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을 콤플렉스’는 종종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6월은 애매한 계절이다. 봄이라고 하기엔 좀 늦은 감이 있고, 여름이라고 하기엔 아직 설익은 느낌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일 년을 사 등분 해 6, 7, 8월은 여름이라 단언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초’자를 붙여 초여름이라고 하면 되잖느냐 너스레를 떤다. 까짓거 뭐면 어떤가. 사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진 요즘, 이 모든 구분이 사치다.
올 6월은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광속으로 지나갔다. 처음에 아빠가 보잉에 지원했단 말을 듣고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보잉이 누구네 집 개 이름이냐, 영어도 잘 못 하는 당신을 거기서 왜 받아주겠냐, 그냥 지금 다니는 회사나 잘다녀라. 엄마는 잔소리로 연타를 날렸다. 하지만 서류가 통과되고, 아빠가 면접 보러 미국행 비행기를 탔을 때, 엄만 다시 말을 바꿨다. 어? 이러다 진짜 이민 가는 거 아냐? 또 얼마 후, 사람들이 와서 이삿짐을 실어가고, 엄마는 내 학교에 자퇴 신청서를 냈다. 숙모와 할머니는 영영 우릴 떠나보내는 사람처럼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내 주머니에 신사임당 두 장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 반면에 아빤 벌써 어깨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특히 엄마 앞에선 더 그랬다. 봐, 내가 해냈잖아. 당신 남편이 이제 보잉 직원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그저 공항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이리저리 짐을 뒤섞고 있었다.
사실 내가 기대하는 건 미국도, 이민도 아니었다. 먼저 여름방학이 한 달이나 당겨져서 좋았고, 두 번째는 단독주택에 살게 되었다는 게 꿈만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원하던 골든래트리버를 기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까지 모든 게완벽했다.
“이제 막 두 살 됐고, 중성화 수술은 다 마쳤대요. 수컷인데도 워낙 이 종은 순해서 키우기 편할 거랍니다. 아, 참 이름을 가르쳐 드려야지. 개 이름은 ‘가비’래요.”
가비는 집주인의 개였다. 은퇴한 노부부가 모국에서 몇 년 살기로 했는데 가비를 데려가자니 작은 아파트에선 아무래도 무리겠다 싶어서 우리에게 부탁해 온 거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집과 함께 개도 빌린 셈이었다. 집을 싸게 빌리는 대신 개를 길러 주는 게 옵션이었다.
“이름이 ‘갑’이라고요? 무슨 놈의 개 이름이 갑이야?”
“네? 그게 무슨… 아, ‘갑을 관계’ 할 때 그 갑이요? 아니, 얜 가비예요, 가비.”
“그거나 그거나. 암튼 이름부터 참 맘에 안 드네.”
“어휴, 당신 또 그 콤플렉스. 그만 좀 해요, 진짜.”
아빤 ‘을 콤플렉스’가 있다. 할아버지가 큰아들을 낳고 돌림자인 ‘성’자에 ‘갑’을 붙여 이름을 지었던 게 화근이었다. 둘째도 아들을 낳자 큰아들이 갑이니 둘째는 을로 하자 했고, 셋째, 넷째도 연달아 아들을 낳자 자연스레 병, 정을 붙이게 됐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큰아버지부터 차례로 김성갑, 김성을, 김성병, 김성정, 이런 식이다. 사실 이름 콤플렉스로 따지자면 바로 아래 삼촌이 가장 심했을 텐데 아빤 괜히 그 ‘을’이 주는 뉘앙스가 더 싫다고 했다. 요즘 가뜩이나 뉴스에 건물주나 대기업 CEO의 갑질 이야기가 많다 보니, 아빤 갑의 영원한 피해자 ‘을’이 되는 게 싫었던 거다. 더구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항상 아들들을 부르실 때 중간자를 빼고 부르시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니 아빠를 부를 땐 당연히 을아, 우리 을이, 이렇게 됐다.
가비는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에게 엉덩이를 들이밀며 친근감을 표했다. 꼬리를 붕붕 휘두르자 커튼처럼 내려온 꼬리털이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처럼 흔들렸다. 개들은 엉덩이를 들이밀며 서로에게 호감과 안전을 확인한다던데 가비도 아빠에게 그런 듯했다. 되려 엄마나 나보다 아빠에게 더 치근덕거렸다.
