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폭식증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한번 먹을 것을 입에 대면 배가 터지다 못해 아플 때까지 음식을 입에다 집어넣는다. 단순히 많이 먹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위에 욱여넣는다. 그만 먹고 싶어도 멈추지 못한다. 이유도 모른채로 그저 먹기만 한다. pt까지 받으며 다이어트를 하던 시절의 나는 머릿속에 살 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매일 몸무게를 재서 pt 선생님께 사진을 보내야 했고 하루종일 뭘 먹는지도 모두 보고해야 했다. 고구마, 현미밥, 단호박을 돌려가며 탄수화물을 챙겼고, 닭가슴살과 연어, 소고기 중에서 단백질을 골랐다. 샐러드는 필수였다. 매일 그렇게 먹으면 살이 빠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지난해 우울증과 함께 폭식증을 진단받았다. 다행히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으면서 내 폭식증은 조금씩 나아졌다. 일반식도 마음 편히 먹기 시작했다. 적당히 음식을 먹게 되었고,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대신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마음을 환기시키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폭식을 한 건 호주에서 딸기 농장 일을 할 때였다.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면서 때려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딸기 농장에 질린 후로 아직까지 나는 딸기를 먹지 않는다. 아무튼 최근 4개월 정도는 폭식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이다.
호주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8kg가 쪄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된 내 몸무게에 놀랐지만 전처럼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이제 마음 편한 한국에 돌아왔으니 천천히 빠지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4kg 정도는 저절로 빠졌다. 그런데 이렇게 살이 빠지게 되니 예전의 그 마음이 은근하게 올라온다. 한번쯤 말라보고 싶다는 마음. 한번 사는 삶인데 sns나 tv에만 있는 사람들처럼 예쁘게 옷을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밥을 먹을 때면 탄수화물이 너무 많은 건 아닐까 걱정하고, 단백질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식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다고 전처럼 식단을 정확히 계량하거나 운동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강박을 가지게 될지 알기 때문이다. 일부러 인스타그램에서 다이어트 관련 글은 보지 않고 지나친다. 유튜브로는 탈다이어트를 찾아보며 마인드풀이팅과 직관적 식사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바디포지티브 관련 영상을 보며 절대로 다시 다이어트를 하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문득 그러다보면 나는 왜 이렇게까지 다이어트에서 벗어나려고 아등바등 노력해야만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냥 평범하게 음식을 먹고 살이 찌면 찌는대로, 빠지면 빠지는대로 편안하게 살고 싶은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살이 쪄도 당당하게 다니고, 그런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어도 예쁘고 멋있어 보인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인걸까. 내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멋쟁이들의 필수 조건인가 싶기도 하다. 몸무게 앞자리가 4가 아니어도 예쁜 사람들은 많은데. 나한테 살을 빼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아끼는 신발을 신고, 그렇게 다니면 되는 건데. 나는 언제쯤이면 이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을까? 마른 몸을 갖고 싶지 않다고 지금 당장은 말하지 못하겠다. 그건 솔직하지 않은 마음이다. 나는 여전히 마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