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1993년 뜨거운 여름날, 엄마는 열 달 동안 품어 온 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양수가 터져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위태로운 순간을 지나 나는 다행히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그 순간, 누군가는 분홍빛 복숭아 조명 아래에서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였다.
아들이 아니면 낳지 말라던 아빠는 내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닥에 주저앉아 아무 말 없이 조명만 바라보았다고 한다.
딸을 원하지 않았던 아빠에게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뱃속의 아이는 "아들" 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긴 열 달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진실이 드러났다.
아빠는 큰 절망과 배신감에 빠져 한동안 깊은 어둠 속에 머물렀다고 한다.
나는 아빠의 축복 한마디조차 받지 못한 채 세상에 나왔다.
이 사실을 마치 알고있던 것처럼, 나는 유난히 다른 아기들보다 더 많이 울고, 더 쉽게 울었다고 했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가 견뎌야 할 외로움과, 넘어서야 할 상처들을.
어릴 적에 이 이야기를 부모님과 외가친척들을 통해 들었을때 나는 몹시 당황했고 그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던 나는 그저 웃어넘겼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 그 작은 마음 한구석은 조용히 아파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그때의 나를 만난다.
아무것도 모르고 상처받은 작은 나를 조용히 끌어안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준다.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너는 충분히 소중해."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지 않아도, 넌 온전히 너라서 아름다워."
아직도 가끔은 외로움이 찾아오고, 작은 상처가 스며들기도 하지만 나는 이제, 나를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게 되었고 어른이 된 나는 어른으로서 나의 내면 아이를 온전히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상처로 시작된 삶이지만,
나는 끝내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