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철 Aug 17. 2017

개와 고양이와 나 2편 - 냐옹이와 나

비엔나텍스트어드벤처 16

크게 관계는 없지만 앞에 멍멍이 이야기가 있는 글이 한 편 있습니다.

내용상 따로 보셔도 거의 무방합니다.

----------


이미 예롱이를 보내고 난 뒤로, 개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다 잠시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건 고양이들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헌책방에서 고양이 대여섯 마리를 키웠다. 1년 넘게 일을 하면서 책방에 같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기억이 많다.

아침에 출근해서 똥오줌을 치운다던가, 물어다 놓은 쥐나 새를 치우는 일이 많았다. 있는 동안 새끼들도 태어났는데, 어쩜 그렇게 구석으로 들어가서 숨어버리는지 책 정리하다가 애들 다칠까 봐 밖으로 몰아내는 게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인 건, 고양이들의 눈빛이나 태도가 가끔 사람 같아서였다. 개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고 혼자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얘들은 말귀를 알아들으면서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특히 새로 들어온 책들 DB를 정리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꼭 키보드나 마우스 위에 와서 누워댔다. 그리고 쌓아놓은 책탑 위에서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본다거나, 책탑을 무너뜨리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근데 또 이게 밉지가 않았다. 종이만 동그랗게 구겨서 던져줘도 지들끼리 드리블을 하며 노는 모습은 또 어쩜 그렇게 좋은지.

헌책방일을 그만두고 가끔 근처 골목에서 마주친 것도 같았는데, 역시 고개를 쌩 돌리고 가는 바람에 그 아이가 그 아이였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한 달 전.

집 주차장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왔었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울어대길래 찾아봤더니 승용차 밑에서 빽빽거리는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아마 어미가 우리 아파트 화단에서 새끼를 낳았던 모양이다. 그날 아침 방 창문에서 건너편 화단에 어미 젖을 물고 있는 다른 아기 고양이들 2마리도 보였다. 문제는 화단 높이가 3m 정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비탈을 깎아 지은 집이라 주차장에서 화단 높이가 그렇게 된다.

아기 고양이는 정말 줄기차게 울었다. 이미 하도 울어서 빽빽 마른 소리를 내는 통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나는 마침 쉬는 날이어서 집에 있었다. 이리저리 인터넷을 뒤져보고 지인을 통해 방법을 물었다.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됐다.


흔히 말하는 냥줍의 위험이라고 해야 하나.

어미가 근처에 있으면 데려간다고 한다. 3m 정도는 어미 고양이가 다닐 수 있는 높이라고 한다. 동물 구조센터 같은 곳도 있었는데, 고양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했다. 완전히 사람과 동물이 갈 수 없는 곳에 빠진 거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했다. 직접 내가 포획을 해서 위로 올려줄까 생각도 했는데, 일단 잡을 수 없었다. 또 사람 손을 타면 어미가 돌보지 않는다는 말에 손을 대는 순간 키운다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또 고양이는 사회성이 있어서 자기 새끼가 아니어도 무리에서 키워준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함부로 껴들면 일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하다 결국엔 캔참치를 씻어다 줬다. 배가 어지간히 고팠는지 사람이 보이면 울지도 않던 놈이 눈치 보면서 싹 먹었다. 어미 고양이도 일정 시간 간격으로 화단 담벼락 위에 나타나긴 했다. 높아서 그런지 도대체가 내려올 생각은 안 했다. 내가 정말 별 생각을 다 하다가, 내 차를 옮겨서 벽에 바짝 붙여주기도 했다. 괜찮으니 밟고 올라가던지 하라고.


전혀,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시 고양이들은 협상, 타협의 '협', 인간의 도움, 같이의 가치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아이들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이틀을 있었나. 아예 잘 뛸 수 있을 때까지 주차장에 두고 키워서 스스로 어미를 찾아가게 하는 방법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저러다 죽는 거 아닐까 싶은 정도로 울어대던 소리가 어느 날 멈췄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3마리의 고양이가 어미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았다.


첫째 날 밤인가, 이틀째 아침인가 아기 고양이를 데려다 키울까란 생각도 했었다. 49% 정도 마음이 움직였다. 곰돌이와 예롱이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생명과 함께 지낼 용기를 살짝 냈었던 것. 지금은 다시 수치가 많이 내려갔다. 아직도 무언가를 새롭게 들이고, 긴 시간을 함께 할 자신이 없다.


내 이상한 용기가 한 고양이 가족의 생이별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49%만큼이라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가끔은 생각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게 좋지만 이번 건은, 정말 다행이지 뭐야.

매거진의 이전글 개와 고양이와 나 1편- 멍멍이와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