렌트 매니저에게 집 열쇠와 차고 오프너, 가비를 인계받은 후, 우리는 드디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보낸 짐은 한 달은 돼야 도착한다니 당분간 가구 없이 대충 버텨야 했다. 캐리어가 차고 앞 콘크리트 바닥을 드르륵거리며 따라왔다. 아빠는 오프너로 제일 먼저 차고 문을 열어보았다. 차 두 대는 넉넉히 들어갈 만한 크기, 전 주인이 만들어 놓은 작업대, 간단한 뒷마당 관리용 도구들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엄마는 부엌을 제일 먼저 둘러 봤다. 대리석이 깔린 커다랗고 하얀 아일랜드, 광채를 내는 스테인리스 가전제품들. 엄마에겐 살짝 높은 싱크대 앞에 서면 작은 창문으로 뒷마당이 훤히 내다보였다. 거실의 벽난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깜찍한 불을 당장이라도 토해낼 것만 같았다. 난 거실을 돌아 방들이 모여있는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한국에서 사진으로 미리 보긴 했지만, 내 방의 실물이 궁금했고,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햇살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방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어떨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방은 위에만 총 세 개였는데 복도 제일 끝 방은 아빠, 엄마가 쓸 방이었고, 가운데 낀 방이 내 방, 나머지 하나는 손님방으로 꾸민다고 했다. 내 방에선 뒷마당이 잘 내려다보였다. 나무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니 뒷마당 가장자리를 둘러 핀 예쁜 꽃나무와 야외용 테이블이 보였다. 가비는 아빠 뒤를 쫓으며 주인 대신 집 안내를 했다.
“일단 뭐 좀 먹자. 한국 마트는 여기서 먼가?”
“오늘은 나갈 생각 말아요. 너무 힘드네. 내가 챙겨온 컵라면이 몇 개 있으니 그걸로 오늘 저녁은 때우고, 내일 아침에 우버 불러서 차 렌트부터 해요. 당신 다음 주부터 바로 일 가야 한다면서요.”
“하아… 회사 가기 싫다. 온종일 영어로 말해야 할 텐데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요? 당신이 오자 했으니 열심히 부딪혀 보는 거지. 뭐 사람 사는 데가 어디나 똑같지 않겠어요? 나도, 예진이도 각자 당분간 이곳에 적응해야죠.”
엄마는 컵라면 세 개를 들고 부엌으로 갔다. 그리고 작은 냄비 하나, 숟가락 세 개, 젓가락 세 쌍을 꺼냈다. 가방 쌀 땐 저런 걸 왜 캐리어 안에 넣어가나 했는데 막상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떨어져 보니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물이 끓는 동안 난 가비에게 손, 엎드려, 돌아 등을 시켜봤다. 녀석은 마치, 이런 건 ‘피스 오브 케잌이지!’라는 듯 가뿐하게 해냈다.
“아빠, 이것 봐! 가비가 엄청나게 똑똑해.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말이야. 골든래트리버가 개 중에선 세 번째로 똑똑하대. 아주 잘했어, 가비.”
난 주인이 남겨 놓고 간 간식을 손바닥에 올려 녀석의 앞에 내밀었다. 그랬더니 녀석의 긴 혓바닥이 내 손을 끈적이게 훑고 지나갔다. 더럽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지가 똑똑해 봤자 개지.”
“아빤 뭘 몰라. 치이… 그렇지, 가비야?”
“니네 아빠랑 가비, 잘 어울리는 커플이네. 개는 ‘갑’이, 아빠는 ‘을’이.”
“뭐야? 어디에다가 누굴 비굘 하는 거야? 지금 개가 나보다 상전이다, 이거야?”
“누가 뭐래요? 그냥 이름이 그렇다는 거지. 원래 갑과 을은 항상 붙어 다니잖아요.”
“당신 말 다 했어? 아휴, 저놈의 개 때문에 이게 무슨…”
“아빤 이제 가비 집사야.”
“집사?”
“응. 요즘 강아지나 고양이 기르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거든.”
“아이고, 나 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까짓 동물 따위가 사람 상전 노릇을 하네.”
“원래 개 팔자가 상팔자라잖아요. 그리고 엄연히 따지자면 가비는 집주인의 식구고요. 그만 성내고 이리로 와요. 라면 다 됐네.”
