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이 설명하는 MBTI S와 N의 차이

최초의 MBTI 형태는?: <칼 융 분석심리학>큐레이션


융이 설명하는 E vs I


“외향성“ ”내향성“이라는 단어는 정신 분석에서 성적 충동을 의미하는 리비도가 향하는 상반된 두 방향을 묘사하는 용어로 스위스 심리학자 융에 의해 제안되었다. 정확히는 리비도의 방향은 3가지이다. 1. 외향적 2. 내향적 3. 퇴행적(환자의 공상적 해석으로 스스로와 주변 대상에 대한 지각까지 왜곡하는 병적인 상황)


어떤 사람이 기본적으로 외부의 객관적 세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쏟을 때, 그 사람을 두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혹은 반대로 객관적인 세계에 대해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두고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부른다. 정도가 심해지면 내향적인 사람은 모든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리면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사람도 고려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이것이 융이 설명한 “퇴행적 외향성regressive extraversion”이다. 다시 말해 히스테리 환자가 자신의 감정의 주관적 가치를 객관적인 세계로 투사하는 현상, 즉 프로이트가 말한 ”전이transference”이다.


그러나 리비도의 상반된 두 방향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도 번갈아 일어난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의 내면에 두 가지 심리적 유형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다시 말해 한 사람이 때로는 외향적이기도 하고 내향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다만 특히 정신분열 환자의 경우 두 가지 메커니즘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게 되는 것뿐이다. 이 상반된 에너지의 흐름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작동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외향적인 환자들이 고통스러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히스테리성 전이라는 방어 기제를 통해 불쾌한 기억이나 인상을 “억압“하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내향성이 작용할 경우에는 인격이 콤플렉스에 집중됨으로써 외부의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융은 이 과정을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경시”라고 일컫는다.



융이 설명하는 N 유형 철학자(feat. 윌리엄 제임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을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고 정당화해야 할지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기질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는 정신분석학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상이다. 제임스는 철학자들을 두 부류로 나누었다. 내면의 삶과 정신적인 것에만 관심을 두는 이상적인tender-minded(지금의 MBTI로는 N유형에 가까운)철학자가 있는가 하면, 물질과 객관적인 현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현실주의적인tough-minded(S유형 설명과 유사한) 철학자가 있다. 융은 이 두 부류의 철학자들 또한 리비도의 상반된 방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이상주의적인N” 철학자는 내향적인I 기질을, “현실주의적인S” 철학자는 외향적인E 기질을 보인다는 것이다.


*용어 정리: 윌리엄 제임스가 생각한 MBTI의 기초 두 가지 유형

이상주의자 = N => 대체로 리비도가 내향적 방향: I => 사고가 발달: T

현실주의자, 실증주의자 = S => 대체로 리비도가 외향적 방향: E => 감각/감정이 발달: F


제임스는 이상주의적 철학자의 특징을 합리주의라고 설명했다. 이상주의적인 철학자들은 원칙과 체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고, 경험을 지배하길 원하고, 추론을 통해 경험을 초월하길 원한다. 이들은 사실들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현상의 다양성 앞에서도 당혹감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자료를 자신들의 이상론에 끼워 맞추고, 모든 것을 자신의 선험적(직관적) 전제와 맞아떨어지게 만든다. 헤겔이 이런 유형에 속한다. 행성의 수를 미리 결정할 때 N의 사고를 이용한 것이다.


정신 병리학의 편집증 환자에서 우리는 이런 부류의 철학자들의 분열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드러나는 너무나 분명한 모순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자신의 엉터리 개념을 우주에 억지로 적용하고, 자신의 병적인 선입견에 맞춰 모든 것을 해석할 수단을 발견한다.

제임스가 N 유형에서 묘사한 다른 특징들은 당연히 이 유형의 근본적 성격에서 나온다. 제임스에 따르면 이상주의적인 사람은 지적이고, 이상을 추구하고, 낙천적이고, 종교적이고, 자유의지의 옹호자이고, 일원론자이고, *교조주의자이다.


* 교조주의Dogmatism는 특정 종교, 사상, 이론을 불변의 진리로 맹신하여 현실 상황에 맞춰 수정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고수하는 태도.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이나 환경을 무시하고 공식이나 교리(Dogma)를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나무위키 독단적이고 융통성 없는 사고방식을 의미.

이 모든 특징들은 그 사람이 가진 리비도의 거의 전부가 지적인(T 유형 묘사와 비슷한) 삶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고라는 내면세계에 리비도를 집중하는 것은 내향성에 지나지 않는다. 이 부류의 철학자들에게 경험이 어떤 역할을 한다면, 그 역할은 어디까지나 우주의 온갖 카오스를 잘 정의된 어떤 틀 안에 억지로 집어넣는 데에 필요한 추상 작용을 끌어내는 미끼에 지나지 않는다.



