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 (2/4)

의 과정

by 기미닉

한 번의 생활 반경 이탈이 삶의 전환으로 이어졌다는 사연은 의외로 흔하다.

모세는 돌연 가출한 뒤 타지 않는 나무를 발견했단다.

그 뒤로 유대인의 박해자에서 인도자로 거듭났단다.

옛날 옛날 한 옛날 양반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TV에선 그런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N년째 살고 있어요”

따위의 사연을 푸는 외국인들…



000088700015.jpg Kyoto, Japan. 2017


실망스럽게도 난 그런 류에 속하지 못했다.

첫 출국 전후의 차이라곤 도장 하나가 찍힌 여권이 생겼다는 사실뿐이었다.

예상 못 한 일이 생기긴 했다.

사증 한 장을 채웠다는 뿌듯함이 생기니 채워지지 않은 페이지가 휑뎅그렁해 보였다.


나머지 장도 전부 채우고 싶었다. ‘가능할까’라는 회의가 들긴 했다.

첫 여행을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이루는데 10여 년이나 걸릴 일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저 내가 게을러 더럽게 오래 미뤄진 거지.

‘어쩌면 나머지 장을 채우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나만 노력하면 할 수 있는 것.

생각이 그렇게 이어진 뒤엔 여행의 의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단지 ‘하고 싶은 것뿐 아니라, 해야 하는 것’으로.

난 동방삭이 아니니 ‘가능한 한 빨리’라는 단서까지 붙어서.

그런 맘으로 갔던 나라들이다.

베트남, 또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대만, 다시 일본, 스페인, 그리고…

London, UK. 2018


여행 얘기를 하다 보면 “어디가 제일 좋아?”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런 질문엔 “왜? 뭐가?”라는 연계 질문이 붙는다.

그럴 때면 대개 그 순간 생각나는 곳을 말한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못지않게 답하기 어려워 그러는데,

이 질문들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여행을 하며 좋아한 것은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어느 나라에 가던, 제일 좋았던 것은 상황이었다.

정확히는 상황 연출에 성공한 뒤 느끼는 자아도취였다.

(그런 감정을 느낄 땐 대개 실제로 약간 취해있기도 했고.)


2018년 7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서너 바퀴쯤 돌고 다니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센강 물가에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서성이다 적당히 그늘진 곳 맨바닥에 퍼질러 앉아 가방을 열었다. 세 시간쯤 전에 근처에서 산 샴페인 한 병과 바게트 햄치즈 샌드위치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 뒤, 이어폰을 꽂고 멜론에서 에디트 피아프 앨범 하나를 통째로 목록에 담은 뒤 재생 버튼을 눌렀다.

멀리 에펠탑 너머에서 지는 노을을 보며 병나발을 불었다.

샴페인 한 모금이 넘어갈 때, ‘사랑의 찬가’의 마지막 구절을 들을 땐 “크으으으” 소리까지 내면서.

그 순간 했던 생각.

‘와 씨 개 멋있어’

‘좋구만, 프랑스.’


Paris12.jpg Paris, France. 2018

‘프랑스’, ‘파리’

이름은 생소하지 않았지만 도착하고 보니 그곳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랜드마크 몇 개, 빵, 와인, 샹송 따위의 지엽적인 키워드,

그리고 미디어에서 본 파리의 낭만적인 이미지가 그곳에 관해 알던 거의 전부였다.

그러니까, 흡족해하며 떨어댄 주접은 몇 안 되는 정보와 막연한 환상을 뒤섞어 만든 상황이었다.


그때의 나를 타자의 눈으로 보면 해석은 달라진다.

아무데서나 얼굴이 붉어지도록 노상을 까대는 쬐깐한 알콜홀릭 동양인.

동시에, 해변에 드러누워 앙드레가뇽을 찾던 언젠가의 허세근석. 그 정도?

맞는 말이다. 심지어 당시의 나조차도 그 순간이 완벽하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사실 샴페인은 가방에 들어있던 몇 시간 사이 미지근해졌고, 빈약한 안주는 퍽퍽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상상이 실현됐으니까.

그것으로 족했다.



Firenze, Italy. 2018




상상을 경험하는 것, 그래서

여행은 하고 있다는 자체로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자각몽은 달콤할수록 깨기 싫은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