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의 푸른 눈

봐, 어쨌든 그 ‘보름달의 푸른 눈’의 저주가 이루어진 거잖아?

by Boradbury

장똘은 원탁 테이블 위에 놓인 4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유심히 봤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 아름답게 빛나는 돌멩이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턱은 밑으로, 눈은 위로 잔뜩 늘려 놓곤 옆에 서 있는 강쥐를 불렀다.

“어이, 이봐. 이거 참 신기하구먼. 저 빛을 좀 보란 말이네. 우리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도 저런 색을 가지진 못했는데 저 파란색은 마치 세상 모든 파란색 중 가장 멋진 것들만 모아 뭉쳐 놓은 것 같잖아.”

“당신은 그게 문제예요. 자, 잘 좀 보라고요. 딱 봐도 가짭니다. 당신 아버지 가게에서 파는 돼지 껍데기보다도 더 싸구려라고요.”

강쥐는 원탁 테이블에 상체를 늘어뜨리며 집게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를 두 번 건드렸다. 그러자 이번엔 이 광경을 무심코 지켜보던 딴따라가 나섰다.

“그게 뭐든 팔아서 돈만 되면 되는 거 아냐? 가짜라고 해도 저 정도 크기면 쇳가루 십만은 받지 않겠어? 아닌가? 그럼 단돈 얼마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

“안 되네. 이건 우리 것도 아니잖은가? 우린 그저 음식을 털러 들어온 거고. 그러니 아름다운 돌멩이는 그냥 두세.”

장똘은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돌멩이를 바라봤다. 그의 두껍고 투박한 손이 큰 자루에 달린 줄을 쓸데없이 빙글빙글 돌려댔다. 난처할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나도 장똘의 말에 찬성. 저게 진짜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필요 없는 물건 아니겠어요? 우리가 저런 걸 선물할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자고 우리 목에 걸고 다닐 수도 없고요. 저 보십시오. 장똘의 큰 머리 때문에 들어가지도 않는 목걸이를 상상해 보란 말입니다.”

그 말을 마친 강쥐는 약 먹고 발작하는 새끼 고양이처럼 바닥을 뒹굴며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장똘의 얼굴이 술 한 드럼통은 들이킨 듯 벌게졌다. 딴따라는 생각을 좀 더 하다가 한발 늦게 바닥을 치며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목걸이가 장똘의 머리를 통과하지 못하고 새집처럼 머리 위에 다소곳이 올려져 있는 모습은 최근에 상상해 본 것 중 가장 웃긴 것 같았다. 하지만 둘이 잠시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 장똘이 왜 ‘장똘’이 되었는지.

“으아아아아!”

장똘은 갑자기 그 큰 몸을 공중으로 붕 띄우더니 나무 바닥에 어마어마한 힘으로 떨어져 내렸다. 나무 바닥이 우지끈하고 그의 발아래에 손바닥만 한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옆에 놓인 의자를 한 손으로 들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강쥐를 향해 내리찍었다. 강쥐가 날렵하게 몸을 굴리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마 어디라도 하나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얗게 질린 그를 대신해 장똘을 막아선 건 딴따라였다.

“야, 장똘! 배고프지 않아? 우리 뭐라도 좀 찾아 먹을까?”

“아… 그래. 잊고 있었네. 배는 아까부터 고팠지. 아니, 사실 나 어제부터 고팠는데.... 우리 아버지 가게도 문 닫아서 먹을 게 없거든.”

사람들은 그를 ‘장똘’이라고 불렀다. 장내 똘아이. 그는 덩치가 산만 한 데 비교해 내면은 마치 여섯 살 아이가 사는 것처럼 언제나 감정 조절에 서툴렀다. 그래서 그는 장내 모든 사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런 장똘을 잡아준 건 바로 딴따라였다.

“강쥐, 뭐해? 빨리 먹을 것 좀 찾아와. 빨리!”

“아, 알았어요.”

그제야 강쥐는 허겁지겁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얼마나 놀랐는지 아래 춤이 다 뜨듯하게 젖어 있었다. 하마터면 장가도 못 가고 이렇게 숫총각으로 죽을 뻔했단 생각에 그는 몇 번 더 찔끔하고 오줌을 지렸다.

