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라비와 타조알

개 꿈이라니까. 잊어버려. 박혁거세도 아니고, 알에서 나온 아기라니.

by Boradbury

천국으로 향할 것 같은 하얗고 긴 복도였다. 그리고 그 복도를 잇는, 아직 어느 누구의 생각도 담아 본 적 없는 순결한 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가 가장 바라던 소원을 여기에 걸어보라고. 예쁜 그림에 담아 걸면 그렇게 될 것이며 아름다운 글귀에 담아 걸면 그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잠시 그 복도 끝에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이루고 싶은 소원은 뭘까?

이번엔 벽을 따라 양쪽으로 나란히 서 있는 문에서 푸른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왔다. 그들은 저마다 큰 상자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중 하나가 내 앞에 와 서더니 말을 걸었다.

“이 상자는 어디에 둘까요?”

“네? 아…저기에……”

난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들어올려 어떤 방 하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그렇게 멈춰 서 있었다. 뚝뚝 끊어지는 화면 속에 상자들은 여기 저기에 쌓여갔다. 새 집으로 이사온 듯, 매우 낯선 장소였다. 하지만 크게 난 창마다볕이 잘 들어 집안엔 온통 따스한 온기로 가득했다.

그 집은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만큼 방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내 시선이 닿은 그 많은 방 중 하나. 난 뭔가에 홀린 듯 눈 앞에 보이는 그 방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왼쪽 벽에는 중형 냉장고 한 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탁자와 저마다 다른 높이로 쌓여있는 큰 상자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냉장고와 벽 사이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덜커덩! 케이지에서 나는 소리였다. 동물을 넣는 철제 케이지. 난 그게 무엇인지 잘 안다. 몇 년간 집에서 기르고 있는 개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몇 번 사용해 본 적이 있다. 순간, 난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케이지 가까이로 발길을 옮겼다. 덜커덩! 이번엔 처음보다 더 심한 움직임으로 그것은 케이지에 부딪혔다. 철제 케이지가 각도를 바꿀만큼. 그리고 내가 아주 조심이 손을 뻗어 케이지에 닿으려 하자 갑자기 케이지 윗면에 난 문이 확 열리며 잿빛 털을 한 무언가가 내게로 훅 달려 들었다.

“으악!”

놀란 것도 잠시, 난 그게 뭔지 몹시 궁금해졌다. 방금 그게 뭐였지? 파섬? 개? 내가 뒤돌아 달리자 화면도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쫓아가 복도 끝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드디어 난 그것을 품 안에 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아이가 아닌가! 사람 남자 아이. 아이는 수줍은 표정으로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보았다.

“당신 여기 있었어?”

등 뒤에서 남편이 날 불렀다.

“승호 씨, 이거…”

내가 그를 돌아보며 품에 안은 아이를 보여 주자 남편은 잠시 눈을 찡그리며 초점을 맞추는 것 같더니 금세 그것이 무엇인지 알겠다며 옅게 웃었다.

“아, 그 아이는…”

“그러니까, 당신 꿈 속에서 내가 그 아이를 시장에서 사 왔다고 했다 이거지?”

“그래. 그렇다니까.”

“사람 아이를, 내가, 시장에서, 케이지에 넣어서?”

“응. 그리고 그 케이지에는 원래 ‘왈라비’라고 써 있었다 그랬어.”

“왈라비?”

“왜 그거 있잖아. 캥거루 같이 생긴, 저번에 동물원 가서 본.”

남편은 방금 토스터에서 꺼낸 식빵이 너무 탄 걸 보고는 모서리를 포크로 뜯어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내 말 듣고 있어?”

“응, 그럼 듣고 있고 말고. 저번에 동물원 가서 본 캥거루 얘기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이번엔 시리얼 위로 부은 우유가 그릇 밖으로 튀자 냅킨 몇 장을 들어 신경질적으로 닦기 시작했다.

“캥거루 말고, 왈라비 얘기야.”

“응, 그래. 왈라비. 그런데 왈라비가 남자 아이가 되었다는 건 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는 분명 내 얘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었다.

