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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dbury Oct 29. 2024

동상이몽(同床異夢)

“어? 이 체중계 고장 났나?”

    성경의 첫 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잠자기 전 엄마가 머리맡에서 읽어주시던 동화와도 같았다. 그런 동화가 현실이 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금세 어른이 되어 나의 아담, 남편을 만나 결혼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결혼은 그 자체가 맥락 없는 이야기 같았기에 사람이 이렇게 결혼을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이많았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처음 만났을 때 프러포즈를 받고, 두 번째 만났을 때 상견례를 했고, 세 번째 만났을 땐 이미결혼식장에 서 있었다. 또한 그렇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 해 보고 결혼했더니, 사사건건 부딪치는 일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남편은 늘 아내와 함께 복식조로 볼링대회를 나가는 게 꿈이었지만, 난 그와 댄스 스포츠를 배워 보는게 꿈이었다. 부부끼리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좋다는 강연을 함께 듣고 와서는,
    “그거 봐. 같이 골프 나가자니까? 거기 가면 부부끼리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다고.”
    라고 이야기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톡 쏘아붙였다. 
    “왜 항상 당신 취미를 따라가야 하는데? 나는 골프 싫어. 차라리 운동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수영을 같이 하든지!”
    그렇게 우리 이야기는 합의점 없이 늘 끊임없는 평행선을 그어 나갔다. 할머니께서 물가에 가면 위험하다고 하셨다면서 수영은 절대 할 수 없단다. 그 당당한 남편의 대답에 내 머리 위로는 까마귀가 깍깍거리며 지나갔다. 또 언젠가는 티브이에서 맛집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보다가,
    “나도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
    하였더니, 대뜸 내게 이랬다. 
    “난 맛집 찾아다니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 가더라. 왜 힘들게 그 멀리까지 그거 하나 먹겠다고 찾아가냐고.”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동생에게 특별히 부탁한 일이 있었다. 티브이에서 본 유명 쉐프의 중식당을 꼭 예약해 달라고. 하지만 전화 백 통을 하고도 예약하지 못해 그 대단한 맛을 보고 오진 못 하였지만, 언젠가는 꼭 먹고 말리라는 오기마저 생겼다. 남편은 달랐다. 워낙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의 눈에는 내가 그저 자기 세상 속에 불시착한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 밖에도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해 여자 향수까지도 사 모으는 남편과 꾸미는 것에 병아리 눈곱만큼도 관심이없는 나. 섬세한 성격에 아내에게 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꿈꾸는 남편과 그런 이벤트에 쓸데없다며 핀잔을 놓는 무뚝뚝한 나. 참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샤워하고 나오니 언제나 공포스럽게 나에게 오라 손짓하는 체중계가 눈에 띄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려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체중계 위에 살짝 올라갔다. 침이 꼴깍 넘어가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런데 예전 몸무게보다 5킬로그램이나 더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때 방으로 들어 온 큰딸 아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딸, 이 체중계 정확하니?”

    “아니, 그거 고장 난 것 같던데?”

    딸의 대답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설마 그렇게나 많이 나가려고? 이거 고장 나서 원래보다 많이 나가는 거군.’

    그렇게 자위하고 나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그런데 그때, 남편도 샤워를 하고 나서 쓱 체중계 위에 올라갔다. 

    “어? 이 체중계 고장 났나?”

    남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그거 고장 났대.”

    “어쩐지! 내가 이렇게 적게 나갈 리가 없잖아."

    그렇다. 남편은 나와 반대로 요즘 살을 찌우기 위해 온갖 식이요법과 운동을 하며 노력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며, 이 체중계는 정상보다 더 많이 나가는 거라고 우기고 싶었지만, 순간 웃음이 히죽히죽 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동상이몽이네.”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꾼다더니, 이럴 때 쓰는 말이었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다른 두 남녀가 만나 한 이불을 덮는 부부가 되어 사는 것, 그래서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꾸는 것은 역시 신의 한 수였다. 부부는 같아야 사는 것이 아니라, 달라서 살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왜 그동안 몰랐을까. 

    늦은 시애틀의 밤하늘엔 윤동주 시인이 보았을 법한 예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데,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같은 침상에서 자며 다른 꿈을 꾼다.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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