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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Nov 07. 2023

옥수수 가루 위의 참새

온전히 기억에 각인된 멜로디는 총 16마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프라하의 돌담길 밑에 앉아 있던 사내. 바닥에 대충 펼쳐 놓은 악보 몇 장. 그리고 춤곡이지만 묘하게 구슬펐던 그의 아코디언 연주. 내가 그를 스쳐 지나간 시간은 고작 1분이었다. 그 선율은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하지만 거기에 멈춰 서서 연주를 끝까지 들을 순 없었다. 함께 여행 온 일행들이 눈앞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라고 버티고 싶었지만 프라하 시내 한복판에서 국제 미아가 될지도 모른단 염려가 자꾸 내 등을 떠밀었다. 

    내 기억력은 썩 좋지 않다. 그러나 정말 신기한 건 그 멜로디가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종종 그 기억으로 인해 간절한 소원의 열병을 앓곤 했다. 그게 대체 무슨 곡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처음엔 동유럽의 작곡가들을 찾아봤다. 동유럽의 음악은 서유럽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었다. 뭐랄까, 단조의 분위기를 흘리면서도 군가 같은 속도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떨 땐 너무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서유럽의 음악보다 진심을 숨기는 듯한 동유럽의 음악에 더 큰 매력을 느낄 때도 있었다. 

    무려 17년이다. 온전히 기억에 각인된 멜로디는 총 16마디. 그건 꼬리에 도돌이표를 단 것처럼 내 시간 속에서 무한 재생되고 있었다. 혹시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죽기 전에 그 멜로디의 머리카락이라도 스칠 수 있을까, 그래서 답답함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이 감정을 시원하게 정의할 날이 오긴 할까. 그러면서도 막상 그걸 찾았을 때 바로 이거야, 라는 확신이 들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찾고 기다리는 건 한 묶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찾다’와 ‘기다리다’는 동의어도 아니고, 유사어도 아닌데 왠지 옆에 붙여 놔도 어색하질 않다. 찾는 게 꼭 기다림을 수반하는 것도 아니고, 기다린다고 해서 다 찾아지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찾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또 찾는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이상이든, 시간이든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단지 기다린다는 건 언젠가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며 찾는다는 건 그래도 기다릴 수 있다는 또 다른 희망일 테니까. 

    미국 내 사설탐정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사실 그 중엔 말이 탐정 사무소지 실질적으론 흥신소 정도밖에 안 되는 곳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세상이다. 자판 몇 개만 두드리면 여기저기서 사람을 찾아주겠다고 손을 뻗어 호객행위를 한다. 찾고 싶은 사람의 이름, 결혼 유무, 생년월일, 전에 살던 주소지, 사용하던 전화번호 등을 기입하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단다. 유료 서비스가 대부분이지만 무료로 해 준다는 곳도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보는 얼마 없다. 그마저도 확실치 않다. 그래서 빈칸에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형, 나에겐 큰아버지. 이십 대 초반에 카투사로 복무했단다. 전주에만 있던 사람이 어쩌다가 카투사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학교에서 주먹깨나 날리던 분이 영어를 어디서 배웠는지도 궁금했다. 좌우지간 젊은 나이에 선진문물들을 접했고, 미군과 연계해 장사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사업 자금을 대어 달라고 할아버지에게 찾아갔던 큰아버지는 크게 혼만 나고 말았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할아버지에게 많은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더구나 아래로 자식이 넷이나 더 있으니 돈을 허투루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 

    큰아버지는 그날로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오랫동안 큰아버지의 이름을 호적에서 지우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 보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큰아버지를 사망 처리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지금까지 찾아오지 않는 걸 보면 죽은 게 틀림없다고 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큰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얼마 후 꿈속에 한 번 나타났었다고 그 근거를 댔다. 그렇게 큰아버지의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오늘이 가면 내일이 온다는 말보다 더 당연하게 여겨졌다.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미군들과 가까이 지냈으니 그들을 따라 미국에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국 내 사설탐정을 찾은 것인데 생각해 보니 원래 가진 호적을 두고 미국으로 넘어갔다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자기 이름을 계속 쓴다 해도 영어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도 있다. 

    빈칸에 큰아버지의 이름과 생년월일만 집어넣고 검색했다. 몇 사람이 뜨긴 했지만 모두 큰아버지는 아닌 것 같았다. 이번엔 포탈사이트 검색 창에 이름과 나이를 집어넣고 다시 찾아봤다. 검색 결과에 뜬 사진들을 한 장씩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다 비슷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막상 큰아버지를 찾았을 때 바로 이분이야, 라는 확신이 들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글을 쓰기 위해 유튜브에서 음악을 틀었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 채널은 피아니스트가 직접 연주한 것에 악보 화면을 입힌 영상이다. 하나를 틀면 연달아 다음 곡으로 계속 넘어가도록 설정해 놓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곡이 지나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얼른 유튜브 창을 열었다. 브라질 작곡가 제키냐 아브레우의 <옥수수 가루 위의 참새>라는 곡이었다. 브라질에 사는 친구를 체코에서 찾은 꼴이다. 갑자기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감정이 차올랐다.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이런 우연이라니.

    미국에서 큰아버지를 찾는 건 힘들겠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버지가 또 다른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혹시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 게 아닐까? 이제는 일본 사설탐정을 찾아봐야 하나 잠깐 고민했다. 어쩌면 큰아버지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연락을 못 하는 것뿐이라고 믿으며 다시 찾고,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프라하의 돌담길. 바닥에 악보 몇 장이 대충 깔려 있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퍼져가는 아코디언 소리를 들으며 그 사내 앞에 서 있다. 이번엔 반드시 끝까지 들을 거라고 다짐하면서. 그러다가 그 사내가 연주를 마치고 얼굴을 들면 난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기다리던 것은 옥수수 가루 위에 참새가 날아들 듯 너무나 당연하고도 우연하게, 인생의 명장면처럼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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