“꿈이 꼭 논리적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게 왈라비든, 캥거루든 뭐가 중요해. 내 말의 포인트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 내가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꿨냐 하는 거야. 특별히 이번 꿈 속엔 당신과 내가 등장하고, 우리는 아주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어. 그 곳에서 당신이 시장에서 사 왔다는 왈라비, 더 정확히 꿈 속 당신의 설명을 빌어 설명하자면 케이지에 왈라비라고 써 있었지만, 당신이 들여다 보니 사람이어서 돈을 주고 우리 집으로 사 왔다던 그 남자 아이. 그것이 말하는 의미가 뭐냐 하는 거야.”

“개꿈이야. 신경 쓸 것 없어.”

“그렇게 단순히 말하지 말고, 제발.”

“그럼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데? 내가 곧 왈라비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라도 시장에서 사 와야 한다는 거야? 아, 그래. 오늘은 로또를 사야겠군. 왈라비인 줄 알았던 게 사람 아이였다면 분명 기대 이상의 행운이 온다는 뜻일지도 몰라. 안 그래? 오우! 나 늦었어.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퇴근 후에 해.”

남편은 코트와 도시락을 챙겨 들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타서 뜯어낸 식빵 조각과 흘린 우유를 닦은 냅킨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서. 나 역시 치우지 않고 그냥 일어섰다. 감정이 상해서는 아니다. 아가씨가 부탁한 가방을 사러 나가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독립기념일 세일은 첫 날에 가장 사람이 많다. 그 말은 좋은 물건이 오늘 다 빠져나가기 때문에 오픈 하자마자 쇼핑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버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시큰둥한 남편을 설득한 건 나였다. 남편과 아버님 사이가 소원하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저렇게 태연할 줄은 몰랐다. 타인의 아버지 병문안이어도 저 정도는 아닐 것이다. 작년에 혼자 한국에 나갔을 때 난 아버님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백팔십 센티미터나 되는 키 탓에 더 육중하게만 보였던 아버님의 체격은 더 이상 젊은 시절의 것이 아니었다. 집에 모든 벽은 안전 손잡이가 둘러 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살이 다 빠져 나간 앙상한 팔로 겨우 손잡이에 의지해 몸을 이동하셨다. 설상가상으로 의사는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기다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남편의 결정을 받아내고 난 후에야 마음이 반 쯤 놓였다.

내심 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불효자가 되어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데 그 힘든 몫을 아가씨 혼자 감당한다 생각하니 더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가방이라도 하나 사 줄까 물었던 것이다. 아가씨는 몇 번 거절하다 안 되겠다 싶은지 꼭 하나만 사오라며 거듭 당부하였다. 모레가 출국일이니 내일은 바쁠 터, 오늘 모든 쇼핑을 마치고 내일은 가방을 싸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주차장은 벌써 만석이었다. 그래서 겨우 입구와 먼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가방 매장은 언제나 인기가 좋아서 기본 한 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

“아직 한국 새벽이지? 깨워서 미안. 내가 지금 사진 세 장 보냈거든? 한 번 봐봐. 어떤 게 좋은지.”

화상채팅 화면은 어두컴컴했다. 그 곳은 아직 새벽 세 시. 시누이는 겨우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에 집중했다.

“언니, 그냥 언니가 알아서 사요. 내가 뭘 아나. 센스 있는 언니가 고르는 게 낫죠. “

“그래도 아가씨가 들 거니 골라봐. 첫 번째 건 정장에 맞춰 들기 좋을 것 같고, 두 번째 건 캐주얼 이나 정장 모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럼 두 번째 걸로 해 줘요. 캐주얼 할 때가 많으니.”

“알았어. 그럼 얼른 다시 자. 출발할 때 다시 연락할게.”

촌스럽지 않은 연자줏빛 가방은 사십 프로 추가 세일이라고 적힌 선반 위에 조명을 받아 우아하기까지 했다. 가격 대비 최고의 상품이라 생각하니 할 일을 다 마친 발걸음이 리듬을 탔다.

엄마는 그 곳이 내 집이라고 말했다. 밖을 둘러보니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마을, 아주 좁은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집이었다. 크기는 두 사람 정도가 살 수 있을 만큼 작고, 하얀 회벽이 내부를 두르고 있었다. 방도 없고, 그저 거실과 욕실, 부엌이 하나씩 있었다. 열린 대문에 달아놓은 망사 커튼이 잔잔한 파도 같이 굴곡져 흔들렸다. 그래서인지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따스하게 내 팔을 스쳤다.

