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퇴근 후에도 유난히 할 일이 많(았)다. 그동안은 논문 작성 등 연구 활동을 주로 했는데, 지난 5월 한 출판사와 책 계약을 하게 됐다. 내 전공인 재무의 한 분야인 ESG와 관련된 책이 출간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ESG을 '경영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ESG는 '비'재무 요소로 꼽히며 재무회계와 더불어 공시 적용을 받는다. 고로 '재무'가 적확하다.)
총 대챕터는 10여 개, 소챕터는 50여 개로 이뤄진 이 책을 쓰는데 지난 4개월 동안 매일 2~3시간 이상 걸렸다. 짚어야 할 분야도 방대해 상당한 리서치가 필요했다. 내가 기존에 알던 것은 아는 게 맞는 건지 확인해야 했고, 모르는 내용이라면 철저하게 확인해 사실관계가 틀리지 않도록 힘썼다.
사실 오늘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쓴 이유도, 대챕터 기준으로 마지막 한 장이 남아서다. 그래서 감회가 새롭다. 출판사와 몇천부를 찍을지 고민하는 것도, 대상 독자는 누구인지 논의하는 과정도, 책의 퀄리티를 끌어 올리기 위해 편집자와 상의하는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
난 사실 10년 전부터 책을 쓰고 싶어했는데, 기회가 안 되곤 했다. 언론사에 몸을 담아 글쓰기에 자신이 있다는 이유로 만만한 주제를 잡아 기획안을 쓰고 출판사에 투곤하곤 했는데, 결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상당수 아이디어는 설익은데다가, '굳이 좋게 말하면' 시대를 너무 앞서나가는 듯한 느낌의 기획안도 보였다. 근본적으로는, 내 스스로 내공이 부족한데 무리하게 밀어붙인 책 기획안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내가 조금이라도 내 분야의 전문성을 쌓은 게 아닐까 싶다. 아울러 전문성도 좋지만, 책 자체가 대중 도서 성격인 만큼 쉽고 재미있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름 모를 누군가 인쇄물로 출간된 내 책을 읽고 나에게 이메일을 책 소감을 보내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직업 기자로 당연스럽게 대중적인 글을 쓴 적도 있었고, 지금도 박사로서 의무적으로 논문을 쓴 적도 있다. 하지만 이름 석자로 이름이 알려진 출판사와 계약을 통해, 원고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조금의 보람을 느낀다. 책의 성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계속 다작하고 싶다.
무엇보다, 많지는 않지만 내 브런치와 꾸준히 구독의 연을 맺고 있는 분들이 내 책을 읽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