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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유성 한 조각

나는 별이 되고 싶었다.

by 엔키리 ENKIRIE

언니가 마냥 나쁜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나한테도 쉬웠을 것이다.

언니라는 존재를 나쁘고 싫어한다는 게. 하지만 어느 가족이나 그렇듯이 그렇지 않은 시절도 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은 우리를 외할머니네 맡기거나 우리만 집에 둔 채 곧잘 여행을 다니셨는데, 그럴 때마다 나와 함께 있었던 건 언제나 언니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땐 어머니가 바깥일을 더욱 활동적으로 하면서 집에서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는 날들이 늘었다. 그래서 언니와 둘이 밥을 먹을 때가 더 많았고, 그럴 때마다 둘이 외식을 나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고는 했다.


또 이런 날도 있었다.

외할머니가 아직 정정하실 때 외갓집 식구들은 곧잘 외할머니 댁에 모이고는 했다. 근데 이상할 정도로 그때마다 내게 쌍욕을 하던 사촌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그 사촌 동생과 나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고등학교 때 그 사촌 동생은 초등학생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도저히 싸움을 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 사촌 동생은 내게 건물로 괴롭힘을 준 둘째 삼촌의 둘째였고, 당시 삼촌댁에서 지나치게 오냐오냐 자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머니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둘째 삼촌이 첫째인 딸과 둘째인 그 사촌 동생을 차별 대우 했었으니까.


그러다가 사고가 터졌다. 무려 두 번이나.

사실 그 사촌 동생과 내가 서로 외갓집에서 마주치는 날은 별로 없었다. 그래봤자 외할아버지 제삿날이나 가족들이 모두 모여야 한다고 할 때뿐. 그래서 그 사촌 동생이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그날은 사촌 동생이 외할아버지 제사상 앞에서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제사상 음식들이 난장판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내가 막아섰다.


“준우야, 그러면 안돼.”

“아 왜!! 이거 놔!!”

“준우야, 하지 마. 수아 언니 말 들어야 해.”


내가 준우 앞을 막아서자, 그 누나인 윤정이도 나섰다.


“안돼, 이쪽으로 와. 할아버지 제사상 있어서 위험해.”


그래서 재차 준우를 팔만 들어 올려 제지했는데.


“이…! 이, 씨발년아!!”


갑자기 준우가 달려들었다. 그리고 사정없이 내 몸을 주먹으로 쳐대며, 나의 한쪽 손을 자신의 손톱으로 꽉 붙들어 꼬집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야, 뭐 하는 거야!!”

“야, 미쳤어! 떨어져!”

“준우야 안돼! 하지 마!”


언니와 소희, 준우의 누나인 윤정이까지. 준우보다 어렸던 사촌 동생들은 준우가 덤벼드는 모습에 놀라 겁에 질린 채 준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준우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고,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울 욕들을 마구 쏟아냈다.

결국 언니는 나를 감싸 안 듯이 보호했고, 준우의 누나인 윤정이는 결국 준우를 끌고 나갔다.


“허… 와… 쟤 진짜 뭐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언니의 반응이었다.


“준우 쟤 진짜 미친 거 아냐? 쟤 저번에도 수아 언니한테 욕하고 그랬잖아!”


그랬다. 준우는 그전에도 둘째 삼촌과 다른 사촌들이 모여있던 자리에서 내게 갑자기 쌍욕을 하며 덤벼들었고, 내 손을 심각하게 할퀴어서 피가 나게 했다.


그때는 둘째 삼촌이 ‘너 이 새끼! 지금 누나한테 뭐 하는 거야!’라며 혼을 냈지만, 준우가 그런 삼촌에게 ‘엉엉엉! 아빠 미워!’라며 울었고, 그걸 바라보던 둘째 외숙모는 방 밖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며, 둘째 삼촌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런 둘째 외숙모를 달래주려고 둘째 삼촌이 쫓아갔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모르겠다. 단지 자신의 아들이 잘못했음에도 그렇게까지 미안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던 둘째 외숙모가 놀라웠으니까.


잠깐의 회상이 끝나고, 따갑게 느껴지는 손을 바라봤다.

남자애가 누굴 꼬집을 수도 있구나, 그게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처를 남길 수도 있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살점이 약간 떨어져 나간 채 피가 나고 있었다.


“야, 피나!!”

“….”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할 말을 잃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사촌 동생으로부터 속절없이 당한 폭력이기에. 그 충격의 크기는 더욱 심각했다.