엉덩이가 뚱뚱한 큰 항아리가 하나, 나무로 만든 낡은 의자가 모서리에 하나, 바닥엔 직접 짠 듯 엉성한 격자무늬 카펫이 하나, 벽엔 두 사람 얼굴만한 작은 창문이 하나, 그 옆엔 사람처럼 서 있는 뱅갈 고무나무 화분이 하나. 그것이 전부인 거실에 서 있자니 마치 내가 중세 유럽의 평범한 아가씨가 된 듯 했다.

“얘, 저 문 앞에 보이는 건 뭐니?”

엄마의 말에 바람이 불어오는 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커다란 타조 알? 흡사 그런 모양이었다. 높이는 오십 센티미터 정도에 분명 새의 알 같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점점 더 넓어지는 둥근 덩어리. 내가 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구두는 자작나무 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난 서슴없이 그것을 들어올렸다. 눈 높이에 맞추자 겉껍질이 흐물흐물하게 흔들렸다. 어, 어… 어?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손에 힘을 주자, 이번엔 심지어 위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어,어!!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엄마에게 변명이라도 하려던 차에 허물어진 그 속으로 무언가가 보였다. 알 속이라면 분명 새가 들어있겠지. 그런데 아직 알이 깨질 때도 안 되었는데 껍질이 허물어지면 어떡하지? 내 머릿속은 온갖 아기 새에 대한 근심, 걱정으로 채워져 갔다. 그런데 그건 아기 새가 아닌 사람 아기였다. 아기는 자기가 엄마의 자궁 속에 있다고 착각하는 듯 몸을 둥글게 말고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엄마… 아기야. 어떡해.”

내가 알을 들고 하얗게 질려있자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 속에서 아기를 꺼내어 들었다. 꺼내고 보니 덩치가 꽤 큰 아기였다. 아기는 전혀 울지도 않고, 아주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엄마는 얼른 씻겨야겠다며 아기를 안고 욕실로 사라졌다.

“그러니까… 이번엔 타조 알에서 아기가 나왔다는 거야?”

남편의 입에서 사과가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부피를 줄이고 있었다.

“그렇다니까.”

입을 크게 벌려 웃던 남편의 입에서 작은 사과 조각 하나가 툭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정색을 하며 냅킨을 들어 사과 조각을 덮었다. 그리고는 포크로 다른 사과 조각 하나를 찍어 다시 입에 넣었다.

“도대체 요즘 왜 이런 꿈을 꾸는 건지 모르겠어.”

“개 꿈이라니까. 잊어버려. 박혁거세도 아니고, 알에서 나온 아기라니. 말이 돼?”

“또, 또! 누가 논리를 따지자 했어? 그러니까 내가 이상한 꿈이라는 거지.”

큰 여행 가방에 신발과 옷가지들을 넣고, 아버님께 드릴 영양제와 아가씨 가방까지 넣고 나니 지퍼가 잠기질 않았다. 방바닥에 널어놓은 짐이 아직 한 가득인데 벌써 난항이다. 난 아예 가방 위에 올라타 가운데를 꾹꾹 누르며 지퍼를 끝에서부터 힘주어 당겼다.

“태몽인가?”

툭. 당기던 지퍼 고리가 끊어져 버렸다.

“그게 무슨…….”

난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을 올려다 보았다. 그는 여전히 태연하게 사과를 씹고, 다시 작은 사과 조각을 흘리고, 그것을 냅킨으로 주섬주섬 주웠다.

“난 아니야. 당신도 알잖아.”

“그럼 승준가?”

“아가씨?”

그럴지도 몰랐다. 우리도 결혼 칠 년 째 아기를 가지지 못하고 있지만, 아가씨 역시 결혼 오 년째 임신을 못 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스트레스 탓인지 습관성 유산까지 이어져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반 년 전부터 유명한 여성병원에 다니며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고 있었다. 이 꿈들이 가리키는 것이 임신이 맞다면 아가씨에게 좋은 소식일지도 모른다. 난 당장 아가씨에게 화상채팅을 걸었다. 신호음이 다섯 번쯤 이어지다 연결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또 새벽.

“언니, 이제 출발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가씨 혹시 임신했어?”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내가 태몽을 꾼 것 같아서 그래. 언제 병원 다녀왔어? 의사가 뭐라 안 해?”

“아… 그게… 전 아닐 거예요. 이번에 시도한 시술 결과 나왔는데 이번에도 안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더 준비해서 다시 시도해 봐야죠.”

“그랬구나. 미안.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아픈 델 건드렸네.”

