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진단한 우리 아버지

그리고 텅 빈 마음의 아이

by 마음멘토 이송



​오늘 상담실을 찾은 한 내담자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버지를 '나르시시스트'라고 규정했다. 그 근거로 내밀어 보인 것은 아버지와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들, 그리고 그 대화들을 학습한 AI의 단정적인 답변이었다.
​"AI가 그러더라고요. 우리 아버지는 확실한 나르시시스트라고."
​그의 목소리엔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 교류분석(TA) 관점에서 본 그의 자아 상태는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는 A(Adult) 자아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있었다. 지능은 높고 논리는 정교했지만, 그 성벽 같은 이성 뒤에 숨은 인간적인 융통성이나 공감의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유명 의사인 아버지가 자신의 이니셜 뒤에 반드시 직함을 표기하는 행위를 '자기 과시적 나르시시즘'의 증거라 말했다. 하지만 그가 나열한 사례들은 내가 임상 현장에서 만났던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들과는 결이 달랐다. 오히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의 표현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강박적인 자기 확인의 수단일 수도 있는 영역이었다.
​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권했다. 일단 지금은 판단을 멈추고, 잠시 AI와의 대화를 중단해 보자고.
​내담자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곳엔 '진단명'보다 훨씬 깊은 통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아버지의 괴롭힘, 단 한 번도 매끄럽지 못했던 친구 관계, 그리고 삼수를 해서라도 반드시 의대에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강박. 그의 삶은 불안과 중독, 그리고 오로지 높은 지능만으로 버텨온 무감동한 나날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차가운 논리의 언어는, 아버지를 '괴물'로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정당화하고 싶었던 처절한 방어기제는 아니었을까.
​편리함이 우리 삶을 잠식하는 시대다. 복잡한 인간관계의 갈등도, 얽히고설킨 내면의 슬픔도 이제는 AI에게 질문 몇 가지를 던져 '명쾌한 답'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삶은 데이터의 조합으로 결론지어지는 함수가 아니다. 모호함을 견디고, 고통의 실체를 마주하며,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느릿한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사고마저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외주를 주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과연 건강한 경계를 세워나갈 수 있을까. AI가 내린 정답지 너머에서,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채 울고 있는 한 인간의 마음을 마주하는 것. 그것이 오늘 내가 이 차가운 지성 앞에 앉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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