아빤 그 후로도 개 팔자와 자기의 팔자를 비교하며 몇 번 더 목소리를 올렸다가 내렸다. 가비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살피며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귀를 쫑긋 세웠다. 가비의 목에 걸린 개뼈다귀 모양의 인식표가 고리에 부딪혀 짤그랑 소리를 냈다. 거기엔 집주인의 연락처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집주인은 몇 년 동안 이곳에 없을 테니 우리 연락처를 넣어 새로 만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한국에선 인터넷으로 간단히 주문하면 될 걸 여기선 어딜 가야 만들 수 있으려나? 인터넷이 들어오면 그것부터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여기 학교는 9월부터 시작이라 난 무려 세 달간의 방학을 얻었다. 엄만 아침 일찍 아빠를 회사에 데려다줬다. 출근 첫날이었다. 한 손엔 샌드위치를, 등엔 검은색 배낭을 멘 아빠의 뒷모습이 설렘과 두려움 사이를 오갔다. 그것이 몇 달 후 내 모습이라고 생각하자 내 손에서도 땀이 송송 났다. 밤에 들어오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을는지, 아니면 긴장이 풀려 그대로 침대로 향할는지. 그래도 나름 한국에선 공대 석사 출신에, 대기업 직원이었었는데 이만한 거로 무너지진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화창한 날이었다. 엄마에게 가비를 산책시키러 나가자고 졸랐다. 개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가비도 내 의견에 동의하듯 꼬리를 흔들었다. 집을 나오자 바로 바다가 보였다. 태평양이었다. 물론 우리 집 안에선 안 보이지만.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바다와 맞닿아 있는 집들을 볼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집들이었다. 분수대를 중심으로 로터리가 있는 고풍스러운 하얀 집은 뉴스에서만 보던 백악관 같았다. 그 밖에도 입구에 키패드가 있어 아무나 출입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집, 경치가 더 잘 보이게 언덕 위에 삼 층으로 지어 층마다 발코니를 단 집, 스페인 양식으로 기와를 얹어 지붕이 멋들어진 집까지 별천지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별천지인 건 이 동네에 사는 개 종류였다. 개 백과사전을 보듯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하운드에서부터 달마티안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개가 다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래트리버나 허스키는 동네에서 가장 흔한 개에 속했다. 거의 시골에 사는 누렁이, 흰둥이, 검둥이 수준이랄까? 아름다운 동네에서 즐기는 평화로운 산책이었다. 그런데 집에 거의 다 왔을 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가비가 어떤 집 앞마당으로 확 뛰어 들어가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줄을 잡고 있던 엄마는 가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줄을 놔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바닥에 넘어져 팔과 손에 작지 않은 상처가 났다.
“예진아! 가비 잡아!”
엄만 다친 와중에도 가비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난 그 집 앞마당에 서서 머뭇거리기만 했다. 발코니에서 시베리안 허스키 두 마리와 종을 알 수 없는 작은 개가 동시에 날 보고 짖어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비도 앞마당을 빙글빙글 돌며짖어댔다. 난감했다. 그때 한 남자가 개 짖는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왔다. 난 순간 경직된 입 주위 근육을 억지로 찢으며 어색한 미소를 날렸다. 그런데 남자가 이름을 부르자 가비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가는 게 아닌가. 남자는 가비가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는 우리에게 그 집에 새로 이사 온 가족이냐 물으면서 가비의 목줄을 잡아 건네주었다. 난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여러 차례 ‘쏘리’와 ‘땡큐’로 인사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친 개도 없었다.
엄만 돌아오자마자 상처 부위에 항생제 연고를 발랐다. 큰 개의 위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 날이었다. 놀란 마음에 가비를 째려보니 녀석은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보다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물어왔다. 하지만 난 녀석의 엉덩이를 몇 대 때려 뒷마당으로 쫓아버렸다. 녀석의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문을 열어줄까 싶어 어디 가지도 않고 문 앞에 청승맞게 엎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이번 기회에 단단히 혼내줘야 다시는 안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방으로 올라왔다. 맨바닥에 월마트에서 사 온 담요를 덮고 누웠다. 창문을 통해 가비의 낑낑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담요를 머리끝까지 올려 덮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죄책감이 들어서였다.