부엌엔 오늘 저녁 식사로 나왔을 닭고기 국과 찐 채소들이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그릇에 담겨 있었다. 이 집 주인은 매일 밤, 이 시간이면 집을 나가 동이 터야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강쥐가 알아본 바로는 그랬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저녁을 거하게 차려 먹곤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걸 확인했다. 집 밖에서 음식 냄새를 맡아야 하는 고통이라니. 코를 스치는 그 냄새는 감자와 양파를 넣은 닭고기 국이 분명했다. 그리고 찜통에서 픽픽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냄새는 케일과 당근, 브로콜리라고 확신했다. 그에게 강쥐란 별명은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개 같은 후각과 청각 그리고 아주 작은 키. 그래서 강아지 즉, 강쥐란 별명이 붙었다. 사람들은 그를 동네 개 부르듯 강쥐야, 요놈 강쥐. 그렇게 불렀다. 하지만 강쥐는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후각, 청각만큼은 장내 최고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강쥐의 배에서도 기근에 울어대는 어린애 소리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예민한 코가 더 크게 벌렁거리며 닭고기 국이 든 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이 솥은 맨 나중에 들고 가기로 하고, 일단 국과 찐 채소들을 장똘과 딴따라가 있는 거실로 서둘러 가져갔다. 호기심 어린 달빛이 조심이 그의 뒤를 밟았다.


“자, 이거 먹고 나면 각자 흩어져서 가져갈 만한 것들을 모아 옵시다. 난 부엌을 뒤져볼게요. 여기가 가장 많을 테니.”

강쥐가 먼저 이번 계획을 말했다. 그러자 딴따라가 후루룩 국을 둘러 마시곤 그에 답했다.

“오케이, 알았어. 그럼 난 창고를 맡을게. 장똘, 넌 집 다른 곳에 또 먹을만한 게 있는지 둘러 봐.”

“알았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뭐 찾는 건 또 잘하잖는가. 맡겨만 주게. 그런데 그 전에 나 한 그릇만 더 먹으면 안 되겠는가. 아직도 배가 고프네만.”

장똘은 배를 튕기며 어린아이 같이 웃었다.

“장똘, 우린 시간이 많지 않아. 동이 틀 때까진 겨우 세 시간밖에 안 남았단 말이야. 이 집 봐. 얼마나 크냐고. 밖에 창고는 또 얼마나 크고. 더군다나 우리에겐 그것들을 운반할 어떤 것도 없으니 미리 봐 둔 숲속 폐가까지 몇 차례는 왔다 갔다 해야 할지도 몰라. 서둘러야 한다고. 먹을 건 그다음에 먹어도 돼. 장똘 몫은 부족하지 않게 챙겨 줄게. 알았지?”

“알았네… 아쉽지만, 자네가 그래야 한다니 그래야지.”

딴따라는 장똘의 등을 몇 번 쓰다듬어 주는 거로 그를 위로했다.

“그런데 이 목걸이는 어떻게 할 건데요? 그냥 둬요?”

강쥐가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달빛에 다이아몬드는 더 영롱한 빛을 냈다. 장똘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멩이였다.

“일단 그냥 둬. 지금은 먹을 게 우선이야. 찾은 음식은 다 여기로 가져다 놔.”

“알았네. 난 위층부터 둘러보겠네. 조심들 하게.”

딴따라가 먼저 건물 밖 창고로 떠나고, 그다음엔 장똘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덩치 큰 장똘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계단은 그 육중한 무게를 견디려고 용쓰는 소리를 냈다. 달이 둥글게 대지에 쏟아지는 밤. 그 덕에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했다.

강쥐는 제일 먼저 감자나 양파 같은 기본 식자재부터 챙기기 시작했다. 부피나 무게는 상당했지만 몇 번 다녀올 생각으로 무조건 거실로 옮겨다 놨다.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냉동고는 신세계였다. 장내엔 지금 흉년이라 먹을 것이 없어 다들 난리인데 이 집 냉동고엔 온갖 짐승의 몸뚱이들이 부위별로 토막 나 매달려 있었다. 강쥐는 시린 손을 부지런히 비비며 섬뜩한 덩어리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생각 같아선 다 들고 가고 싶지만, 이 많은 양을 다 옮기다간 금세 동이 트고 말 것이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돼지 뒷다리 네 개와 갈비 부위, 그리고 소고기인 듯 보이는 고깃덩이 세 개를 옮기기로 했다. 장똘 아버지 가게 냉동고에 몰래 넣어두면 한 달은 너끈히 견딜 수 있을 양이었다. 가게는 이미 문 닫은 지 오래라 했으니 들킬 염려도 없을 것이다. 그의 입에서 하얀 행복감이 뿜어져 나왔다.