“그나저나 언니도 이번에 오빠랑 함께 나오니까 시술 한 번 해 보지 그래요? 내가 예약해 놓을게요.”

“우리??”

시험관 아기 시술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니다. 결혼 생활 오 년 정도가 되었을 무렵, 캘리포니아에서 살 때, 그 곳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병원을 찾아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다. 검사 결과는 둘 다 이상무. 불임은 아니기에 우리 부부의 경우는 난임이라 했다. 남편의 직장이 자주 옮겨져 주말 부부를 오래 하기도 했었지만, 그래서 우리에겐 그저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때의 일들이 감정과 함께 오롯이 떠올랐다.

한 때 난 주변의 친구들을 시기하기도 했다. 베이비 샤워 한다고 아기 옷을 사고, 기저귀를 사고, 출산했다고 아기 앨범을 사 들고 갔던 그 때. 백일 잔치다, 돌 잔치다, 아기에 관련된 행사들이 줄을 이었다. 난 왜 그들을 축하해 주기만 하고, 축하 받지는 못하는 걸까? 괜히 약이 올라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선 병원비가 너무 비싸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남편의 월급으로는 언제까지 해야 할 지도 모르는 이 시술을 계속 이어갈 자신이 없었다. 난 그 감정을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렸다. 그래서 나름 직장에서 인정도 받았다. 물론 그 영광도 잦은 이사로 인해 길게 이어지진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한다면 금세 오를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우리 부부는 자연스레 서로에게 아기 이야기를 안 하게 되었다. 불임은 아니라 했으니 언젠가 갖게 되겠지. 하는 나태한 태도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동안 간절히 바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있다.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을 내려다 보았다. 구름이 카펫처럼 발 밑에 깔려 있었다. 그 위를 걷는 상상을 했다. 그것이야 말로 진짜 천국으로 가는 길. 그 양쪽으로 뻗은 순결한 구름 벽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가장 바라는 소원을 걸어보라고. 뭘 걸어볼까? 예쁜 그림이든, 아름다운 글귀든. 내가 가장 바라던 소원을 액자 삼아 건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걸어볼까? 얼었던 가슴이 녹는지 간질간질했다.

십여 년 만에 만난 부자는 데면데면했다. 어느 누구도 먼저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지도, 괜찮으시냐는, 오느라 수고 많았다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가씨까지 모여 앉은 다섯 식구가 말없이 식당에서 포장해 온 설렁탕을 우걱우걱 입 안으로 집어 넣었다. 아버님의 잠자리를 봐 드리고, 남편도 피곤하다며 다른 방에 들어가 일찍 눕는 바람에 아가씨와 단둘이 집을 나왔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한국의 공기가 끈적끈적 몸에 달라 붙었다. 매미들도 나무에 달라 붙어 밤인데도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옆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그것을 실제로 들으니 정말 여름 밤의 소음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데시빌이었다. 우리는 조금 더 걸어 매미 소리가 덜한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다. 시애틀의 유명 커피숍인 스타벅스는 아홉 시면 문을 닫는데 이 곳 커피숍은 열한 시까지 한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니 남편과 헤어지기 싫어 밤새 커피숍에 앉아 있던 연애 시절이 떠올라 설레기까지 했다.

“오빠랑 상의해 봤어요?”

“뭐, 시험관 아기 시술 하는 거? 그냥 물어는 봤어.”

난 자몽 에이드 한 모금을 삼키며 말했다. 커피숍 안 에어컨 때문인지, 시원한 자몽 에이드 때문인지 온 몸에 흐르던 땀이 금세 가셨다.

“오빤 뭐래요? 해 보자 하던가요?”

“그냥… 어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야, 오빠가? 그나저나 아가씨는 가망이 있어 보여?”

“저희도 그냥 그래요. 간절히 바래도 안 되는 게 있는 건지. 멀쩡히 잘 움직이던 오 개월 짜리 애도 이유 없이 떨어지니까. 제가 더 조심해야 해야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맘 고생이 심했겠어. 힘내.”

꼭 잡은 아가씨의 손이 찼다.

“언닌 아기 생각 없어요? 어떨 때 보면 언니나 오빠나 영 바라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요즘은 부부 사이만 좋으면 아기 안 낳는 부부도 많다니까 언니네도 그런 건지 싶기도 하고.”

