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머물다 보면 어느덧 떠나는 법을 잊어버린다.
지금 직장을 제외하고, 한 직장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던 기간이 2년이었던 나에게 이번 직장에서는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만큼 정도 들고, 안정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앞으로의 꿈을 이곳과 함께 꿈꾸게 되었다.
이렇다 보니, 떠나야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외면했던 것 같다. 다른 회사와는 달리 편안한 자택 근무에 일에 대한 성취감도 뛰어났었다. 중요 업무들이 나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고 이루어지는 것은 다른 기업에서는 흔히 없는 일이었는데, 이 회사에서는 나를 믿고 맡겨줬다. 그 결과 오롯이 모든 결과물은 나의 능력과 연결되었다. 이전에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간에 부서의 능력이었고, 부서장의 능력이었지만 여기에서는 달랐다. 그만큼 할 일은 많고 책임감도 많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힘든지도 몰랐다. 집에서 일을 하지만 글로벌 기업이라 유럽 국가들과 메일을 주고받고 회의를 하며, 일을 해 나가면서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서인지 몰라도 이전에는 나의 업무영역의 바운더리를 확실했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이 정도는 내가 해줄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일을 받아, 일은 눈덩어리처럼 불어나고, 결과적으로 모든 일들은 나의 일처럼 되어 버린 상황이 되었다. 일을 해주고도 욕먹는 상황인 것이다.
이에 따른 결과로 연봉의 상승을 기대했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연봉은 나의 업무만큼 따라와 주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좇지 마라, 돈은 열심히 하면 따라와 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한다. 긍정적인 상황인 경우는 맞다. 100%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만약 열심히 했는데도 결국에 돈이 따라와 주지 않는다면?
항상 나에게 위로가 되는 사자성어가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미리 헤아릴 수가 없다는 뜻
나쁜 일이 있을 때, 이 사자성어는 나에게 매우 큰 힘이 되어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분명 격노하고 억울하면서도 짜증 나는 상황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또한 좋은 일이 될 수 있으니 크게 낙담하지 않기로 했다.
분명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그 일로 낙담하지 않는다. 더 좋은 회사가 기다리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언제나처럼 열려있다.
분명한 것은 회사를 나가야 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내가 한, 했어야 했던 일에 대한 결과이자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이다.
싱글일 때에는 모든 결정은 나에게 한정되어 있어서, 나의 감정과 결정에 충실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두 아이가 있는 아빠가 된 이상 과연 나의 감정과 자존감을 위해 책임감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라는 명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과연 나의 자존감과 한 가족의 안락한 삶을 저울에 올려놓으면 어느 쪽이 더 무거울 것인지는 나에게는 아직은 결정하기 힘든 일이다.
자존감이 없는 상태로 인생을 계속 살아가기엔 나중에 자식들에게도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자존감이 허락하는 범위까지는 회사와의 타협을 하기로 결정했다. 타협안은 연봉의 상승 또는 업무 분장을 통한 업무의 축소이다.
만약에 내가 안주하지 않고, B플랜과 C플랜을 세우고 살았더라면 고민의 여지없이 쿨하게 회사를 떠났을 것이다. 항상 B플랜과 C프랜을 준비하고 살았었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도 1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 사업을 활성화시킬 방안을 연구하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면서 정부 지원사업도 지속해서 지원했었다. 하지만 지금 회사에 힘을 쏟게 되고, 안주하게 되면서 이 회사를 나가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하에 준비하던 작업들을 잠시 동안 떠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쓴 글인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지 말자 에도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이다.
안주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번 느낀다.
안주하는 삶은 우리의 자존감을 위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