차고 열리는 소리에 깼다. 아빠가 온 게 분명했다. 미국 집들은 나무로 지어서 그런지 조용할 땐 온 집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렸다. 물론 나중에 티브이를 켜 놓거나 가구들이 들어오면 또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집 모든 곳이 숨길 수 없는 하나의 공간 같이 이어져 있었다. 심지어 아빠가 배낭을 마루에 내려놨네, 엄마가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덥히고 있네, 아빠가 바닥에 앉았네 하는 것까지 다 알 수 있었다.
“일찍 왔네요? 어떻게 왔어요? 퇴근 시간 맞춰 가려고 했는데.”
“매니저 집이 이 부근이래. 와이프 부른다니까 자기가 그냥 데려다준다고….”
“그래요? 친절한 사람이네요. 다른 회사 사람들도 그렇게 잘 대해 주던가요? 인종차별 같은 건 없고요?”
“뭐 첫날이니까. 그냥 인사하고, 내 자리랑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전해 듣고.”
“한국 회사랑은 아주 다르죠?”
“사람들은 더 양반인데, 말이 안 되니까 그냥 내 일만 하는 거지, 뭐.”
“여기도 상사가 부하 직원한테 막 대하고 그래요?”
“그렇진 않은데…”
“한데 뭐요?”
“아냐. 근데 당신 손은 왜 그래?”
아빠가 엄마의 상처를 발견한 것 같았다.
“아녜요. 아무것도. 그냥 가비 산책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저 혼자 막 뛰어가는 바람에 끌려가다 넘어져서….”
“뭐? 이놈의 자식 어디 갔어? 내가 이걸 그냥!”
“됐어요, 하지 말아요. 예진이가 엉덩이 몇 대 때려 주곤 뒷마당에 뒀단 말예요.”
아빠가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바깥 불을 켜는 소리가 들렸다. 난 이 시점에서 튀어 내려가야 하나, 조용히 있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아빠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엄마가 따라 나가고, 이어 가비가 깨갱 하고 높은음을 내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담요를 걷어차고 일어나 일 층을 향해 달렸다.
“아빠, 가비한테 그러지 마!”
“여보, 됐다니까요, 난 괜찮다고요.”
아빠는 이미 가비의 목덜미를 세게 잡아 마당 구석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엄만 아빠한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이 상황을 말리려 했다. 가비의 꼬리가 아래로 말아져 있었다. 저도 무서운 거였다. 녀석이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며 자꾸 쇠 긁는 소리를 냈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눈물이 났다.
“아빠, 아빠… 그러지 마, 제발….”
난 맨발로 뛰어나가 가비를 끌어안았다. 아빠의 손엔 큰 빗자루가 거꾸로 잡혀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가비를 죽일 듯했다. 난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엄마가 다시 내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우린 가비, 나, 엄마 순으로 튀김 옷이 덧입혀지듯 겹겹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빠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아빠의 숨소리 위에 엄마와 나의 숨소리도 불규칙한 리듬으로 섞여갔다.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땐 나 절대 안 참아.”
잔디 밟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그제야 엄마의 몸이 내 몸으로부터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나도 천천히 팔에 힘을 풀고 가비를 보았다. 녀석이 고맙다는 듯 내 얼굴을 핥았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가비를 다시 집 안으로 들여왔다. 녀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실 카펫 위에서 잠들었다. 엄마는 진이 다 빠졌는지 거실 구석에 몸을 기댄 채 앉았다. 난 미안한 마음에 가비 곁을 지켰다.
그런데 한 십 분쯤 지났을까? 커튼도 없는 앞 창문에 붉은빛과 푸른빛이 교차하며 번쩍거렸다. 그리고 초인종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경찰 두 명이 엄마에게 뭔가 물어보기 시작했다. 대충 들어보니 옆집 사람이 가비의 일로 신고를 한 것 같았다. 아차 싶었다. 미국이야말로 개들에겐 천국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동물 학대를 큰 범죄로 치부하는 그들 문화에서 가비의 일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더군다나 뒷마당에서 있었던 일이니 이 조용한 동네에 얼마나 잘 들렸을까? 아마 옆집뿐 아니라 앞집, 그 뒷집까지도 다 들렸을 거다. 엄마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경찰은 한쪽 손으론 허리춤 총을 붙들고, 다른 쪽 손으론 플래시 라이트로 집 안으로 비추며 들어왔다. 가비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해자인 아빠를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빠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계단을 내려왔다. 경찰은 꼼꼼히 가비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들끼리 별다른 상처는 없는 것 같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아빠를 쳐다봤다. 엄마는 순간 위험을 감지했는지 자신의 상처를 경찰에게 보이며 안되는 영어로 가비가 자기를 다치게 했고, 아빠가 그걸 저지하다가 잠시 해프닝이 일어난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경찰이 아빠에게 그 말이 맞느냐 재차 확인하자 아빠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경찰은 우리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때 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빠에게 가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었다.
