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어떻게 창업을 고민하게 되었는가
대부분의 내 지인은 모르는 사실이 있다. 내가 창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약 1년 간 말이다. 누군가는 궁금해 할 것이다. 창업 '준비'를 1년 동안이나 한다고? 이유는, 직장 생활을 병행했기 때문이다. 풀타임으로 스타트업을 준비하고 운영하는 것도 버거운 일이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창업을 준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사업 아이템을 찾고, 함께 할 동료를 구하며, 프로토타입 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구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드는 것이다. 본업을 100% 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창업을 준비하면서 스트레스도 꽤 받았던 것 같다.
지난 1년여 간의 에피소드를 정리하면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다. 엄밀히 말하면 (직업이 바뀐) 현재도 조심스럽게 창업을 준비하는 상황이 맞긴 하지만, 직장에 다닐 때와 비하면 심리적 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는 어떻게 창업을 준비하게 되었냐는 것이다.
내 브런치를 쭈욱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나는 신문사 기자, 대기업 직원(전략기획, ESG)으로 약 14년 간 일했다. 직장 생활 중에 경제학 박사과정도 했다. 내 업무 스타일의 공통점을 꼽자면, 아이디어를 내고, 실현하는 게 많다는 것이다. 기자를 할 때도 기획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하루 이틀 내 빨리 취재를 하여 완성도 있는 기사를 작성해야 하며, 대기업 전략기획 시절에도 늘 리서치를 하며 대외 자료를 제작했다. 박사과정 시절에도 새로운 논문 아이디어를 쥐짜고, 통계 분석을 하며 국영문 논문으로 쓰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창업 생각을 하게 된 가장 본격적인 계기는 모 대기업에 재직 시절이었다. 당시 회사와 관련된 이슈가 발생하여 팀 회의에서 팀원별로 아이디어를 낼 일이 있었다. 나는 평소 고민했던 내용을 상세히 리서치 및 보완하여 작성했는데, 그것이 최종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기쁨도 잠깐. 그 아이디어를 냄으로써 나라는 '개인 직원'에게 오는 메리트는 많지 않았다. 숟가락을 얹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아이디어와 실현 가능성을 파악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사기는 꺾이는 와중에 업무 진행이 참 쉽지 않았다.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그 아이템은 더 진행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흐지부지될 때쯤이었다. 한 지인 개발자가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혹시,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되면 직접 사업 아이디어로 디벨롭하면 어때요? 내 주변에 그런 사람 많은데." 이 말이 나에겐 창업 준비의 시작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나는 직장을 다니거나, 논문을 쓰고 교수가 될 생각을 했었지, 사업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 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유명한 사업가 중에서는 나와 비슷한 계기로 사업을 시작한 분들이 꽤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교세라의 창업주인 이나모리 가즈오의 이야기다.
1959년에는 우연한 기회에 제 회사를 차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스스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창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을 때 기술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상사와 의견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했습니다. (중략) 그 후, 외국이라도 나가서 연구를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연구를 해왔으니, 그 연구 성과를 살려 회사를 직접 차려보면 어때"라며 다들 권유했던 것을 계기로 지금의 이 회사롤 창업한 것입니다. - 「경영, 이나리모리 가즈오 원점을 말하다」 19쪽 발췌
사실, 한국의 스타트업을 둘러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몸소 구현하기 위하여 회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경우는 적지 않다. 단순한 회사 생활에서의 염증이 아니라, 개인의 비전을 더욱 넓은 곳에서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는, 막연한 창업의 의지만 갖고는 너무나 막막하다는 것이다. 순수 문과 출신의 직장인인데다, 아는 개발자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개발자와 일하려면 보상을 제공해야 했다. 그런데 수중에 돈도 없었다. 개인이 생각하는 창업 아이디어가 아무리 원대하다 할지라도, 사업 고민 초기에는 '사람'과 '돈'이 있어야 했다. (※ 참고로, 요즘엔 바이브 코딩으로 누구나 자세하게 텍스트와 맥락을 입력하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만, 당시엔 그런 분위기까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사람' 문제도 해결했고, '돈'도 어떻게 구해 프로토타입 개발에 쓸 수 있었다. (이 내용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그런데 사람과 돈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사업에 대한 의지가 분명한지 여부다. (당시엔) 40세가 다 된 나이에 창업을 준비한다는 것, 특히 직장을 병행한다는 것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과 화목한 생활에도 일정 부분 부담이 될 수 있다. '나도 창업이나 해볼까?'라는 마음가짐이라면 시간과 에너지를 잃고, 본업도 소홀해질 우려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30대 혹은 40대 직장인이 스타트업 혹은 창업에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 우선적으로는 서점을 찾아 유명 스타트업의 창업 일대기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크래프톤의 창업 과정을 다룬 크래프톤웨이(김영사), 넷플릭스 창업 이야기를 다룬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도 괜찮다.
이런 책들을 읽으며 자신도 비슷한 창업 분투기를 겪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막연한 용기로 창업에 도전하는 것보다 직장 생활에 충실하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한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비전 실현을 추구하되, 뚜렷한 현실 의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