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상도문 마을과 학무정에서 느리게 걷기
설악산으로 향하던 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설악산에게 포옥 안긴 듯한 마을의 돌담길이 구불구불 이어졌다. 돌담집들은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남겨 놓았다. 걸음이 느려진다. 이곳이 상도문 마을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라고 했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라는 책을 읽고 나도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했었지만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해졌다. 그런데 이곳에서 옛날에 했던 그 ‘단호한 결심’과 재회했다.
신라 시대의 두 고승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설악산으로 향하던 중 지금의 상도문 마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도(道)가 통하는 문‘이 열린 곳이라 하여 얻은 이름이 도문이고 그 도문의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 상도문 마을이다.
500년이나 되었다는 이 마을에는 노란 낙엽 속에 파묻혀 있는 ’빨간 우편함을 얹은 녹슨 자전거‘ 하나가 서 있었다. 입구에서 느려진 걸음이 그 앞에서 더욱 느려졌다. 자전거 옆의 작은 다리를 건넜다. 그늘을 드리운 금강송 아래로 잿빛의 바위들이 오솔길을 터 주었다. 송림 사잇길을 걷는데 근처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한 정자에서 책을 읽는 한 선비의 모습이 보였다. 오윤환 선생이었다.
숲속의 정자 학무정은 구한말 성리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이 1934년에 지은 것이다. 그는 벼슬 대신, 이곳에 머무는 삶을 택했다. 아담한 정자는 선생의 쉼터이자 후진 양성과 자기 성찰의 장소였다. 육각형 모양의 정자 네 면에는 각기 다른 이름의 현판이 걸려있다. 학무정(학이 춤춘다), 영모재(영원히 사모한다), 인지당(인과 지혜의 공간), 경의재(공경과 의로움을 기르는 공간)이다. 현재 여섯 면 중 두 개의 면에는 현판이 없다. 과거의 사진에는 구곡동천(아홉 굽이의 경치 좋은 골짜기)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나머지 하나는 무엇이었을까?
정자에서 몇 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속초도문농요전수회관‘이 보인다. 농촌에서 논밭일을 하면서 부르는 농요 중 김매는 소리를 메나리 소리라고 하는데 이것이 속초도문농요의 대표적인 소리라고 한다. 그것을 전수하기 위한 곳이다. 회관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돌담 마을이 나타난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낮은 돌담에는 벽에서 느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시멘트 벽은 반듯하지만 손이 가지 않는다. 돌담은 거칠어보여도 괜히 손바닥을 대보게 된다. 그 길에서는 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다. 혼자 임에도 혼자 같지가 않다. 대문 없이 활짝 열린 마당 안으로 언제든 집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줄 것 같다. 마을을 둘러보다가 돌담 위에 얹혀있는 작은 고양이, 참새 모양의 스톤아트를 만났다.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기와를 이고 있는 단정한 한옥들과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수려한 능선은 한 폭의 수채화다. 마을 중간에는 오윤환 선생의 생가가 있다. “ㄱ”자 모양의 겹집 구조로 되어 있는데 함경도식 전통 가옥의 특징이라고 한다.
’구곡가‘는 선생이 이 마을을 감싸는 쌍천 주변 아홉 명소와 그 정취를 노래한 아홉 개의 시이다. 돌담 곳곳에 새겨놓거나 부착해 놓은 시구(詩句)를 찾아 읽었다. 마치 갤러리를 돌며 작품을 감상하는 기분이다.
시간을 잊어버리고 걸어다니다 쉴 만한 카페를 찾았다. 여러 개의 카페가 있지만 마을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는 이름의 ’도문‘이라는 까페를 선택했다. 입구에 놓인 자그마한 나무 간판과 그 위에 걸쳐진 주황색 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름 모를 작고 짙은 분홍색 꽃과 푸른 나무, 소품들로 빙 둘러싸인 카페 내부는 밝은 목재를 사용하여 따뜻한 느낌이다. 앞마당에 있는 사각 연못에 고인 물에 비친 몽실몽실한 구름과 통창을 통해 보이는 설악산의 풍경은 나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커피가 식을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걸음이 빨라지거나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다시 이 길을 걷고 학무정에 앉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