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에 타임라인이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현실에선 완벽히 지워진 내 족적이 주황색 점으로 표시돼있었고,
그 점을 클릭하면 해당 장소 방문 일자까지 나타났다.
이제껏 딱히 신경 쓴 적이 없어 몰랐는데
이 가상의 흔적은 (거주지인 한국에서 찍힌 것을 빼고) 모두 3년 사이에 남은 것이었다.
돌아보면 첫 해외여행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해
열 개 나라에 다녀오는 데 걸린 시간은 너무 짧아 신기하다.
난 스물여섯 살에 비행기를 처음 탔다. 그 전까진 외국은커녕 제주도도 못 가봤다.
(사실 제주도는 아직도 안 가봤다.)
중학생 때 외국에 가보고 싶다는 바람을 처음 가졌다.
그 무렵 TV에선 ‘지도 밖으로 거시기하라’라는 대찬 제목을 단 책과 그 책의 저자가 자주 소개됐다.
저자는 외국에서 역경, 극복, 이따금 사랑까지 경험했다는 극적인 모험담을 푼 뒤에 “당신도 나가라”며 말을 끝맺었다.
'저거다'
국경 밖으로 나가면 깨달음부터 명예까지 거머쥐는 비결을 발견할 줄 알았다.
다만 정확히 어느 도시에 있는지 모르니 어디선가 들어본 모든 지명을 종이에 적었고,
그렇게 만든 초라한 보물지도를 한동안 지갑에 넣어 다녔다.
스무 살이 되면 아르바이트로 착수금을 모은 뒤 비기를 찾으러 갈 거라 속으로 되뇌면서.
정작 스무 살이 되고 나니 보물찾기보다 흥미로운 게 많았다.
찾던 비결이 어디에 있는지는 여전히 몰랐지만 재미는 청담동과 홍대에서 특히 쉽게 찾아졌다.
보물지도 대신 지하철 노선도를 봤고, 비행기 표 한 장 대신 프리드링크 쿠폰 몇 십장을 사고 나니 외국은커녕 집에도 맘대로 못 가는 군인이 돼있었다.
그 뒤로 몇 년간은 이러 저런 이유로 보물도 재미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스물여섯 살이 됐다.
우연이 겹쳤다.
2학기 개강 전, 종강 후 스키장에서 며칠 동안 놀다 오자고 친구와 약속했었다.
때문에 학기 중 기자단 활동으로 번 돈을 모아뒀었는데 파투가 나버렸다.
웬일인지 학교에선 교수들이 그 해 연봉인상분을 쾌척해 장학금을 만들었고,
그 돈은 학기 중 일부 학생 통장으로 입금됐다.
내가 그 장학금의 수혜자였고, 부모님은 용돈으로 쓰라며 내게서 돈을 돌려받지 않았다.
뜻밖의 목돈에 마음이 설레 ‘뭘 살까’, ‘뭘 할까’를 생각했다.
어느새 일본행 비행기 표를 사고 있었고,
그로부터 얼마 뒤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