가비가 아빠에게 살갑게 군 덕에 경찰은 간단한 경고만 남기고 돌아갔다. 아마도 그 간단한 경고는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빤 경찰서로, 가비는 보호소로 간다는 말인 것 같았다. 가비는 다시 거실 바닥에 엎드렸고, 엄마도 다시 구석에 가 기대어 앉았다. 아빤 멀찌감치에서 가비를 쳐다봤다.
“저 녀석 때문에 이게 다 뭐야?”
“당신, 가비한테 고마운 줄이나 알아요. 가비가 꼬리라도 안 흔들었으면 당신 지금 이러고 못 있어요. 그리고 가비는 우리 개도 아니잖아요. 주인집 개라고요. 가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린 아마 당장 이 집에서 쫓겨날걸요?”
“아주 상전 나셨구먼. 내가 은혜를 입었네. 저놈의 개새끼한테.”
“아빠, 그런 말이 아니잖아. 가비도 생명인데 그냥 좀 예뻐해 주면 안 돼? 가비가 일부러 엄마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우리도 아직 가비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몰라서 일어난 일이잖아.”
“짐승은 다 짐승이야. 짐승이 사람이야? 그리고 이 집 가장이 누구야? 나야, 김성을. 내가 왜 저 개새끼보다도 더 존중을 못 받아야 하는 건데? 내가 이 집에서도 을이야? 좀 집에서만큼은 갑이자, 나도!”
아빤 나무 바닥이 다 꺼지도록 큰 소리를 내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엄만 속이 타는지 수돗물을 한 컵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곤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우린 그날 밤, 각자 다른 방에서 잤다.
아빠의 ‘을 콤플렉스’는 종종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친가 쪽 모임이 있어 가면 아빤 소주 한 병쯤 목에 털어 넣고 꼭 하는 레퍼토리가 있었다.
“내가 왜 을이야? 병이, 정이는 그렇게 비참하게 들리진 않잖아? 그런데 왜 항상 을은 갑의 횡포에 당해야 하는데? 저 봐, 저 봐. 저기 뉴스에서도 갑질은 항상 을에게만 하잖아? 회사 가 봐. 아주 가관이야. 이 새끼들, 지들이 나보다 잘난 게 뭐 있다고. 젠장…”
그때부턴 삼촌이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말리기 시작한다.
“아유, 형. 알지, 알지. 내가 그 맘 다 알아. 자 이만 다른 얘기 할까? 그 뭐야, 가족 여행 계 든 거 2년 다 되어 가는데 우리 어디 갈까?”
“야, 이 새끼야. 니가 알긴 뭘 알아? 회사 생활을 해 봤냐? 넌 니 사업 하면서 사장 소리 들으니까 좋든?”
“사장이 뭐 좋아? 맨날 부도 걱정하고, 인건비 걱정하고, 경제 상황 안 좋아지면 어쩌나 고민하고 다 그러는 거지. 형 같은 회사원이 낫다니까. 내 몇 번을 말해? 회사원은 그래도 따박따박 월급 받잖우. 거기다 형은 그,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는 대기업 다니면서 뭐가 걱정이야?”
“정아, 병이 자식 말하는 것 좀 봐라. 지가 회사 생활 알지도 못하면서 저딴 식으로 말한다. 아, 넌 참 공무원이지. 공무원은 잘릴 염려도 없고 차암 좋아. 그치?”
그런데 막내 삼촌은 한가지 문제가 있다. 공무원이라 그런지 앞뒤가 꽉 막힌 게 조금도 곁을 주지 않는다는 것.
“그만 징징대. 아버지, 어머니도 있는데 매번 술만 마시면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 야, 너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이게 그냥…!”
아빠는 늘 치지도 못하는 주먹을 허공에 휘두른다. 그걸 아는 막내 삼촌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이쯤 되면 큰아버지가 나서야 한다. 그래야 끝난다.
