
∙인토네이션: 문장 내의 높낮이 조절
∙리듬감: 어디서 이어 읽고 어디서 끊어 읽는가
∙강세: 강약 조절
쉐도우 스피킹을 통해 조금 더 나은 발음, 인토네이션, 리듬감, 강세를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원한다면 소위 영국식 엑센트, 미국식 엑센트를 습득할 수 있다. 억양 역시 소리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쉐도우 스피킹이란 영어 소리 개선을 위해 특정 화자의 영어를 ①듣고, ②따라 말하는 학습이다. 이러한 정의하에, 어떤 방식으로 쉐도우 스피킹을 연습해야 할까?
쉐도우 스피킹 방식
소리 개선이라는 목적에 충실하면 다음과 같은 학습법을 도출할 수 있다.
1. 소리의 모든 걸 다 따라 한다.
따라 하고자 하는 스피커의 발음, 인토네이션, 휴지, 말하는 습관, 엑센트, 웃는 소리, 강약 싹 다 100% 따라 한다. 베끼려는 스피커가 하나의 답지이므로 그 스피커와 최대한 비슷해져야 한다.
2. 영어 스크립트? 상관없다.
영어 스크립트를 보고 해야 할까 보지 말고 해야 할까? 결론은 상관없다. 왜냐하면, 영어 스크립트를 보고 읽으나 안 보고 읽으나 소리만 똑같이 따라 한다면 소래 개선이라는 목적에는 똑같이 부합하기 때문이다.
차이점을 말하자면, 스크립트를 보고 읽을 때는 문장을 스스로 기억하고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온전히 소리 베끼기에 집중할 수 있다. 반면 같은 이유로 스크립트가 없으면 소리 개선에 집중할 수 없다. 100% 소리 개선에 집중하고 싶다면 스크립트를 보고 하는 게 보다 효율적이다.
3. 자료 난이도? 상관없다.
자료 이해도가 얼마나 되는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아예 이해하지 못하나 100% 이해하나 소리만 그대로 베낀다면 그 효과는 똑같다. 단어의 뜻을 몰라도 읽을 수 있고 따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영어 소리는 영어 이해와 별개이다.
단적인 예로, 필자는 독일어를 읽을 줄은 안다. 그러나 이해도는 0이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자료로 쉐도우 스피킹을 하나 자료 난이도는 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따라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발음 및 인토네이션이 개선될 것이다. 이처럼 이해 (독해 및 리스닝)와 소리 내기 (발음 및 인토네이션)은 독립적이다.
결론적으로 난이도를 떠나서 그냥 자기가 닮고 싶은 스피커를 골라서 쉐도우 스피킹 하면 된다.
4. 반복한다.
쉐도우 스피킹은 기본적으로 올바른 소리 Input을 들은 다음 이를 바로 베껴서 자신의 Output으로 내뱉는 과정의 연속이다. Input과 Output 모든 단계에서 반복이 피수이다.
∙Input
소리를 따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확하게 들어야 한다. 안 들리는데 어떻게 따라 할 수 있겠는가? 들리지 않는 부분은 당연히 들릴 때까지 되감기 하며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
눈치 채신 독자가 계시겠지만, 소리 개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료의 리딩 난이도는 중요치 않지만 리스닝 난이도는 가급적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듣기 반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스피킹이 아닌 리스닝 공부를 하게 된다.
∙Output
정확한 소리를 캐치했으면 그대로 따라서 실제로 말해 보아야 한다. 진짜 소리 개선 단계이다. 들린다고 절대 비슷하게라도 말해지지 않는다. 토익 LC 받는다고, 미드다 들린다고 그들의 발음과 인토네이션처럼 말하지는 못한다.
습득한 Input을 실제 Output으로 낼 수 있도록 반복해서 입을 벌려 연습해야 한다. 그냥 연습이 아니라 최대한 스피커의 모든 소리를 따라 하면서 반복해야 한다.
5. 말하기 속도는 예외이다.
앞서 네이티브 스피커의 모든 걸 따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속도는 따라가지 않아도 된다. 자료 말하기 속도가 너무 빨라서 쉐도우 스피킹을 못 하겠다는 학습자들이 있다.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째, 속도가 느린 자료로 바꾼다. 둘째, 만약 들리기는 한다면, 듣는 건 그대로 듣고 따라 할 때는 속도를 늦춰서 연습한다.
예를 들어 스피커가 'military officials are investigating a terrorist attack that happened in Northern Syrian Wednesday'를 2초 안에 말했다고 치자. 그럼 듣는 건 그대로 2초로 듣고, 따라 말할 때는 4초가 됐건 8초가 됐건 발음, 인토네이션, 강세, 리듬감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말한다.