같은 시각, 딴따라는 창고를 뒤지고 있었다. 그의 키보다 서너 배도 더 되는 높이로 쌓인 곡식 포대들을 보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그게 그의 주특기였다. 멋대로 만들어 부르는 노래. 달빛은 조용히 스며들어와 그의 마음을 더 부추겼다. 그리고 어깨엔 그의 몸무게쯤 되는 곡식 포대가 얹혀 있었다. 포대 재질이 까슬까슬 그의 어깨를 긁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무거운 포대를 업고 달리면서도 발은 리듬을 탔다. 그런 그의 끼는 사람들에게 늘 인기였다. 일부 여자들은 그의 목소리와 손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흐느적거렸다. 그가 그윽한 눈빛과 함께 윙크를 보낼 때면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거나 졸도하는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저 자유롭고 싶을 뿐이었다. 가난한 가족으로부터도, 자신을 이용하려는 친구로부터도, 그리고 이 세상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신나게 한평생 멋대로 놀다 가리라. 그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랬던 그가 놀림 받던 장똘을 자기의 유일한 친구로 삼은 이유는 장똘만큼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장똘은 주인의 방으로 보이는 큰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주인이 몰래 숨겨 놓은 술들이 장으로 한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병뚜껑을 열어 킁킁 냄새를 맡아 봤다.

“억… 이건 거드름 피우기 좋아하는 시장의 향수 냄새 같구먼.”

그는 다시 뚜껑을 닫아 진열장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술병을 꺼냈다. 하얀색 자기에 든 의문의 술은 뚜껑을 열자마자 구수한 냄새를 잔뜩 코로 몰고 들어왔다.

“딱 한 모금만. 많이 마시면 딴따라에게 혼날지도 모르니까.”

그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허기진 목구멍엔 그따위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목구멍은 되려 쩍쩍 갈라진 논바닥에 물이 터져 나오듯 시원하게 길을 터 주었다. 심장이 뭍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정신은 점점 까무룩 해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목젖이 계속 꿀렁거렸다. 그렇게 술병은 금세 비어갔다. 심지어 너무 급히 마시다가 사레라도 든 건지, 모르는 뭔가를 더 삼킨 건지 목을 부여잡고 컥컥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달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을 한참 동안 토닥거려 주었다.


그 사이 강쥐는 부엌 선반 위에 놓인 통조림까지 다 훑으려 사다리에 올라섰다. 정어리 통조림과 과일 통조림이 족히 스무 개는 넘어 보였다. 통조림은 오래 보관할 수 있으니 비상식량으로 두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깨에 멘 자루에 통조림을 차곡차곡 넣었다. 그리고 저 구석에 마지막 한 개가 보였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워낙 짧은 팔이 통조림에 좀처럼 닿질 않았다. 그래서 팔을 더 뻗으려 발꿈치를 들었다. 사다리가 균형을 잃고 살짝 휘청거렸다. 몸을 기댄 선반도 아슬아슬하게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조금만…조금만 더…”

드디어 통조림이 손에 닿았다.

“잡았다!”

하지만 순간, 사다리와 선반이 동시에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우당탕. 부엌이 떠나가라 요란한 비명을 질렀다.

“무슨 소리야?”

딴따라였다. 곡식 포대를 막 열 포대 째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창고로 가려다가 소리를 듣고 달려 들어온 거였다. 강쥐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그의 몸과 뒤섞여 있는 사다리와 그 위로 떨어져 내린 선반, 그리고 그 와중에도 통조림을 꽉 잡고 있는 그의 손은 짠했다. 딴따라는 얼른 달려가 선반을 치웠다.

“괜찮아?”

“네. 어휴…”

강쥐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기로 했다. 팔, 다리는 잘 움직였고, 눈앞에 있는 딴따라는 잘 보였으며 괜찮다는 말까지 잘하고 있으니 딱히 별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하나 더. 마지막 통조림도 이렇게 얻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그의 발밑으로 웬 종이 한 장이 살포시 떨어져 내렸다. 선반 위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죠?”

“오래된 신문 같은데?”

누렇게 변색한 신문엔 어디서 많이 보던 사진이 실려 있었다. 흑백 사진이긴 했지만, 모양새가 익숙한 목걸이였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원탁 테이블 쪽으로 달려갔다.

“이 목걸인 것 같은데?”

“그렇죠?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만.”

“잠깐만. 기사를 다시 잘 읽어보자고. 그러니까… 전시 중이던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도난당했단 기산데.......”

“아이참, 이리 줘 보세요. 제가 읽어볼 테니.”