다시 비행기 안에서의 질문이 이어졌다. 내가 바라는 소원이 뭘까? 순결한 벽에 걸고 싶은 그림은, 글귀는 과연 뭘까? 그것이 혹시 아기일까? 난 다시 빨대로 자몽 에이드를 휘휘 저었다.

결국 아가씨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여성병원은 산모교실, 태교음악회, 출산 후기 이벤트 광고들로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게, 봐, 네가 걸고 싶던 게 이런 거 아니야? 하고 반문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아직도 시차적응이 안되는지 어느새 팔짱을 끼고 잠에 들었다.

주변을 둘러 보았다. 생각보다 젊은 여자들이 많았다. 그 말은 요즘 시대엔 아기를 안 낳는 사람도 많지만 아기를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사람도 많다는 걸 증명했다. 임산부 하나가 배를 쭉 내밀고 앞을 지나갔다. 가진 자의 여유인지 그녀의 표정은 당당하기만 했다. 그에 반해 대기실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어깨는 힘없이 쳐져 보였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 나도 앉아 있었다.

상담은 비교적 짧게 끝났다. 나는 연신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고, 남편은 형식적인 답만 할 뿐이었다. 교수라는 여자는 시험관 아기 시술이 성형 수술도 아닌데 온갖 좋은 말로 꾀다가, 포기만 안 하면 된다며 격려를 했다가 하며 정신을 다 빼 놓았다. 아가씨도 무조건 해야 한다는 편에 섰다. 남편은 내가 결정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래서 결국 난 그렇게 의심 반, 희망 반으로 시술을 결심했다.

주사제를 받아왔다. 스스로 놔야 한다는데 뾰족한 바늘을 보자마자 현기증이 났다.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아 처음엔 남편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몇 번 더 놓던 남편도 이젠 도저히 못 하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결국 그것도 다 내 몫이 되었다. 과배란 주사, 배란 억제 주사, 이름도 무시무시한 주사를 세 대까지 늘려 맞으니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 계속 누워 있어야만 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하다가 내가 시험용 쥐가 될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 갔다가 거울 앞에서 옷을 들춰 보았다. 배에 시퍼런 꽃들이 여기저기 흉측하게 피어 있었다.

“난포가 일곱 개 정도 자랐네요. 자궁 내막도, 환경도 좋아서 다행이에요.”

별 것도 아닌 의사의 칭찬에 며칠 맘 고생한 게 다 잊혔다. 하지만 정자 채취 후 의사는 다시 태세를 바꾸었다.

“남편의 정자 상태가 중급 밖에 안 되네요. 보통 최상급, 상급 이런 걸로 하는데 중급은 좀 불안해요. 그 아래는 아예 폐기해야 하고요.”

시차 적응으로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지 정자의 상태가 썩 좋진 않다고 했다. 그런데 최상급, 상급, 중급이라니. 무슨 돼지 엉덩이에 품질 표시 도장을 찍는 것도 아니고. 내 기분도 썩 좋지 않았다. 한 달 일정으로 온 나와는 달리 일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하는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시술을 진행하기로 했다. 난자 채취는 엉덩이에 진통제 주사를 맞고, 마취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총 일곱 개의 난자를 채취했단다. 주사를 맞은 엉덩이가 얼얼했지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전혀 실감이 가지 않았다.

일곱 개를 배양하여 그 중 세 개를 이식하는 날. 상태는 역시 중급이란다. 착상이 잘 되도록 접착제로 붙인다는 말을 들으며 피식 웃음이 났다. 내가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렇게 몸소 체험하고 있다니. 마치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 조금 무서워졌다. 유산을 방지하는 질좌제를 넣는 것도 이젠 능숙해졌다.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상담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오천 불만 더 주면 아이의 성별도, 명수도 맞춰 줄 수 있다는 말에 뭐라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사람에게 언제부터 성별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던가. 그리고 명수를 결정할 권리 또한 언제부터 가지게 된 것일까.

뉴스에선 점점 발전하는 의학 기술 덕에 이젠 앞으로 우리가 원하는 유전인자만 골라 완벽한 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홍보한다. 참으로 편리함 속에 숨은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선택’이란 단어가 갖는 매력은 대단하겠지만 반면에 선택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은 어쩔 것인가. 더 좋은 유전자만 찾다가 내가 가진 유전자가 아닌, 다른 이의 우월한 유전자를 돈으로 사고 파는 시대가 된다면 강남 거리를 활보하는 쌍둥이 같은 성형미인 현상과 뭐가 다를까.