“을아. 넌 우리 중에 가장 잘 됐잖냐. 어머니가 너 대기업 다닌다고 자랑을 얼마나 하시는데. 그만하면 우리 형제 중 가장 출세한 거 아냐? “
“형, 형은 늘 갑이니까 좋지? 어머니도 갑이야, 갑이야… 하고 아버지도 갑이야, 갑이야… 하면서 대우해 주니까 좋지? 교회 가면 목사니까 성도들이 또 얼마나 대우해 줄까? 형은 하나님 앞에서도 갑이야?”
“을아. 하나님 앞에서 누가 갑이야? 그리고 성경에서 갑은 항상 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해.”
큰아버지의 짧고 굵은 설교가 끝나면 아빠는 뭔 마법처럼 그 자리에서 고꾸라져 잠이 들곤 했다. 아빠는 꿈속에서만큼은 ‘갑’일까? 아니면 꿈속에서도 여전히 ‘을’일까? 난 늘 그게 궁금했다. 그리고 그 꿈속만큼이나 궁금한 건 회사에서 아빠가 당하는 갑질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하는 거다.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때리고, 욕하고, 없는 일도 만들어 내고, 과중한 업무를 맡기고, 건의나 의견이 통하지 않는 그런 것들일까? 난 늘 술 접대를 하고 늦게 들어오는 아빠의 꼬인 스텝을 보며 생각했다. 같은 회사에서 만나 결혼한 엄마는 그걸 좀 이해하는지 아빠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아빠의 옷과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덮어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빤 친구가 보잉에 지원한단 말을 듣고 바로 자기도 지원서를 넣었다고 했다. 미국에 가면 이런 갑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술 접대도, 야근도 없이 편하게 일하고 남은 시간은 가족들과 오붓하게 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아빠가 집에 있는 동안은 가비를 내 방에 두었다. 그리고 아빠가 출근한 후에야 가비를 꺼내줬다. 녀석도 갑갑했는지 다리를 쭉 뻗어 스트레칭했다. 엄마와 난 가비의 밥과 물을 챙겨주고 집을 나섰다. 가비는 뒷마당에 잠시 풀어 두기로 했다. 오늘은 아빠가 차를 가지고 나가고, 엄마와 난 우버를 불러 근처 자동차 딜러로 향했다. 엄마 차를 하나 뽑을 요량이었다. 미국에선 모든 곳이 멀리 있고, 대중교통이 한국처럼 잘 되어 있질 않아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국에서 아빤 버스와 지하철로 다니고, 엄마가 차를 가지고 다녔었는데 이곳에선 아빠도, 엄마도 둘 다 차가 필요했다. 엄마는 적금을 깨서 가져온 돈으로 적당한 차를 하나 사려고 했다. 차를 고르는 엄마는 매우 신중했다. 한 번 뭔가를 사면 고장 날 때까지 버리지 않는 성격 탓에 다른 조건보다도 오래 탈 수 있는 튼튼한 차를 고르는 것 같았다. 새 차 냄새가 났다. 우리는 들뜬 기분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가비야, 언니 왔다.”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벌써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야 할 가비가 보이질 않았다.
“엄마, 가비가 안 보여.”
“가비가? 잘 찾아봐. 어디 나무 그늘 밑에서 자고 있겠지.”
“그럴 리가. 개들은 귀가 밝아서 멀리 차 소리만 나도 달려 나오는데.”
난 뒷마당에 친 펜스를 따라 한 바퀴를 돌아봤다. 그런데 펜스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내 입에선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 펜스가 열려 있었다.
“엄마! 가비가 집을 나갔나 봐.”
“뭐라고?”
엄마도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어떻게 열었는지 알 순 없지만 분명 닫아 두었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별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누군가 우리가 없을 때 들어와 가비를 훔쳐 간 게 아닐까? 하지만 설마 이 잘 사는 동네에 그런 사람이 있으려고. 그렇다면 가비가 하도 짖거나 울어서 옆집 아저씨가 또 신고를 한 건 아닐까? 그래서 경찰이 보호소로 데려간 게 아닐까? 날도 어두워지고 공기도 차지는데 그 순한, 그래서 더 멍청해 보이는 가비의 얼굴이 떠올라 울컥해졌다. 엄만 일단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자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걸어서 동네를 도는 것보단 훨씬 빠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네를 다섯 바퀴나 돌았는데도 오늘따라 가비는 커녕 골든래트리버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난 좀 더 멀리 갈 수도 있지 않겠냐며 옆 동네도 한번 돌아보자고 했다. 그 옆 동네도 세 바퀴쯤 돌고 나니 가로등 없는 주택가는 어둑해져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결국 우린 가비를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차가 차고 앞에 보였다. 혹시 아빠가 일찍 퇴근해 가비를 데리고 어딜 다녀온 건 아닐까? 차에서 내린 발걸음이 다급해졌다.