강쥐는 딴따라에게서 신문을 빼앗아 재빨리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 블루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 가장 비싼 거래요. 이름은 ‘보름달의 푸른 눈’. 경매에 나오지 않아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으나 대략 천억으로 추정, 천억? 천억이래요!”

“그런데… 사진 속 목걸이가 진짜 이 목걸일까?”

“아니라면 왜 이 집에 이 목걸이와 오래된 신문 기사가 있겠냐고요. 안 그래요?”

“하지만 집주인이 가짜 보석을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는 거잖아. 진짜랑 똑같이 만들어서 비싼 값에 속여 판다거나.”

딴따라의 말에 흥분한 강쥐가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설마 그 귀한 목걸이를 그냥 저렇게, 막 아무렇게나 테이블에 올려놓고 갈 사람이 누가 있을까? 강쥐는 다시 사진과 목걸이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하지만 흑백에, 삼십 년도 더 지난 신문은 누렇게 변색하여 진위를 정확히 밝힐 수조차 없었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멈춰 있었다. 시간도 함께 멈춘 것만 같았다.

“아, 모르겠다.”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일단 갖고 갈까요? 이런 감자나 양파, 돼지 뒷다리보다 훨씬 가치 있지 않겠어요?”

“그래도 될까?”

“안 되겠어요. 장똘을 얼른 데려와요. 다른 건 다 놓고 이 목걸이만 가지고 나가야겠어요.”

“장똘은 어디 갔지?”

“아직 위층에서 안 내려왔어요.”


장똘은 다 마신 술병과 함께 집주인의 침대에 뻗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오래된 용달차처럼 불규칙하게 크르렁 크르렁 소리를 냈다.

“아유… 술 냄새.”

“한 병을 다 마셨나 봐요. 어쩌죠? 이 거구를 우리가 업고 갈 수도 없고…”

“강쥐, 부엌에 가서 물 좀 가져와. 찬 거로. 얼굴에 쏟아붓든, 목구멍에 쳐넣든, 어찌 해 봐야지. 이러다간 주인이 오기 전에 이 집을 못 빠져나갈지도 몰라.”

“알았어요.”

딴따라는 장똘의 뺨을 세게 두 번 때렸다.

“장똘! 장똘, 일어나 봐. 먹을 만한 거 찾으랬지, 누가 술 마시고 뻗어 있으라고 했어?”

하지만 장똘은 ‘난 이미 틀렸네. 어서 가게’라고 하듯 손을 휘저을 뿐,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딴따라! 여기요.”

이번엔 강쥐가 가져온 찬물을 장똘의 얼굴에 후려치듯 뿌렸다.

“아푸… 사람 살리게! 아이고, 나 죽네!”

“드디어 깼네요. 장똘,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아니, 자넨 강쥐가 아닌가. 자네가 이 시각에 우리 집엔 웬일인가?”

장똘은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여기가 왜 장똘 집이에요? 주위를 좀 둘러보라고요.”

“맞아. 우린 음식을 훔치러 온 거였는데? 그러다가… 그래, 내가 이 술장을 발견했지. 그래서 이 술병들도 가져가려고 하다가 한 모금만 마신다는 게 그만…”

그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그런데 그 손에 든 건 뭔가? 신문 쪼가리 같은데…”

“아, 장똘. 이제 됐어요! 우린 부자가 될 거라고요. 우리가 아래층에서 본 목걸이가 세상에 무려 천억짜리래요. 천억!”

장똘은 천억이 얼마큼 큰 액수인지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금액의 한도는 고작 해 봐야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팔던 돼지 뒷다리 가격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공이 열 한 개나 된다는 강쥐의 말에도 공이 열 한 개나 되는 숫자를 머릿속에 그릴 수조차 없었다. 그건 강쥐도 딴따라도 감히 구경도 못 해 본 액수였다.

“빨리 나가요, 우리.”

“그렇다면 술도 좀 가져가세. 이 집 주인, 술 고르는 안목이 제법이야. 꽤 괜찮은 술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아휴, 답답해. 그깟 술, 이 목걸이 하나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 아니… 에라, 모르겠다. 아무튼 아주 많이 살 수 있어요. 그러니까 빨리 나가요, 어서.”

강쥐가 장똘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끈다고 끌려 나올 장똘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급하니 점점 조바심이 났다. 마치 빨리 이 집을 나가지 않으면 이 꿈 같은 일이 모두 허상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기회는 머리카락만 있을 뿐, 꼬리는 없다 하지 않던가. 그러니 기회가 왔을 때, 얼른 머리채를 잡아채야 하는 거다.