융이 설명하는 S 유형 철학자(feat. 윌리엄 제임스)


현실주의적인 사람은 실증주의자이고 경험주의자이다. 이 사람들은 오직 사실인 것들에만 신경을 쓴다. 경험이 그들의 주인이자 절대적 가이드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중요한 것은 오직 외부 세계에 드러나는 경험적인 현상이다. 사고는 단지 외부 경험에 대한 반응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눈에 원리는 절대로 현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사실만큼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오직 현상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고 설명할 뿐, 이론 체계 같은 것을 구축하지 않는다.


이들의 한계는 엄청나게 축적되는 경험 속에서 모순된 이론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증주의자에게 정신적 실체는 그저 감각적인 쾌감과 고통의 경험과 관찰로만 국한된다. 실증주의자는 이 범위를 벗어나지도 않고 철학적으로 사고할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제나 변화하는 현상 세계의 표면에 남으면서 세계의 불안정성을 몸소 겪는다. 또 우주의 혼란 속에 이리저리 휩쓸리면서 우주의 모든 측면과 이론적/실용적 가능성을 두루 보지만 그들의 사고는 확고한 체계 같은 것에 절대로 이르지 못한다. 이상주의자들이었다면 이런 체계 하나만으로도 크게 만족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실증주의자는 고차원적인 것을 저차원적인 것을 빌려서 설명하고, 고차원적인 것도 그 자체로는 전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 “또 다른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고차원적인 것을 ‘폐위’시켜 버린다. 이 같은 일반적 특징으로부터, 제임스가 언급한 다른 것들은 논리적으로 나온다. 실증주의자는 감각을 초월하는 깊은 성찰보다 감각의 구체적인 영역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감각론자이다. 그는 또 물질 주의자이고, 세상사의 이치들이 너무도 불확실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염세주의자이다.


실증주의자는 반종교적이며, 외적 사실들과 크게 다른 내면세계의 실체에 확고히 매달릴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서 있지 않으며, 결정론자이고 또 체념을 일삼는 운명론자이다. 또 통합을 모르는 다원론자이며,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들의 결과로 인해 회의론에 빠지기 쉽다.


제임스가 사용한 표현들은 유형의 다양성이 리비도의 방향에 따라 갈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비도는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있는 힘이며, 본인의 인격에 따라 내면으로 향하기도 하고 객관적인 세상으로 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임스는 이상주의자의 종교적 주관주의와 현대 경험주의자의 유사 종교적인 태도를 서로 비교한다.


사실 들을 존중한다고 해서 우리 내면에서 종교적인 성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들에 대한 존중 자체가 거의 종교적이다.
과학을 중요시하는 우리의 기질은 아주 독실하다
_윌리엄 제임스



빌헬름 오스트발트Wilhelm Ostwald 또한 “석학들”과 천재들을 고전주의자(S)와 낭만주의자(N)로 분류한다. 낭만주의자는 반응이 신속하고, 아이디어와 프로젝트들을 대단히 빨리, 또 대단히 많이 생산해 내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와 프로젝트 중에는 어설프게 소화되고 가치가 의문스런 것들이 있다. 그들은 존경할 만한 뛰어난 거장들이며, 가르치기를 좋아하고, 열정의 소유자이다. 학생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학파의 창설자가 되고, 개인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기서 외향성 유형이 쉽게 확인된다.


이와 반대로, 오스트발트가 설명하는 고전주의자는 반응이 느리고,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과정이 더디고, 가르치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개인적인 영향력을 좀처럼 발휘하지 않으며, 엄격한 비판정신 때문에 열정이 뜨겁지 않다. 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에 깊이 빠져 지내며, 제자들도 거의 두지 않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만을 발표한다. 그래서 사후에 명성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모든 특징은 내향성과 일치한다.


*용어 정리: 빌헬름 오스트발트가 생각한 MBTI의 기초 두 가지 유형

낭만주의자 = N => P 성향이 두드러짐 => 외향성 유형 E

현실주의자, 실증주의자 = S => J 성향이 두드러짐 => 내향성 유형 I



융이 설명하는 F vs T 유형 시인(feat. 빌헬름 보링거)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의 미학 이론에도 이런 예가 발견된다. 예술가를 고무하는 내면의 힘을 나타내기 위해 ‘예술의 절대 의지Volonte d’art absolue라는 표현을 빌리며, 공감과 추상이라는 두 가지 형식을 구분하고 있다. 이 용어도 리비도의 작용, 즉 생명의 고동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보링거는 이렇게 말한다.


공감 충동이 유기적 아름다움에서
만족을 얻듯이,
추상적인 충동도 모든 생명의 부정인
비유기적인 것에서, 구체화된 형식에서,
그리고 추상적인 법칙의 엄격함이 지배하는 곳에서 확인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공감이 대상을 동화시키고 거기에 감정적인 가치를 불어넣기 위해 대상의 존재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열정의 따스함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추상은 대상으로부터 생명을 상기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박탈하고 그 대상을 순수하게 지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이해하려 한다.