하지만 더한 상처는 결국 다른 데서 생겨났다.


외갓집에서 돌아오던 길, 소희는 여느 날처럼 우리 차에 같이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준우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작은 언니였다.


“엄마, 준우 걔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막 수아한테 갑자기 씨발년이라고 했어!”

“맞아요, 이모! 진짜 준우는 심각해요. 저번에도 수아 언니한테 욕하고 그랬어요!”


흥분한 언니와 소희가 나란히 어머니에게 그 충격적인 사건을 전했다. 그걸 전해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반응은 달랐다.


“아니. 준우가? 이 녀석이… 누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 에휴…. 수아 네가 뭐라고 했는데 준우가 그래?”


전혀 엄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스럽기까지 한 듯한 아버지의 반응과 갑자기 나를 탓하는 발언의 어머니의 발언. 순간 살짝 욱한 내가 억울한 심정이 치밀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뭘 해!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맞아요. 수아 언니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준우가 제사상 망가뜨릴 뻔해서 그거 말리기만 했어요!”

“수아는 아무것도 안 했어. 나도 봤어.”

“소희 너는 원래 항상 수아 편이고. 주아 넌 수아 언니고.”

“엄마!”

“이모!”


황당해하는 언니와 소희의 오디오가 겹쳤다.

나 또한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그래서 울먹거리며 화를 내듯 외쳤다.


“걔가 씨발년이라고 했다니까! 걔가 꼬집어서 살점도 다 뜯어져 나갔다고! 근데 엄마는 왜 걔한테 아무 말도 안 해!”

“네가 준우보다 훨씬 누나인데 그런 것도 스스로 알아서 못해? 그리고 외숙모가 있는데 엄마가 끼어봐! 외숙모가 너네 삼촌을 또 얼마나 못살게 굴겠어!”


황당함을 넘어서는 황망함에 말도 잇지 못하고 있었고, 결국 언니가 나서서 또다시 어머니에게 한 소리 했다. 나는 매번 어머니의 말에 할 말을 잃고는 했지만, 언니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와 언니에게 집을 나가라고 했을 때, 오히려 어머니에게 ‘엄마나 나가!’라고 외칠 줄 알았던 건 언니니까.


“엄마야말로 외숙모보다 서열이 높잖아! 근데 왜 그런 말도 못 해!”

“아, 그만 좀 말해! 집까지 가야 하는데 너네 자꾸 시끄럽게 굴 거야? 그럴 거면 다들 내려! 내려서 걸어와!”

“엄마!”

“이모!”

“주아 됐고! 네가 무슨 수아 대변인이야? 그리고 수아 너! 엄마가 경고하는데. 다시는 백가에 대해 뭐라고 하지 마. 네가 백가에 대해 뭐라고 할 때마다 엄마는 기분이 나빠!

“….”

“이제 됐지? 다시는 말도 꺼내지 마! 다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집에 가고 싶으면 이제 입 다물어! 끝!”


그놈의 백가.

어머니의 조카 백준우는 어머니와 같은 백가가 될 수 있지만, 나는 될 수 없다고 어머니가 여러 번이나 주지 시켰던 성씨.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딸보다 자신의 딸을 욕하고 때린 자신과 같은 성씨의 조카가 욕을 먹는 게 더 화가 난다던 나의 어머니. 그녀에게 내가 가족이었던 적이 존재했을까, 그건 언제나 내 삶의 궁금증이었다.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이모나 삼촌들도 자기 자식들에게 썩 좋은 부모들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촌들끼리 모였을 때 종종 우리끼리 하던 말이, ‘그놈의 백가.’였다.

자신들은 귀한 양반집이기 때문에 ‘백 씨’라고 하면 안 되고, ‘백가’라고 불러야 한다던.


결국 나는 비참함에 차 안에서 조용히 숨죽여 울었고, 그런 나를 소희는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몰랐을 것이다.

그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나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그 모든 행동들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소희가 내게 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게 됐을지.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여러 번. 나와 소희를 지켜보던 언니와 내 친구들 눈에 모두 보일 정도로 그 아이가 나를 얼마나 함부로 대했었는지.


그렇게 부모가 나를 무시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로 인하여, 언니를 포함해 이를 목격한 모든 가족들이 나를 함부로 대했지만. 끝내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그게 내가 그들을 시절 인연이라고 부르게 된 수많은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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