장똘은 몸뚱이를 휘청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가 베고 있던 베개 밑에 무슨 종이 같은 게 보였다. 딴따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도 신문 기사였다. 그건 부엌에서 발견한 것보다 며칠 뒤에 발행된 거였다.

“그건 또 뭔가? 이 베개에서 나온 건가?”

“잠시만. 이것도 그 목걸이에 관한 기사야.”

“또요? 그거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된 거죠. 전시회에서 이 집 주인이 몰래 이 목걸일 훔쳤어요. 그리고 목걸이에 대한 기사들이 날 때마다 모아서 집 곳곳에 숨겨 놓고, 때를 봤던 거죠.”

강쥐는 장똘의 손을 꼭 잡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먼 곳을 바라봤다. 참 아름다운 밤이라고 생각했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순 없다고. 하지만 그 환상을 깬 건 바로 딴따라였다.

“이거 뭔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안 좋을 게 뭐 있어요? 우리 손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름달의 푸른 눈’이 들어왔고, 우린 이제 이걸 팔아 부자가 되는 것만 남았는데요.”

“미안한데, 이 기사는 그 목걸이의 저주에 대한 기사야.”

“네? 저주요?”

생각지도 못했던 무시무시한 단어였다. ‘저주’라니. 저주란 본디 흉측하고, 소름 돋는 것에나 붙는 게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돌멩이에 그런 단어가 당최 어울리느냐는 말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목걸이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다 불행해졌대. 어떤 사람은 자살했고, 어떤 사람은 외동딸이 정신병으로 미쳐 버렸고, 어떤 사람은 교통사고로 죽었고, 또 어떤 사람은 사형당했대.”

아니길 바랐다. 세 사람의 꿈은 이미 절정에 달해 있었는데, 심지어 이 꿈은 너무 달콤했고, 그만큼 그 충격은 실로 너무 커서 받아들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강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냥 사람들이 지어낸 루머 같은 걸 거예요. 왜 그렇잖아요, 사람들은.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고, 안 그래도 도난당한 목걸이니 되찾기 위해 이런저런 루머를 막 퍼뜨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게 한두 푼짜리냐고요. 그런 위험한 목걸이였으면 이 집 주인도 계속 이 집에 두었겠어요? 당장 갖다 버렸겠지. 봐요, 이 기사가 무려 삼십 년도 더 된 기산데 지금까지 이 집 주인은 잘살고 있잖아요.”

욕심은 사람의 눈을 참으로 쉽게 가린다. 보름달도 해가 비춰주는 한쪽 면만 볼 수 있을 뿐, 반대쪽은 볼 수 없지 않은가.

“강쥐, 그 목걸인 두고 가는 게 좋겠어. 예감이 좋질 않아.”

“무슨 예감요? 저 기사를 쓴 얄팍한 사람들의 수가 만들어 낸 그런 예감요? 왜 그렇게 순진하세요? 그래서 세상을 어떻게 살겠냐고요. 남들이 사기라도 치면 바로 넘어갈 분들이시네.”

딴따라와 장똘이 강쥐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그날은 두 사람의 세 번째 쇼가 있던 날이었다. 다 큰 두 남자가 벌어먹기는 해야겠고, 해서 시작한 건 요즘 보기 힘든 유치한 차력 쇼였다. 다행히도 딴따라의 노래와 춤 실력은 좋았고, 장똘의 체격은 보통 사람보다 크고 우락부락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먼저 딴따라가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면 장똘이 차력을 보이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쇼의 구성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손뼉도 쳐 주고, 뒤집어 놓은 모자 안에 돈을 넣어주곤 했다. 운 좋은 날은 지폐도 여러 장 섞여 있었다. 그런 날이면 장내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국수를 한 그릇씩 사 먹을 수 있었다. 딴따라는 항상 자기 것의 반을 장똘의 그릇에 먼저 덜어주고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 먹고서 딴따라를 쳐다보는 장똘이 영 안쓰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날은 돈이 다른 날보다 두 배로 벌린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국수 한 그릇씩을 먹고 돌아오는데 장똘의 다리가 좀 이상해 보였다.

“장똘, 다리 왜 그래? 왜 자꾸 절뚝거려?”

“아무것도 아니네. 신경 쓰지 말게.”

하지만 딴따라는 그의 앞을 막아 서 다리를 살펴봤다. 상처였다. 아마도 차력 쇼를 하다가 입은 듯했다.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다리 상처는 가볍게 여길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꽤 깊이 패 병원에 가서 몇 바늘 꿰매진 못 하더라도 항생제 연고 정도는 발라줘야 나을 것 같았다.