그 때는 천재들이 넘쳐나고, 모두 연예인 같은 외모와 키를 가진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사라져 인간의 수명 또한 늘어난다면 노인들만 가득한 세상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 그리고 요즘처럼 아들보다 딸이 인기라면서 성별을 골라 낳는다면 인류는 얼마 못 가 성비의 불균형이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모자란 성별의 아기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성비를 맞춘다 할지도 모르겠다. 그쯤 되면 우리는 우리를 ‘인간’이라 부를 수있을까.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은 단순 공산품이지, 더 이상 신의 고귀한 창조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 곳은 행복한 지옥일지도 모른다.

임신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까지는 무려 이 주나 기다려야 한단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옅게 피가 비치고, 처음엔 임신 증상 같던 여러 증상이 점점 사라져 갔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간절해졌을까? 실패의 조짐들이 나를 자꾸 불안하게 만든다.

“너 미쳤니? 우리 나이가 이제 사십이야. 이제 애를 낳아 어쩌자고. 애가 성인이 되면 환갑이겠다. 애 학교 들어가면 돋보기 쓰고 숙제 봐 줄 거냐?”

오랜 친구 인휘는 자기가 사 들고 온 수박을 통째로 퍼 먹으며 언성을 높였다.

인휘는 독신주의를 외치다 심지어 얼마 전엔 몇몇 친구를 불러다가 자기 자신과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인휘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자신과의 결혼이라니. 해외토픽도 아니고,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 별 일이 다 있구나 싶었다.

나름 자기 작업실을 클럽처럼 꾸며 놓고, 손님들에게 초대장도 만들어 돌렸다. 음식은 핑거푸드로, 형식은 스탠딩 파티였다. 난 이 식이 끝날 때쯤 인휘가 머리에 쓴 베일을 던지며 행위예술을 했노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식이 모두 끝나고 손님들이 돌아갈 때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술가의 세계는 다 이런 건가 의아해 하면서 이것도 비혼주의의 한 형태인가 생각했다.

요즘은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원치 않는 불편한 관계에 묶이는 게 싫어서, 또는 자신만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비혼을 선택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확실히 사회적인 문제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옳은 건지는 아직 의문이다.

“글쎄… 그런가?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어쩌다 보니 휩쓸려 시술을 하게 되긴 했는데 잘 하고 있는 건지 여전히 자신은 없고.”

“승호 씨는? 승호 씨도 오케이 한 거야?”

“그렇겠지.”

“그렇겠지? 이건 또 뭔 개소리? 남편 의사도 없이 결정한 거야? 미친.”

“설마 그랬겠어? 정자 채취도 하고 그러는데?”

“그런데 대답이 뭐 그래? 확실하지 않다는 듯이.”

“좋다, 싫다, 정확한 표현을 안 하니까.”

그런 말들을 내뱉고 있는 내가 정말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남편이 아기를 정말 원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도 들기 시작했다. 아기를 혼자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키울 것도 아닌데 뭔가 확실한 구두계약이라도 해 놓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으로 먼저 돌아간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승호 씨, 나 너무 힘들어. 몸 상태도 너무 안 좋아.

하지만 역시 남편은 내 메시지를 보지도 않았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엑스박스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서운한 마음에 휴대폰을 꺼 가방에 넣어 버렸다.

“애 있음 시간 뺏기지, 힘들지, 돈 많이 들지, 뭐 좋은 게 있다고 비싼 돈 들여가며 이 고생이냐? 이걸 바로 개고생이라고 하는 거다, 인간아.”

인휘는 그렇게 한참 독설을 쏟아내다가 일이 있다며 서둘러 돌아갔다. 하지만 난 인휘가 바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인휘는 일이 바쁠 때 늘 커피를 달고 사는데 오늘은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예술하는 사람은 원래 영감이 떠올랐을 때 몰아서 일을 하는 거라며 자신의 게으름을 꽤 설득력 있게 포장하는 그녀였으니까.

