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정신과를 다니며 약을 처방받는 것과는 별도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주말에 시간을 내어 상담을 받는다. 50분간 진행되는 상담은 절대적으로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왜 했고, 어떤 상황에 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올해 1월쯤, 총 11번의 상담을 진행한 후에 나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느꼈다. 우울감이 찾아오는 주기가 확연히 줄었고, 필요시 약 20개를 한꺼번에 털어 넣는다거나 자해를 하지도 않았다. 완치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근처에는 다가간 것 같았다. 또다시 몸에 상처를 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 전까지 딱 3달의 시간이 있었다. 방학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여유롭게 늦잠을 자다가 저녁에는 남자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그를 만나러 갔다. 평화롭고, 잔잔한 일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생각할 시간이 점점 많아지게 됐다. 어느 날에는 어떤 걸 해도 재밌지 않았다. 맛있는 걸 먹어도, 쇼핑을 해도, 유튜브를 보는 것도, 낮잠을 자는 것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무력감이 또 찾아왔다. 화장대 위에 있는 가위가 눈에 들어왔다. 눈을 질끈 감았다. 찬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갔다. 이번에는 칼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 가도 날카로운 것만 보이면 자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좀 더 의지가 강했다면, 좀 더 단단한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내 몸에 내가 상처를 내는 행동을, 참을 수 있었을까? 자해를 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밤에만 찾아왔던 우울감이 이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이닥친다. 처음에는 무딘 가위로 시작했는데, 점점 날카로운 칼을 찾게 된다. 항상 내 방 안에서만 했는데, 어느 순간 아무 장소에서든 사람들 눈만 피할 수 있다면 나는 손에 칼을 쥐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칼과 대일밴드를 동시에 사는 나를 보면서 점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에게 그 일은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전에는 분명 하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감정마저 사라졌다.
그저,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안하고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고, 하고 나서는 후회조차 하지 않았다. 상담을 하면서 이 얘기를 내 입 밖으로 꺼내며 깨달았다. 나는 내 삶에 무관심하구나. 내가 내 살아감에 무뎌졌구나.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 손목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상처가 다 아물었는데도 대일밴드를 붙여 가리고 다녔다.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불가능했다. 가족들과 남자친구,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두 내가 자해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는 내 주변 사람들이 자해를 그만두기를 바란다는 것도 안다.
엄마는 커터칼을 보기만 해도 무섭다며, 언젠가 내가 충동적으로 상처를 크게 낼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렵다고 했다. 엄마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나한테 무섭다고 말한 건 처음이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누구보다도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의 말을 듣고도 나는 내 생각만 했다. 그게 무서운 건 엄마고, 나는 아니라고 말해버렸다.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잘못 말한 거라고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 같아서 나는 그만 자리를 벗어났다. 언니는 나에게 반려동물을 키워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연어장을 만들었다며 다음에 만나면 챙겨가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내가 조금만 우울하다고 해도 전화를 해주고, 만나러 와준다. 나아질 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고, 잘못을 저질러도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타일러준다. 우울의 늪에서 어떻게든 나를 꺼내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정말로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내가 떠나면 얼마나 힘든 일을 겪게 될지 가늠도 할 수 없다. 그 생각만으로 우울증이 나아질 때까지 버텼다. 다른 건 놔버렸어도, 결코 내가 짐이 되게 하진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랬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 희망마저 날아갈 듯 위태롭다. 끝까지 이기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 나를 곁에 둔 사람들이 잘못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댄다.
날씨가 좋아서 아침부터 준비를 하고 밖에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아끼는 가방을 멨다. 예쁜 카페에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신다. 소금빵의 고소한 냄새가 은근히 난다.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왜 썼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무런 목적이 없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만큼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내 상태가 이렇게 안 좋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저 쓰고 싶은 문장을 나열하다 보니 이런 글이 되어버렸다. 차마 다 못 적은 부분도 있고, 너무 많이 드러낸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아주 우울한 글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하나 희망이 있다면 이것도 언젠가는 과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때가 되면 너무 가감 없이 쓴 게 부끄러워 아예 글을 지워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내 일부분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