“안 되겠어. 약을 사서 바르자.”

딴따라는 장똘의 손을 잡고 장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쭈그려 앉아 고약을 파는 노파를 봤다. 그 노파 앞엔 호랑이 그림의 고약이 예닐곱 개 쌓여 있었고, 그 옆엔 또 다른 약들도 쌓여 있었다. 딴따라는 주춤거리며 노파 앞에 가 섰다.

“저기, 그 고약 얼마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노파가 깜짝 놀라 깼다.

“아이고, 뭘 드릴까? 고약 하나 드려?”

“네. 얼마죠?”

“요 호랑이 고약은 중국에서 가져온 건데 다섯 장은 줘야 해.”

딴따라는 국수를 사 먹고 남은 돈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 봤다. 고약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더 싼 건… 없어요? 집에서 돈을 많이 안 가지고 나와서. 흠흠.”

노파는 딴따라와 장똘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더니 그 옆에 있던 다른 약을 들이밀었다.

“이건 세 장만 줘. 비슷하게 만든 거라 중국 것보단 효험이 좀 떨어질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써 보슈.”

딴따라는 다시 세지 않아도 될 지폐 세 장을 천천히 세어 노파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노파가 돈을 받으려는 순간, 그 손을 강쥐가 잡았다. 그는 어둠의 세계에서 나온 사람처럼 검은 모자 티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뭐여? 이게 사람여, 구신이여?”

“할매, 우리 지킬 건 좀 지키고 살아요. 내가 그냥 지나가려다가 딱 보니 이 두 사람, 누가 봐도 사기당할 면상이라 좀 끼어들어야겠네요.”

“이 젊은이가 뭐라는지 도통 모르겄네.”

“정말 몰라요?”

강쥐는 중국에서 만들었다던 고약 통을 들어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바닥에 휙 던져 버렸다.

“이건 싸구려 바셀린에 한약재 향만 섞은 거고!”

그는 다시 그 옆에 다른 고약을 들어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똑같이 바닥에 던져 버렸다.

“이건 그냥 싸구려 바셀린.”

그러자 갑자기 노파의 행동이 어수선해졌다. 손은 부들부들 떨고, 눈은 바닥으로 떨구더니 뒤에 있던 상자에 고약들을 다 쏟아부어 가지고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 뒤에 대고 강쥐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던졌다.

“할매! 내가 개 코야, 개 코! 누굴 속이려고. 다음부턴 착하게 살아요! 사기 치지 마시고!”

후에 들은 얘기지만, 강쥐는 딴따라와 장똘의 차력 쇼를 매우 좋아했었다고 했다. 장내에서 가장 정직하게, 남을 속이지 않고 돈을 버는 것 같았단다. 물론 그나마 허기를 채울 수 있을 때 얘기다.


강쥐는 두 남자와 함께하긴 했지만, 셋 중 가장 수지타산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 잘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이 목걸이처럼 이익이 많이 남는 장사라면 그의 가슴은 더 크게 두근거렸을 것이다.

“이거 하나면 우리 이제 차력 쇼 같은 거 안 해도 된다고요. 평생 돈 안 벌고도 놀고먹을 수 있어요. 네?”

강쥐는 원탁 테이블에 두 손을 강하게 내려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강쥐, 우린 단지 먹을 걸 가지러 온 거였어. 물론 도둑질은 나쁜 거지만, 지금은 흉년이고, 그러다 보니 차력 쇼로 돈도 안 벌리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계획에 동의하긴 했지만, 이건 아니야.”

“나도 딴따라의 말에 동의하네. 집주인이 먹을 게 없어지면 그냥 우릴 불쌍하게 생각해 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비싼 돌멩이를 잃어버리면 우리를 가만두겠나?”

“그럼 이렇게 해요. 이건 내가 훔치는 거로 하죠. 딴따라랑 장똘은 이것과는 상관없으니 만약 걸리더라도 모든 책임은 내가 져요. 하지만 만약 걸리지 않는다면 이건 내가 훔쳤으니 내 거고, 돈도 내 거예요. 오케이?”

강쥐는 목걸이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는 할 말을 다 마치고 목걸이를 들어서 자신의 재킷 안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러자 딴따라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몸을 강쥐 쪽으로 바짝 붙여 얼굴을 맞대고 말했다.