“아빠! 가비 데리고 어디 갔었어?”
난 다짜고짜 아빠에게 다그쳐 물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여보, 가비가 보이질 않아요.”
엄마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거, 잘됐네. 스스로 집을 나가줘서.”
아빤 옷을 벗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조금 슬퍼졌다. 그래도 가비가 아빠를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아빠를 향해 꼬리치던 가비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목이 끅끅 소리를 냈다.
“예진아, 일단 너 휴대폰으로 찍은 가비 사진, 옆집 가서라도 프린트해서 동네마다 붙이자. 저번에 산책할 때 보니까 고양이 잃어버린 사람도 그렇게 해 놨더라. 경찰에도 전화해 둘까?”
“경찰이 찾았으면 벌써 연락을… 아, 아직 인식표를 안 바꿨지.”
이럴 줄 알았으면 새 인식표부터 만들어 줄걸. 그랬다면 내 휴대폰 번호를 보고 연락해 줄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주저앉았다. 다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밤을 꼬박 새우며 창밖을 내다봤다. 혹시 가비가 돌아올까 싶어 펜스 문도 열어뒀다. 하지만 밤새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난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옆집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프린트했다. 전에 우리를 신고했던 그 아저씨였다. 아저씨도 비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가비를 강아지 때부터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짐작되었다. 우리가 또 동물 학대를 해서 가비가 도망간 게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긴 했지만, 엄마의 젖은 눈을 보며 다행히 프린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줬다.
보이는 기둥마다 가비의 사진, 그리고 집 주소를 적은 종이를 붙였다. 한 백 개쯤 붙였을 거다. 옆 동네까지 다 붙였으니.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고 엄마랑 계속 동네를 차로 돌다가 혹시 수풀이나 다른 집 사이, 도랑, 구덩이 같은 데 빠져 못 나오는 건 아닐까 싶어 몇 시간을 걸으며 녀석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가비의 흔적은 아무 데도 없었다.
며칠이 더 지났다. 엄마는 이 일을 어찌 집주인에게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집안 분위기가 왜 이래?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퇴근한 아빠가 가방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왜요?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뭐 그냥….”
아빤 말없이 뒷마당으로 나갔다. 엄마도 따라 나갔다. 난 내 방으로 올라갔다. 거기라면 아빠, 엄마의 말을 엿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이 매니저를 내쫓는 데 뜻을 모아 달라고 해서 골치가 아프네.”
“매니저를 왜요? 좋은 사람 같던데.”
“몰라. 그 사람들, 내가 오기 전에도 벌써 3번이나 매니저를 갈아치웠다더라고.”
“참 이상하네요.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말단 사원들이 과장, 부장을 갈아치우는 거잖아요.”
“갑만 횡포를 부리는 줄 알았는데 을의 횡포도 만만찮네.”
“당신이 원하던 거 아녜요? 을이 힘을 갖는 거.”
“글쎄… 내가 원하던 게 과연 이런 거였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쩔 건데요? 당신도 그 매니저 쫓아내는 데 동참할 거예요?”
“모르겠어. 하아…”
아빠는 몇 번 더 긴 한숨을 내뱉었다. 엄마도 말이 없었다.
일주일 째다. 이젠 아빠도 집에서 쫓겨날까 봐 걱정되는지 일찍 퇴근해서 우리와 함께 동네를 돌았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비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개를 본 적 있느냐 물었다. 이름이 가비라고 여러 번 되풀이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빨리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석양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우린 모두 지쳐 앞마당 잔디 위에 주저앉았다. 긴 한숨만 번갈아 쉴 뿐 다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저 길 끝에서 스포츠카 한 대가 느린 속도로 우릴 향해 오고 있었다. 빨간색이라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그런데 뚜껑이 열린 그 차 보조석에 금빛 털을 한 개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운전하고 있는 백인 할아버지는 선글라스를 멋지게 끼곤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차는 점점 우리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순간 우리는 보조석에 앉은 그 개가 가비라는 확신이 들었다.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비야!”
