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원. (3/4)

을 위한

by 기미닉


늘 마음 한편으론 불안했다.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그러면 안 된다는.

이제 와 돌아보면 기를 쓰고 다음 여행을 계획했던 이유는

일면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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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irona, Spain (R) Barcelona El Prat Airport, Spain, 2019


2019년 11월 18일 바르셀로나.

모로코행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버스 정류장으로 가던 길에서였다.

휴대폰을 제외한 귀중품 전부를 도난당해 그날로 귀국했는데,

넋이 완전히 빠져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땅에 박고 실실댔다.

입국장 문에서 나온 뒤에야 정신이 조금 들었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국의 공항 도장이 찍힌 여권 사진은, 필름카메라를 들고 찍은 내 사진은 사라진 물건들의 영정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입국과 동시에 구멍 뚫린 단수여권, 영사관에서 엄청난 수수료를 떼고 전달받은 유로화 지폐 몇 장만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주머니 속에서 구겨졌다.


다음 날부터 다시 출국할 채비를 했다.

여권 재발급 신청을 했고, 카메라 등 없어진 물건들을 다시 샀다.

없어진 물건과 달리 설렘은 일주일 사이에 구해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사건 발생 약 일주일 뒤, 당초 예정대로 파리 카타콤에서 해골 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KakaoTalk_20211201_113134848.jpg Catacombes de Paris, France, 2019


재출국은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아지고 싶어 구태여 내린 결정이었다.

외려 망설임만 늘었는데, 그건 뭐랄까... 마음 재판이었다.

‘털린 금액으론 모자라?’, ‘그만한 가치가 있어? 진짜? 뭐가?’, ‘이제 백순데 다음을 기약하는 게 낫지 않아?’…

포기 측은 쉴 틈 없이 질문하며 시도 측을 닦아세웠고, 계속해서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증거로 제시했다.

시도 측은 측은할 정도로 무기력했다.

애써 외면했을 뿐, 유모차에서 젖병을 빠는 아기마저 부러웠던 그 상황을 또 겪을까 봐 지레 겁이 났던 거다.

공방은커녕 공세만 있던 재판의 결과였다.

‘주문, 출국.’

망설였던 이유도, 그래서 더욱 어이없는 판결의 이유도 무서움 때문이었다.

시도 측이 변론조차 하지 않고 우물거리기만 하다 패소하는 판례가 생기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그 재판의 결과는 출국이라기보단 자발적 추방이었다.

물론 그대로 끝은 아니었다.

샤를 드골 공항행 비행기 안에서 맥주를 마시던 순간까지도 의문이 맴돌았다.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일까.’

이리저리 따져 봐도 결말은 늘 같았다.

‘몰라.’

KakaoTalk_20211201_113511185.jpg Athens, Greece, 2019

체기를 없애려 속을 게우듯, 얼마 전의 충격에 대해 이곳저곳에서 만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뱉어댔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서 처음 만나 하루 동안 함께 다닌 박씨와 한씨에게,

이스탄불 술탄아흐멧 광장에서 만난 자칭 도하 거주 석유 회사 직원(사기꾼)에게,

같은 도시 한 술집에서 만난 중국인 Z에게,

그 외 서른 마흔다섯 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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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보름 정도를 더 보내고, 부르사 호텔 방에 있던 방명록에 “언젠가 이 글을 읽을 한국인에게”로 시작하는 글을 쓸 때쯤엔 확실히 두려움이 게워져있었다.

(무섭지 않다는 거지, 앙금은 평생 갈 것 같다.

여전히, 주-옥같은 기억을 선물한 바르셀로나의 영감탱이님이 유병장수 하셨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중병으로다가.)

12월, 인천 공항 입국 게이트를 나올 땐 마음만큼이나 지갑도 가벼워졌지만 괜찮았다.

'언제가 될진 몰라도 바로 다음엔 일본, 그다음엔 태국을 가야지...'라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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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中 우한서 원인불명 폐렴 환자 집단 발병…당국 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