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이라는 감옥을 부수는 온기
그곳 벽에는 한 남자의 일생이 조용히 적혀 있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 육상 코치를 하고, 땀 흘려 일한 끝에 식당 하나와 화물차 한 대를 겨우 마련했던 사람.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우리 동네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50대 아저씨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평범했던 아저씨는 2014년 그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팔 인대가 끊어지도록 줄을 당겼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영웅이라는 칭호보다 훨씬 무거운 자책이었습니다. 더 많은 아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생계를 이어갈 수 없게 된 현실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창문에 얼굴을 묻고 울부짖던 남자
나는 그를 제주 세월호 심리상담소에서 처음 만났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는 창문을 열고 그 좁은 틈으로 얼굴을 밀어 넣은 채, 기괴할 정도로 커다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울분.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소리를 지르는 것밖에 남지 않은 이의 절박함이 그날의 공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우리는 흔히 ‘착한 사람’은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를 내지 않고, 슬픔을 속으로 삼키며,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무표정한 인내를 ‘성숙함’이나 ‘착함’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그는 결코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고통받는 야생의 생명체처럼 울부짖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마주한 그는 어찌나 정이 많은지 모릅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나를 향해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방에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저 금방 갈게요. 불 떼놨으니 따뜻하게 계세요."
손님이 오기도 전에 방을 데워놓으라는 그 투박한 배려에서, 예전의 비명 대신 깊은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선생님은 나갈 때조차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주스에 귤에, 심지어 벽에 걸린 액자까지 떼어주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고 반겨주십니다. 화나면 화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사람.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무표정과 냉정한 침묵이 예의로 통용되는 서울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그의 거침없는 감정 표현은 오히려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늘 검열하며 삽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배역을 완수하기 위해 카톡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단어를 고르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느라 진짜 내 마음은 조용히 뒤로 미뤄둡니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정말 선함일까요?
선생님 댁에서 맡은 진한 '사람 냄새'는 역설적으로 나를 더 건강하게 채워주었습니다. 분노할 때 충분히 분노하고, 울어야 할 때 온몸으로 울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한 온기. 그것은 감정을 죽여서 만든 인위적인 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상담사로서 내담자들을 만나는 시간은, 어쩌면 내가 진짜 '나'로 돌아오는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치유란 거창한 기법이나 세련된 언어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방을 먼저 데워놓으라는 다정한 목소리, 귤 한 봉지를 건네는 따뜻한 손길, 그리고 고통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트라우마는 여전히 그의 삶 한구석에 남아 있겠지만, 선생님은 이제 소리를 지르는 대신 방을 데우고 사람을 반깁니다. 잊지 않기로 선택한 그 고통을 온기로 바꾸어 나누고 계셨습니다. 감정을 억압하며 착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투명하게 마주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진짜 치유였습니다.
그날 나는 잊지 않고도 살아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한동안 내 마음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지금,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온기를 끄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인내가 아니라, 방을 먼저 데워놓는 마음 같은 투박한 진심일지도 모릅니다.
『착한 사람이 좋다는 착각』 집필 중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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