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이 어렵고 사과가 먼저 나오는 당신에게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왔을까
— 착한 사람이 치르는 가장 큰 대가에 대하여
"저는 괴로운데…… 어디에 말도 못 하고…… 이러다 진짜 미쳐버릴까 봐…… 왔어요."
주은 씨가 처음 상담실에 앉았을 때, 그녀는 의자에 앉는 순간부터 등을 구부리고 있었다. 목소리는 작았고, 눈은 자꾸 아래로 향했다. 자신이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다는 태도였다.
나는 천천히 물었다. 어릴 적 어떤 아이였는지. 가족들이 당신을 이야기할 때 어떤 단어를 가장 많이 썼는지.
주은 씨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착하다고요. 다들 저보고 착하다고 했어요. 언니들도, 어머니도요. '주은이는 착해서 걱정이 없다'라고."
나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주은 씨는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착하다는 말이…… 좀 부담스러워요."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너는 참 착해"라는 말이 주은 씨에게는 칭찬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건이었다.
감춰야만 안전했던 집
주은 씨는 네 자매 중 막내였다.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고, 어머니 혼자 네 딸을 키웠다.
그 집에는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규칙이 있었다. 집안 이야기를 밖에서 하면 안 된다. 튀지 말고 조용히 지내야 한다. 문제를 일으키면 안 된다.
이것은 어머니의 생존 전략이었다. 혼자 네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게 세상의 시선은 늘 불안한 것이었을 테니까.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조용함과 순응을 요구했고, 아이들은 그것을 사랑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그중에서도 주은 씨는 그 규칙을 가장 완벽하게 지킨 아이였다. 네 자매 중 가장 작고, 가장 조용하고, 가장 말이 없었으니까.
"언니들이 다 챙겨줬어요. 저는 그냥 조용히 따라가기만 했어요."
그리고 주은 씨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
그 문장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믿음이 아니었다. 누군가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악의 없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착하다"는 말 안에 숨은 또 다른 문장
우리는 "착하다"라는 말을 칭찬으로 쓴다. 그러나 상담실에서 오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말속에는 들리지 않는 또 다른 문장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너는 착해"는 "너는 말을 잘 듣는다".
"착해서 걱정이 없다"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착해서 편하다"는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 말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모두 상대방의 편의를 기준으로 한 평가라는 것.
"착하다"는 말은 착함 그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불편을 주지 않아서 고맙다"는 뜻일 때가 많다. 착함을 칭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순응을 강화하는 말이다.
나는 주은 씨에게 물었다.
"그럼 착하지 않았다면요? 걱정이 됐을까요?"
주은 씨의 눈이 커졌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한참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안 되죠. 착하지 않으면…… 다들 힘들어하니까요."
그 문장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착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나의 착함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감정은 다른 사람의 편의보다 덜 중요하다.
착함은 칭찬이 아니라 조건이었고, 그 조건을 지키는 한 사랑받을 수 있다는 계약이었다.
착한 아이가 치르는 가장 큰 대가
착한 아이로 살기 위해 주은 씨가 포기한 것이 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기회였다.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질문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요."
이것이 착한 아이가 치르는 가장 큰 대가다.
착한 아이는 화를 내지 않으니 자신이 화가 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거절하지 않으니 자신이 불편하다는 사실도 모른다. 선택하지 않으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상담이 깊어지면서, 주은 씨는 자신의 내면에 특정한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실수하면 안 돼.' '더 잘해야 해.' '내가 문제를 일으키면 다들 힘들어해.'
이 목소리들은 주은 씨 자신의 생각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들었던 말이, 이제 그녀 자신의 목소리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랑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이, 어느새 자기 자신을 옥죄는 감옥이 되어 있었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주은 씨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착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안고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잠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감정을 느껴도 "괜찮아요, 저는 상관없어요"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지.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웃거나 참고 있는지. 섭섭한 마음이 들어도 말하지 못한 채 삼키는지. 부탁을 받으면 내 상황과 상관없이 수락하는지. 갈등이 생기면 일단 내가 먼저 사과하는지. 그리고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지.
이것들은 성격이 아니다. 오랫동안 반복된 패턴이다. 그리고 그 패턴의 뿌리에는 대부분 하나의 믿음이 있다.
착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나는 '착하고 싶어서' 착한 것일까. 아니면 '착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착한 것일까.
만약 두 번째라면, 당신의 착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어린 시절, 사랑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것이었을 뿐이다.
당신은 착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 글은 곧 출간될 《착한 사람이 좋다는 착각》(나무의 마음) 원고의 일부를 브런치용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