“한 번만 더 부탁하자. 난 널 오래 보고 싶어. 너에게 혹시라도 이 목걸이로 인해 저주가 내려진다면, 그래서 너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난 오늘 끝까지 널 말리지 못한 걸 죽을 때까지 후회할 거야.”

하지만 강쥐도 물러설 만한 성격이 못되었다. 그는 다시 목걸이를 쥔 손목을 자기 몸쪽으로 당겨오며 맞섰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나요? 어차피 장내에서 오가다 만나게 된 떠돌이 인연인데 또 이렇게 헤어지면 되는 거지요. 길거리에서 만난 인연은 원래 다 그런 거예요.”

“좋은 말 할 때 내려놔. 네 눈, 지금 정상 아니야. 정신 차려.”

“이 손 놔요. 난 이걸 가져야겠으니.”

두 사람이 말할 때마다 목걸이를 쥔 손이 이쪽으로 갔다 저쪽으로 갔다 했다.

“둘 다 그만하게. 강쥐, 그 목걸이는 그만 내려놓게.”

“빠져요, 장똘. 그 바보 같은 머리로 지금 이 상황에 뭐가 이익이고 아닌지도 구분이 안 되죠? 그러니까 맨날 똘아이라고 놀림을 당하는 거예요!”

강쥐는 거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장똘의 얼굴이 목에서부터 서서히 붉어져 왔다. 그리고 그는 두껍고 투박한 손을 꽉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아아!”

“장똘! 하지 마!”

딴따라가 장똘의 이름을 불렀을 땐, 이미 일이 일어난 후였다. 장똘은 온몸을 날려 공중으로 붕 떴다가 정확히 강쥐의 뒷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강쥐는 바로 기절했다. 그가 바닥으로 넘어지며 손에 쥐고 있던 목걸이가 의자에 걸려 공중으로 날아갔다. 블루 다이아몬드는 날개를 단 듯 사뿐히 날아 창밖 보름달과 정확히 겹쳐졌다. 보름달이 드디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를 갖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 블루 다이아몬드를 가장 훔치고 싶었던 건 다름 아닌 보름달이었다. 그래서 그걸 손에 넣는 자마다 밤손님처럼 뒤를 밟으며 때를 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목걸이는 서서히 추락했다. 박살 난 보석과 보름달의 몸뚱이가 사방으로 흩어져 부서져 버렸다. 그것이 영롱한 자태를 가진 것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장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삼십 년이나 지난 ‘보름달의 푸른 눈’ 절도 사건의 범인이 이 동네에서 잡혔다는 거였다. 오늘 이른 아침, 익명의 제보를 받고 범인의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쳤는데 알고 보니 그 범인은 ‘보름달의 푸른 눈’ 절도뿐아니라 매일 밤, 마을에도 내려와 상습적으로 절도를 해 왔다고 했다. 사람들의 입을 타고 그에 대한 소문들이 삽시간에 장내로 퍼져갔다.

그는 타국을 떠돌아다니며 큰돈을 벌었던 자였다. 하지만 재산이 쌓여갈수록 사람들은 그를 거짓으로 대했다. 그들의 목적은 그저 ‘돈’이었다. 그럴 때마다 절망감이 들었고, 그것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지며 병적 도벽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그의 절도 품목엔 곡물, 채소, 가축 같은 것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들을 장내에 풀면 어려운 사정이 조금은 풀릴 수 있을 거란 좋은 소식도 함께 들려왔다.


“따라오지 마세요. 다시는 두 사람 안 볼 거니까.”

강쥐는 얼음 파는 상인에게 얻은 조각 얼음 몇 개를 비닐봉지에 넣어 뒷머리에 갖다 댔다. 어젯밤에 장똘에게 맞은 부위에 제법 큰 혹이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미안하네. 내가 의도적으로 그런 건 아니었으니 그만 화 풀게.”

“그만하니 다행이야. 저 주먹으로 맞았는데 아직 살아있는 게 어디야?”

장똘은 계속 강쥐 곁에 붙으며 어떻게든 마음을 풀어보려고 했고, 딴따라는 그의 뒷머리에 난 혹을 보며 자꾸 웃었다.

“먹을 건 왜 안 들고나왔는데요? 다이아몬드를 못 가지고 나왔음 그거라도 들고나와야 원래 계획이라도 성공했을 거 아녜요?”

