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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친(親親) : 너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며

by 엔키리 ENKIRIE


여기는 지금 일요일 오후 3시를 조금 넘어가고 있어.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

그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 떠올라서 또 마음속으로 사라지는 거라서.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어.


그리고 문득 너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나도 그렇지만, 너도.

우리는 모두 가정폭력 피해자잖아.


그 언젠가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너의 가족들이 너에게 연락을 했을 때.


‘수아야.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족들로부터 도망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때 너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어.

그래서 너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지.


왜냐하면 내가 볼 때 너는.

그래도 너의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었고, 그 시간이 오래됐기 때문에

네가 말하는 ‘도망치고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거든.

내가 볼 때 너는 그들로부터 충분히 분리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내가 가족들과 절연하면서

너의 말을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

나도 모르게 뿌리 깊은 공포에 시달려야 했으니까.


그래서 그때 너를 이해해주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며,

미안함과 죄스러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어.

너의 마음의 고통과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공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그리고 나는 지금,

나의 자취방 밖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

또 내가 어떤 식당이나 카페에 갈 때

무심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에 혹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

우리 가족들이 아닐까, 흠칫흠칫,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네가 예상하는 게 맞아.

나는 꿈에서 가족들이 쫓아오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현실에서도 혹여 그들과 마주칠까 봐,

아니면 그들이 나를 찾아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


나는 이미 과거에 여러 차례 그들과 절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그들이 쫓아와서 실패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들이 나를 쫓아와서 괴롭힐까 봐 그게 너무 공포스러운 거야.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심정을.

누군가의 몸에 멍이 남아서 그게 눈에 띌 정도로

겉으로 후드려 맞은 상처만이 상처인 것은 아닌데.


가능하면, 올해 봄도

무사히 넘길 수 있기를.


뒤늦게 찾아온 봄을 맞이하며.

뒤늦은 사과를 전하는 너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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