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이 변경으로 모든 사람들이 한살씩은 어려졌고, 나 역시 그 덕으로 두번째 스물다섯을 보내게 되었다. 누군가는 그래봤자 숫자만 바뀌었을 뿐, 살아온 날들은 똑같다고 하겠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다. 뭐랄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 느낌이다. 내 첫번째 스물다섯은 결코 완만하게 굴러가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렇듯, 몇번의 굴곡이 있었고 그 굴곡은 지나고 나서야 어디가 밑바닥이고 어디가 꼭대기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첫번째 스물다섯은 제법 극단적이었던 것 같다. 짧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불행한 해였다. 가장 많이 사랑을 받은 동시에 그 사랑을 모두 밑 빠진 독에 부어버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우울증을 진단받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럼에도 폭식과 자해를 하기도 했으며 공황이 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부모님께 말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말할때마다 매번 나는 긴장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여전히 모르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많다. 그저 불면증이라고 둘러대며 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고, 다들 걱정해주었다. 언젠가는 주변사람들에게도 우울증이라고 밝힐 수 있는 날이 올까 싶기도 하다. 지금은 우울증이라는 사실이 내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혹은 좀 더 주변 사람들을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른다. 우울증인 걸 말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짧은 워홀 생활을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적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왠지 너무 포근해서 낯선 우리집과 내 방에 적응해야했고, 다시 친구들의 실물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그러므로 약속을 잡아서 만나야 한다는 일종의 미션(?)도 수행해야 했다. 그리고 정신과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정신과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리셉션의 직원들도 모두 그대로였다. 선생님도 변하지 않고 5개월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내 증상을 듣고 걱정해주셨고 운동을 시작하거나 부지런히 일어나 하루를 보내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으셨다.
필요시 약 4개와 수면제 3개를 먹고 하루종일 잠들었다는 얘기를 드렸더니 그런 약들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목숨에 지장이 가지 않게 조제되었다는 말을 해주셨다.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뭐가 아쉬웠던 걸까. 많이 먹어봤자 장기만 상하고 고생만 한다는 말을 해주시며 안좋은 생각으로 약을 많이 먹는 행위는 자제하라고 하셨다. 선생님도 알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해봤자 공황이 오면 또 약을 한꺼번에 많이 먹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 충동이 들 때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일 뿐이다.
두번째 스물다섯은 어떤 해가 될지 그리 기대되지는 않는다. 그저 조금 나아지기만 한다면 다행일 것 같다. 무사히 올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아서 한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