“자네가 기절했지 않았는가. 점점 창밖에 동은 터오고, 시간은 없고… 자네를 끌고 나와야 했으니 난 자네를 업고, 딴따라는 고작 곡식 한 포대 업고 나온 게 다였네. 그나마 그것도 포대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오는 길에 다 뿌리고 말았지만. 아마 그 주변에 사는 새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었을 거네. 허허허…”

눈치 없이 웃는 장똘이 한심했던지 강쥐가 발걸음을 멈추고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거 들었어? 그 범인 되게 억울하게 됐던데…....”

“억울하다고요? 왜요?”

그제야 강쥐가 딴따라를 돌아봤다.

“그 ‘보름달의 푸른 눈’, 가짜였대.”

“네? 가짜였다고요? 정말요?”

“그래.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고.”

“그런데 왜 경찰은 그 사람을 잡아갔대요?”

“그게 말이지, 좀 이상한 게… 경찰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그 사람이 자기 방에서 막 헛소리를 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나 봐. 물론 마을에서 훔친 것도 많았으니 그것도 잡아둔 이유가 되었겠지만.”

“술이요?”

딴따라는 차력 쇼 준비를 했다. 그의 자루 속에선 각목 세 개와 벽돌 두 개 그리고 자잘한 소품들이 따라 나왔다. 강쥐는 그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듯 준비를 도우며 슬쩍 옆에 와 앉았다.

“응. ‘내가 30년이나 넘게 숨겨온 다이아몬드를 누가 훔쳐 가 버렸어, 누가 훔쳐 가 버렸어.’ 막 이러면서 계속 술을 마셨대. 경찰이 도착했을 땐 이미 다섯 병이나 비어 있었다던데…”

“뭔 말이죠? 그 목걸인 현장에 두고 왔다면서요?”

“두고 왔지. 신문에서도 경찰이 그 가짜 목걸일 찾았다고 했고.”

“그럼 그 사람이 자기가 삼십여 년 전에 ‘보름달의 푸른 눈’을 훔쳤고, 그걸 다시 어젯밤에 누군가 훔쳐 갔다. 이렇게 진술했다는 거예요?”

“그런 거지.”

딴따라가 자기 전용 마이크를 꺼냈다. 크로스백같이 몸통을 가로질러 매는 스피커 일체형인데 어떤 아줌마 팬이 저번에 선물해 준 거였다. 그는 자기 전용 마이크가 생겨 참 좋았다. 아, 아. 하고 목소리를 내면 공기 소리 때문에 퍽퍽 하고 잡음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부르면 장내 사람들이 다 자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봐, 어쨌든 그 ‘보름달의 푸른 눈’의 저주가 이루어진 거잖아? 강쥐, 너 나한테 은혜 갚아라. 꼭.”

“가짜였다면서요.”

“진짜를 따로 숨겨놨을 수도 있지. 본인 입으로 자기가 그걸 전시회에서 훔쳤고, 어젯밤에 다시 도둑맞았다고 했으니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이 이리된 것도 그 저주 때문이 아니겠냐고.”

“참 모호하네요. 그럼 어젯밤에 우리 말고도 또 다른 도둑이 그 집에 들었단 말이에요?”

“글쎄… 모를 일이지. 우리가 나오고 나서 누가 잠깐 들어가 진짜를 훔쳤을 수도 있고. 자, 자. 이제 각설하고 쇼나 시작하자고. 어? 그런데 장똘은 어디 갔지?”

“응? 조금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억새가 바람에 머리카락을 서로 비벼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낮달이 떠 있었다. 그건 마치 실체 없는 유령처럼 희미하게 파란 하늘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 아래엔 온몸의 정기를 모아 땅으로 보내는 자가 있었다. 장똘이었다. 그의 바지는 무릎까지 내려와 걸쳐져 있었고, 쭈그려 앉은 다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처럼 후들거렸다.

“으아아아아!”

그의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에 오리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올랐다. 드디어 그의 얼굴에 천국이 열리는 듯했다.

“아이고. 죽을 뻔했구먼. 뭔 놈의 똥이 그렇게 단단한지 똥구멍 찢어지는 줄 알았네. 먹은 거라곤 어젯밤에 닭고기 국 조금 먹은 것밖에 없는데 변비가 생긴 것도 아니고… 아! 어젯밤에 그 묘한 술, 그거 마실 때도 뭔가 갑자기 목구멍으로 복숭아씨 같은 게 훅 들어가서 죽을 뻔했는데… 요새 영 불길하네. 조심해야겠어. 하루 사이에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건지. 아무튼 오늘도 조심, 또 조심.”

억새 사이를 걷는 장똘의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오늘도 차력 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면 장내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 한 그릇 말아먹을 생각에 벌써 힘이 불끈 솟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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