만약 속도부터 따라가려 그러면 이 모든 요소들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춤을 배울 때 처음에는 천천히 자세를 하나하나 배우고 나서야 빠르게 이어서 춤을 출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우선 속도를 제외한 나머지 소리가 입은 후에야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사실, 속도는 문장이 입고 나서 반복할수록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지켜야 할 점은 반드시 속도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그대로 베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속도를 따라가지 않는 이유가 나머지 요소를 완벽히 얻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소리 개선 쉐도우 스피킹 효과와 한계점
위 방식으로 학습하면 한 가지 결과는 확실하게 얻을 수 있다. 따라 했던 화자처럼 영어 스크립트를 보고 읽을 수 있다. (보고 읽는 것과 보지 않고 말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유의하자) 나중에는 음성 파일이 없는 글도 마치 그 스피커처럼 읽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학습 목적이 소리 개선이었고 방식도 정확히 소리 카피에 집중되었었기 때문이다. 만약 리스닝 난이도가 높은 자료를 골랐다면 리스닝도 같이 향상할 수 있다. 따라 하기 전에 들릴 때까지 어쩔 수 없이 반복해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계점도 분명하다. 여기서 소리 영어와 머리 영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리 영어는 이미 설명했다시피 올바른 발음, 인토네이션, 강세로 영어를 읽을 수 있는 목소리 능력이다.
반면에 머리 영어란 문장 구조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 문장을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생산 능력이다. 머리 영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문장을 만들 때 단어 연상과 문법 조합하는 적극적인 연산, 계산 사고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머리 영어는 다른 말로 Fluency, 즉 유창성이다.
쉐도우 스피킹의 한계는 Fluency를 전혀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리만 카피할 뿐이지 영어 문장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스크립트를 보고 그대로 말하거나 방금 들은 내용을 외워서 따라 말할 뿐이다. 필요한 단어를 떠올리고 문법에 기반해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보아야 하는데 이미 정답지가 눈앞에 있으니 두 과정 모두 연습할 수 조차 없다.
Fluency를 기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라이팅이다. 쉐도우 스피킹의 극단에 있다. 라이팅으로는 소리 영어를 개선할 순 없지만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문장을 계속해서 구사하기 때문에 머리 영어를 향상할 수 있다.
피아노를 비유로 들겠다. 피아노를 잘 친다 함은 청명한 소리로 어떤 곡이든 막히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청명한 소리는 어떤 자세로, 어떻게 건반을 누르는가에 달려있다.
반면에 곡을 실제로 연주하는 건 악보를 얼마나 빠르게 손의 움직임으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둘 다 중요하지만, 동시에 둘 다 독립되어있다. 소리는 좋은데 연주는 전혀 못할 수 있고, 소리가 엉망진창인 상태로 막힘없이 연주할 수도 있다.
소리 개선 쉐도우 스피킹은 피아노의 청명한 소리를 내기 위함이지 악보를 손의 움직임으로 치환하는 능력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소리는 기본적으로 입에 익히는 것이며 문장 구사력은 입이 아닌 머리에 영어를 익히는 완전히 다른 작업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
필자도 과거 쉐도우 스피킹을 했었다. 자료는 CNN 10으로 했었다. CNN 10은 청소년을 위한 CNN으로 다방면에서 CNN보다 쉽다. 필자는 그 당시 자료 이해도가 리딩 기준 50~70%, 리스닝 기준 30% 미만이었다. 기간은 약 1달 정도 매일 30분씩 했다. 방식으로는 총 3가지 단계로 학습했다.
Step 1. 영어 스크립트 보고 이해하기
이때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한영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럼 95% 이상 이해할 수 있었다.
Step 2. 반복 말하기 연습
듣고→멈추고→따라 말하고→뒤로 돌려서→다시 듣고→멈추고→따라 말하고를 5번 정도 반복했다. 따라 말할 때 가급적인 앵커와 똑같이 말하려고 노력했다.
Step 3. 연기하기
앵커를 따라 스크립트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하면, 다음에는 복습 차원에서 앵커 없이,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스크립트를 앵커가 말하듯이 연기하면서 따라 읽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확실한 건 발음과 인토네이션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1년도 아니고 1달 만에 매일 보던 CNN 10 앵커만큼은 아니지만 얼추 그와 비슷한 억양으로 말할 수 있었다. 필자는 종종 발음 좋단 얘기를 듣는데 이때 다 개선했다.
하지만 1달쯤 하고 그만뒀다. 왜냐하면, 비록 앵커처럼 아메리칸 억양으로 영어를 읽을 순 있었지만 결코 그처럼 문장을 구사하진 못 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단어, 문법, 문장 구조의 1/100도 따라갈 수 없었다. 회화 스터디 가서도 여전히 하는 말만 했고 버벅거리기 일 수였다.
정리하자면, 소리 개선을 목적으로 쉐도우 스피킹을 하면 높은 확실성으로 소리를 개선할 수 있다. 즉, 청명한 피아노 소리를 낼 수 있다. 영자 신문을, 영어 대사를 맛깔나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영어 스크립트를 뺏기는 순간 예전과 똑같이 말 한마디 뻥끗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영어 문장 구사력인 Flueny 영역은 전혀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쉐도우 스피킹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읽을 순 있지만, 자연스럽게 영어를 말할 수는 없다. 겉보기에는 잘해 보이는데 막상 시켜보면 못하는 빚 좋은 개살구가 되기 일 수이다.
이러한 결론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Fluency (머리 영어)를 개선하려면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할까? “. 이 물음은 소리 개선과는 완전히 다른 주제이기 때문에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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