*용어 정리: 융이 생각한 MBTI의 기초 두 가지 유형

추상 = T => 내향성 유형 I => N

공감 = F => 외향성 유형 E => S


보링거의 “추상”은 융이 이미 내향성의 결과로 언급한 과정을(융은 내향성이 사고형의 특징을 띈다고 설명한 바 있다), 말하자면 가치가 떨어지는 외부 세계의 현실 대신에 지성을 찬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감”은 실제로 외향성과 일치한다. 그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립스Hans Lipps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내가 어떤 대상에 감정을 이입하며
거기서 지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명이며,
생명은 임이고 내적 활동이고
노력이고 성취이다.
한마디로 말해, 사는 것은 곧 행동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은 곧 우리가 방출하는 힘을
절실히 경험하는 것이다.
경험은 활동을 낳는데, 이 활동은 기본적으로 자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링거는 “미학적 즐거움은 자기 자신을 대상에 투사하는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전이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정의와 완전히 일치하는 설명이다. 이 같은 미학적 개념은 제임스가 말한 실증주의자가 아니라 심리학적 실체만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고려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상주의자의 태도를 가리킨다.


공감의 정반대가 바로 추상이다. 보링거는 추상을 “인간 영혼이 외부 세계 앞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은 결과”로 인식했다. 이 같은 정의에서 우리는 내향성의 근본적인 경향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내향형에게 우주는 아름답거나 바람직한 곳이 아니라 불안하고 심지어 위험한 곳이다. 내향형은 외부 세계 앞에서 방어적 자세를 취하게 된다.


실러Friedrich Schiller가 이를 순박한Naive 유형과 감상적Sentimental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하려고 했다. 감상적인 유형은 자연을 추구하는 한편, 순박한 유형은 본인 자체가 “자연”이다. 이 두 가지 유형은 지배적인 심리적 메커니즘에 따라 나뉘고, 마찬가지로 같은 개인에게서도 두 가지 유형이 발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실러는 이렇게 말한다.


같은 시인의 내면뿐 아니라 같은 작품 안에서도 두 가지 유형의 심리 상태가 발견된다.


순박한 시인은 자연에만 빠져들며 자연의 단순성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노래한다. 순박한 시인의 노력은 현실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감상적 시인은 자신이 대상으로 받은 인상을 표현한다. 여기서 대상은 어떤 관념과 결합되고, 작품의 시적 힘은 이 결합에 따라 달라진다.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아폴론의 정신과 디오니소스의 정신을 대조시킨 것도 또 다른 예이다. 니체가 이용한 예는 꿈과 도취다. 꿈속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갇힌다. 그러나 도취에 빠질 때, 개인은 반대로 자신을 최대한 망각하고 자의식에서 풀려나 객관적 세계의 다양성 속으로 몸을 던지게 된다. 니체는 쇼펜하우어Arthir Schopenhauer의 말을 빌려 아폴론을 묘사한다. 치솟았다가 가라앉기를 거듭하는 거친 바다 위 산더미 같은 파도에 가려져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선원이 한 점 조각에 불과한 돛단배를 강하게 믿으면서 자신의 자리에 침착하게 앉아 있듯이, 개별적 인간은 고난의 세상에서 ‘개성화’의 원칙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이 원칙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안전감은 아폴론의 내면에서 숭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니체는 아폴론의 정신 상태를 내면세계로 파고드는 내향성으로 보았다.


거꾸로 디오니소스 상태에서 정신적 도취는 리비도의 물줄기를 열어젖히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다. 자연과 자연의 방탕한 자식인 인간과 화해를 이루며 다가오고, 사물과 생명체가 평화롭게 다가온다. 디오니소스의 도취는 보편적인 조화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고, 이웃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융이 설명하는 MBTI S와 N의 차이


지금까지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융은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차이를 단순한 학문적 견해 차이로 보지 않았다. 그는 그 안에서 정신이 세계를 인식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태도를 본다. 한쪽은 경험적 사실과 인과관계를 중심에 두는 관점이고, 다른 한쪽은 목적과 의미, 미래 지향성을 중심에 두는 관점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엄격히 경험적 사실에 제한되며, 콤플렉스를 거꾸로 추적하여 가장 근본적인 원인까지 파고들어 간다. 정신적 삶을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하며, 감각적으로 확인 가능한 세계에 높은 지위를 부여한다. 융은 이러한 태도를 감각 중심적(S) 성향과 연결 지어 본다. 세계는 관찰되고 분석되어야 하며, 현재 드러난 사실과 과거의 원인이 중요하다.


반면 아들러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 그는 인간의 행동을 과거의 원인으로 환원하지 않고, “계획”과 “목적”의 산물로 이해한다. 행동은 미래를 향한 의도에서 비롯되며, 삶은 목적론적으로 설명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있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이다. 융은 이러한 태도를 직관(N)과 연결 지어 해석한다. 보이는 사실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 방향성, 가능성을 먼저 읽어내는 방식이다.


융의 관점에서 이 둘은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긴장의 관계다. 감각만으로는 삶이 기계적으로 흐를 수 있고, 직관만으로는 삶이 공중에 떠버릴 수 있다. 성숙은 자신의 우세 기능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기능과의 긴장을 의식적으로 견디는 데서 시작된다. S와 N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분류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보고 있고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자각이 있을 때, 비로소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이 아니라 확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타인의 언어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