속이 여전히 울렁거려 침대에 몸을 눕혔다. 벽에 걸린 거울에 내 모습이 보였다. 생기가 사라진 얼굴엔 여러 개의 물음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내 자신에게 되물었다. 키울 자신은 있는 거야? 좋은 부모가 될 준비는 된 거고? 남편은 정말 아기를 원하고 있는 게 맞아? 생각이 이어질수록 속이 더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거울 속 내 얼굴도 자꾸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았다. 이러다가 정말 돌아버릴 것 같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아침 일찍 피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오후에 바로 나온다 해서 화장실 갈 때도, 밥 먹을 때도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 놓지 않았다. 평소 하지도 않던 기도가 절로 나왔다.

“며칠 후에 이 차 검사를 할 거지만, 일단 수치로는 임신인 걸로 나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정도 수치면 쌍둥이는 아닌 것 같고요. 다음 번에 검사 했을 때, 정상적으로 수치가 잘 올라가면 잘 된 거고 잘못하면 유산될 수도 있으니 아직 조심하세요. 그런데 중급이라 전 사실 기대 안 했었는데 정말 럭키네요. 축하합니다.”

전화를 끊고 한 몇 분은 멍하게 앉아 있었다. 며칠 후 다시 한 검사에서도 의사는 정상적으로 수치가 잘 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그 땐 더 오랫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임신이 아니어도 실망할 것 없다고 남몰래 나를 세뇌하고 있었다. 지금껏 아기 없이도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나를 설득했었다.

“언니, 정말 축하해요. 진짜 럭키네. 태명도 럭키라고 해야겠어요.”

소식을 들은 아가씨가 나보다 더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정말 남들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단번에 성공했으니 럭키라고 했다. 하지만 난 괜히 아가씨의 행운을 가로챈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그냥 아가씨가 성공하고 내가 실패하는 게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자꾸 내 발꿈치를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 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이 주 후. 미국 와 처음 가는 병원 검진이었다. 한국 병원의 담당의는 이 주 후엔 반드시 병원을 찾아가 초음파도 보고, 아기가 정상적으로 잘 크는지 확인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열 시간의 긴 비행과 시차적응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는 초음파 모니터 속, 작은 검정색 동그라미를 보고서야 내가 진짜 임신을 했다는 걸 실감했다.

처음으로 듣는 럭키의 첫 심장 소리. 쌕쌕쌕쌕… 쌕쌕쌕쌕…

그 작은 녀석이 내는 힘찬 소리. 엄마라고 부르는 목소리도 아닌 고작 바람 소리 같은 그 소리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건 지금껏 내가 들어본 그 어떤 소리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의사가 다시 한 번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남편은 말없이 자신의 손수건을 건넸다.

천국으로 향할 것 같은 하얗고 긴 복도. 그리고 그 복도를 잇는, 아직 어느 누구의 생각도 담아 본 적 없는 순결한 벽. 내가 가장 바라던 소원. 내가 이루고 싶던 간절한 소원은 과연 뭐였을까?

난 드디어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렇게 벽에 걸고 싶었던 소원은 바로 럭키의 첫 초음파 사진과 그 아이의 심장 소리였다. 내가 무의식 속에서조차 간절히 쫓고 있었던 건 럭키와의 만남이었다.

진료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병원 가까이에 있는 동물원을 찾았다. 바로 집으로 가기엔 아까운 가을 초입이었다. 개학 후라 그런지 다소 썰렁했다. 그래서인지 등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어린 아이들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쏟아져 나왔는지 신기했다. 비로소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도 눈에 띄었다. 세상에 임산부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우리는 여기저기를 돌아 오스트레일리아 전시관에 도착했다. 살짝 추워진 날씨 탓인지 야외 우리 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걸어 돌아 실내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왈라비다!”

난 반갑게 외치며 유리벽 앞으로 달려갔다. 왈라비 두 마리가 토막 낸 당근을 작은 손으로 움켜쥐고 갈아 먹는 중이었다.

“아, 이게 왈라비였구나? 당신 꿈에 나왔다던.”

“기억하네? 그게 우리 럭키 태몽이었을 줄이야.”

“그러게. 그런데 왜 하필 왈라비였을까? 논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무언가가 더 필요해.”

“으휴… 그 놈의 논리, 논리, 논리!”

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 저기 타조도 있네. 그 옆에 타조 알 모형도 있고. 가서 저건 논리적인가 잘 살펴보던가.”

