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없고 산도 없다

이성선 시인의 설악을 걷다

by 이엔 지민

나는 산을 좋아한다. 변함없이 마음을 내어줄 대상을 묻는다면 주저 없이 산이라 답한다. 하지만 속초로 삶의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나는 이성선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는 나보다 산을 훨씬 깊이 사랑한 사람이었다. 나뭇잎 하나가 어깨에 내려앉는 순간을 두고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는 아직 그 가벼운 경지에 닿아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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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뿌리를 찾아 강원도 고성군 성대리로 향했다. 1941년, 그는 이 마을 중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십 리 들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던 소년의 등하굣길이 그의 시심을 틔웠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고향에 머물며 30여 년 동안 후학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자식들에게 운전면허조차 따지 못하게 할 만큼 철저히 자연의 편에 섰던 사람이었다. 설악과 하늘과 별을 통해 우주와 교감했던 시인의 자취가 생가터 시비 위에 별처럼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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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을 사랑해 ‘설악산 시인’이라 불렸던 그는 2001년 예순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은 간결했다. 육신을 화장해 설악산 계곡물에 흘려보내 달라는 것. 자연스럽게 다음 여정은 그가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스며든 백담사 계곡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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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때문에 셔틀버스가 멈춰 선 길을 기꺼이 걸어 올라갔다. 간간이 흩날리는 눈발과 매서운 바람이 앞을 막았지만, 하얗게 뒤덮인 설경 앞에서 그 길은 이미 충분히 걸을 만한 값이 있었다. 제설차 외에는 차 한 대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나는 차도를 인도처럼 마음껏 누볐다.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산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가슴 한구석에 쌓여 있던 도시의 매연과 마음의 독기가 한꺼번에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설악산 아래 산다는 것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다.... 설악은 내게 산이 아니라 큰 정신으로서 있다.”

- 이성선 산문 ‘설악산 나의 연인’ 중


그의 산문처럼 시인은 설악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연인이자 거대한 정신으로 대했다. 그 지독한 사랑이 결국 그를 다시 산의 품으로 돌아가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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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수심교(修心橋)에 들어서자 계곡 주변으로 셀 수 없이 많은 돌탑이 보였다. 저마다의 절실한 소망을 담아 쌓아 올린 돌의 무게가 마음을 묵직하게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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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로 들어서자 계곡과 접한 얕은 담장 앞으로 시비 몇 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중 눈 속에 홀로 서서 나를 맞는 이성선의 시비 앞에 멈춰 섰다. 많이 닳아 읽기 힘든 시 구절을 눈발 아래 쭈그리고 앉아 소리 내어 읊어보았다.


나 죽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저 물 속에는

산그림자 여전히 혼자 뜰 것이다

- 이성선 시, 「산시 30, 나 없는 세상」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그는 육신을 계곡물에 흘려보내고, 지인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빗돌만 남겨 설악을 바라보게 했다. 왜 생가가 아닌 이곳이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내 사라졌다. 백담사는 그가 생전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잇고 오현 스님과 깊이 교유하며 수많은 ‘산시(山詩)’를 길어 올린 영적인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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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사 특유의 고요가 마당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기와지붕 위에 두툼하게 쌓인 눈과 붉은 기둥, 초록 단청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하얀 능선이 이어지고, 소리 없이 눈발이 풍경 위로 내려앉았다. 시인이 보았을 풍경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이 / 절 마당을 쓴다 /

마당 구석에 나앉은 큰 산 작은 산이 / 빗자루에 쓸려 나간다 /

... /

쓸면 쓸수록 별이 더 많이 돋고 / 쓸면 쓸수록 물소리가 더 많아진다

- 시 「백담사」 일부



2001년, 그는 설악의 맑은 물속으로 돌아갔다. 얼음 밑으로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서 “나뭇잎 떨어져 햇살에 몸 말리는 냄새”가 정말 나는 것만 같았다. 문득 이집트 기자의 사막에서 만났던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죽음 이후의 영생을 위해 거대한 돌을 쌓아 올린 권력자와, 모든 것을 비우고 먼지가 되어 물속으로 돌아간 시인. 남겨진 것은 차가운 돌과 따스한 문장뿐이지만, 수천 년의 권위보다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내 마음을 더 따뜻하게 덥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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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눈을 머리에 이고 웃고 있는 설악은 시인도, 돌탑을 쌓던 사람들도, 그리고 나도 모두 포용하고 있었다. 종일 설악을 독차지했다는 기분 덕분인지 내려오는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올라갈 때의 불안감은 사라지고 시인이 말한 ‘나 없는 세상’의 평온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억지로 세우려 했던 마음의 탑들이 무너진 자리에 설악의 능선이 비로소 선명하게 들어왔다. 시인의 어깨에 우주가 손을 얹었던 건, 그가 스스로를 비워 결국 산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산 아래에 닿았을 때, 내 어깨 위로 차가운 눈송이들이 내려앉았다. 가벼웠다. 우주가 내게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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