셋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앞에 차를 세웠다. 그 개는 목욕과 미용을 해서 굉장히 말끔했지만 분명 가비가 맞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가비가 우릴 보고도 꼬리를 치거나 차에서 뛰어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잘못 봤나 싶어 조금 더 차 쪽으로 가까이 가서 가비를 불러봤다. 그러나 녀석은 심지어 모른 척 고개를 할아버지 쪽으로 돌려 버렸다. 그런데 녀석의 목에서 바람에 찰랑거리는 개뼈다귀 모양의 인식표가 보였다. 난 얼른 인식표를 잡아 이름을 확인했다. 분명 가비였다. GABI.
“가비야!”
난 너무 반가워 가비를 안고 엉엉 울었다. 하지만 녀석은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내 팔에 안겨 있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개가 맞냐고 재차 물었고, 엄만 인식표를 보여주며 우리 개, 가비인데 아직 인식표의 보호자 연락처를 새로 바꾸지 못해 이렇게 되었다고 손짓, 발짓, 짧은 영어로 설명했다.
할아버지의 말로는 산책하는데 가비가 좋다고 쫓아 오더라는 것이다. 인식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해 봤는데 없는 번호라고 나오고, 혹시 누가 버린 개인가 싶었지만 그런 것 치곤 깔끔하게 관리가 되어 있어서 일단 자기 집으로 데려갔단다. 할아버지네 집은 바다를 보고 있는 가장 큰 집인데 일주일을 감기로 앓아누웠다가 인제야 주인을 찾아 주려고 차에 태워 나왔다고 했다. 동네를 돌다 보면 녀석이 자기 집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차에서 안 내리려는 가비를 끌어내린 건 아빠였다.
“자기 집도 못 찾아오는 무식한 개 같으니라고. 얼른 내려, 이 녀석아!”
목줄을 걸어 몇 번 당기니 가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 며칠간 먹이려고 산 사료와 간식, 각종 장난감을 모조리 챙겨다 주었다.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제품들이었다. 우린 몇 번을 고개 숙여 감사하단 말을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비에게서 내 향수보다 더 좋은 냄새가 났다.
내 방 창문으로 내려다보니 뒷마당 야외 테이블에 아빠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발밑에 가비가 보였다.
“야, 이 녀석아. 김중배의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저 부잣집 할배의 빨간 스포츠카가 그렇게 좋았냐? 넓고 좋은 집에서 비싼 사료 먹으니 좋았냐고. 그래도 이 녀석아, 네 집이 어딘지는 기억해야지. 너 하나 잃어버리면 나도, 우리 식구도 다 쫓겨난단 말이야. 그리고 모름지기 난 사람이고, 넌 개니까 이참에 서열은 분명히 해 두자고. 이 집에서 난 갑이고, 넌 을이야. 알았어? 아무리 니 이름이 가비고, 내 이름이 을이어도.”
아빤 가비의 등을 어색하게 한 번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갑이 꼭 힘이 센 건 아니더라고. 을도 힘이 세더라고. 이번에 우리 매니저가 쫓겨났는데 짐 챙겨서 나가는 뒷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모르겠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건지, 더 힘이 센 건지… 누구든 힘을 가지면 다 그렇게 되는걸까? 내가 생각한 미국 생활하고 너무 달라서 이젠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도 못 꺼내겠네. 사는 게 다 그런 거긴 하지만. 정답도 없고, 경계도 없이 모호한 거. 그런데 나 지금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거니? 개한테 넋두리하는 나도 참 한심스럽다.”
가비는 아빠의 말에 오른쪽 귀를 한번, 왼쪽 귀를 한번 쫑긋 세우더니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냥 바닥에 엎드렸다.
“여보, 짐 들어와. 얼른 나와봐요.”
엄마가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며 아빠를 불렀다. 가비도 깜짝 놀라 일어났다. 드디어 한국에서 보낸 짐들이 도착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온 지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그러므로 이제 내 방학은 두 달로 줄어들었고, 난 곧 11학년이 될 거다. 6월이 다 지났지만 우린 여전히 적응 중이다. 두렵다. 아빠가 느끼는 혼란처럼 이렇게 삶이 모호하고 불투명하게 흘러간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두고두고 열심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아빠 나이가 되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지, 이것도 참 모호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날 석양은 발그레한 아기 엉덩이처럼 예뻤고, 가비 목에 걸린 개뼈다귀 모양의 인식표엔 아빠의 전화번호가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