남편은 내 비아냥이 듣기 싫은지 벽에 붙은 설명판 앞에 섰다. 나도 다시 고개를 돌려 왈라비 우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꿈에서 본 그대로였다. 잿빛 털과 흡사 큰 쥐 같은 얼굴, 긴 꼬리, 아주 작고 앙증맞은 손. 캥거루보다 작은 크기와 귀여운 외모 때문인지 왈라비는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그 옆은 타조 우리였다. 태어나서 처음 타조를 본 어린 아이들이 유리벽 앞에 바싹 달라붙어 탄성을 질렀다. 그러자 타조는 그 인기에 부응하듯 커다란 날개를 퍼덕거리며 우리를 한 바퀴 행진했다. 그리고 또다시 그를 잇는 아이들의 탄성. 뒤에 서 있던 부모들은 그 모습이 마냥 귀여운지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나도 럭키의 모습을 상상했다. 타조 한 번 보고, 엄마도 이것 좀 보라며 돌아보는 럭키의 눈은 순진한 호기심이 넘쳐날 것이다.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왜 왈라비여야만 했는지 알아냈어.”

남편이 자랑스럽게 어깨를 치켜 올리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 표정은 마치, 거봐, 내가 뭐랬어? 분명한 논리가 있을 거라니까.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들어나 보자. 그래서 뭐였는데? 그 이유가.”

남편은 천천히 오스트레일리아 전시관을 나가며 말을 이었다.

“왈라비가 캥거루와 비슷하단 건 알지?”

“딱 보면 모를까.”

“그래. 그렇다면 캥거루 하면 뭐가 제일 먼저 떠올라? 바로 육아낭이잖아. 새끼를 넣어 다니는 뱃속 주머니.”

난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왈라비도 캥거루처럼 육아낭에 새끼를 키우는데 일 그램도 안 되게 태어난 새끼는 자기 앞발로 육아낭으로 기어올라들어가 그 속에서 반년에서 일 년을 자란대.”

“공부 많이 했네?”

“그런데 처음 태어난 새끼 사진을 보니까 마치 우리 럭키를 닮았더라고.”

“럭키? 무슨 말이야? 이제 오 주 밖에 안 되었는데.”

“그러니까. 내가 저번에 인터넷에서 찾아 보니까 그 정도 때 태아의 모습이 딱 저랬어. 그냥 빨간 덩어리 같은.”

남편은 왈라비 새끼가 처음 태어났을 땐 초기 태아의 형태와 같이 생겼는데 육아낭에서 자라며 점점 우리가 알고 있는모습으로 성장한다 했다.

“시험관 아기 시술이 그것과 닮지 않았어?”

난 아직도 남편의 의도를 잘 모르겠다는 듯 팔을 포개어 잡으며 쳐다 보았다. 남편은 그런 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만 보며 걸었다.

“보통 아기들은 그냥 엄마 뱃속에서 쭉 자라 나오는데 우리 럭키 같은 아기들은 엄마 뱃속에서 한 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십 개월을 커서 나오는 거잖아. 그래서 왈라비가 아니었을까?”

“아… 말 되네.”

그제야 난 포개었던 팔을 풀어 남편의 팔에 끼워 넣었다. 꽤 오랜만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선 것은.

“그렇다면, 타조알은?”

“타조알?”

“응. 타조알이 허물어지며 나온 아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음… 흐물거리는 껍데기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임신 방법이 아니니까 다소 불안하단 뜻이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건강한 아기로 태어난다는 거지.”

남편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주장에 확고함을 드러냈다.

“꿈보다 해몽이네.”

난 제법 남편의 해몽이 마음에 들었다. 어떤 과정이었든, 이제는 럭키가 건강하게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명답게.

“아니면… 혹시 우리 럭키가 박혁거세 같이 훌륭한 리더로 자란다는 뜻은 아닐까?”

“뭐라구? 매우 논리적이지 않은데? 당신답지도 않아.”

이번엔 내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나의 주장에 확고함을 드러냈다.

그렇게 꿈해몽을 하는 동안 우린 벌써 출구 가까이에 와 있었다. 넓은 동물원에서 지도도 없이, 안내서도 없이 용케 한 바퀴를 잘 돌아 나왔다. 우리 둘이 함께 걸어 헤매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은 나 혼자 걷는 길이 아니었다.

“승호 씨는 믿어져?”

“뭐가?”

“우리가 부모가 된다는 게.”

“그럴 리가. 그냥 적응해야 하는 과제 같은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난 이제 안다. 미세하게 올라간 남편의 입꼬리의 의미를.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문자 메시지로 아버님께 럭키의 초음파 사진을 보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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