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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nui May 22. 2024

아르센 벵거와 아스날과 나

내 몸엔 붉은 피가 흐른다, 팔다리엔 하얀

240521 화요일


아르센 벵거와 아스날과 나

―내 몸엔 붉은 피가 흐른다, 팔다리엔 하얀


이번 시즌의 아스날, 정말 강하고 멋졌던.




오랫동안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라고 프루스트는 기나긴 소설의 첫 운을 뗐고, 나는 그의 문장과 반대로 오랫동안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았거나 잠자리에 들고 나서도 한참 잠에 들 수 없었는데, 요즘엔 드디어 일찍 잠자리에 들곤 한다. 다시 취업을 한 까닭이다.


잠자리에 누워서는 금세 깊은 잠에 빠진다. 꿈도 꾸지 않는, 또는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꿈만 꾸고 마는 편안한 잠에. 마음이 편해서기도 하고 몸이 적당히 피로해서이기도 하다.


어젯밤엔 아홉 시가 조금 넘자마자 잠에 들었다. 출근 때문은 아니었다. 자정에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췄고 눈을 떴을 땐 다섯 시가 지나 있었다.


핸드폰을 켰다. 눈이 부셔서 밝기를 최소로 줄이고 구글 크롬을 켰다. 내 크롬의 기본 페이지는 “아스날 경기일정”의 검색결과로 설정돼 있다.


아스날은 이겼다. 그리고 맨시티도 이겼다. 맨시티는 4연속 리그 우승을 했다. 아스날은 또다시 2등을 했다.



지난 시즌의 아스날. 쟈카는 레버쿠젠에 가서 무패우승에 기여했다.



아스날이 우승하거든 글을 하나 쓰려고 했다.


기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고, 그렇다고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닌데, 그건 기대라는 건 원래부터 배반당하기 위한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솔직히 이미 올 시즌 우승을 반쯤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알람도 못 듣고 계속 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뭘 위한 글이며 또 무엇에 관한 글인가.


어쩌면 프루스트에 관한 글이고, 달디단 밤양갱이 아니라 그 밤양갱을 바라는 마음을 위한 글이며, 밤양갱이 아닌 담배를 물어야 했던 씁쓰름한 밤이나 다음 날 아침의 밝은 햇살에 관한 글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이 글은 기대의 어긋남, 즉 실패에 관한 글이 될 거다.


그러니까, 아스날에 관한.


말하자면 나에 관한 글이라는 거다. 모든 글이 늘 그렇듯이.



https://www.youtube.com/watch?v=m9l1sRobl-E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처음 좌절을 배운 건.


아스날을 좋아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새로운 시즌이 막 막을 올렸고, 시즌 전망이 밝진 않았지만 그래도 경기 전날 밤이면 작은 설렘을 품고 잠들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 아침도 여느 아침과 같았다. 아마 주말이었을 거다. 학교에 가지 않은 걸 보면. 나른함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로 아침상에 앉았다. 아버지가 무심하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야, 아스날이 8대2로 졌더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농담하지 말라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야구도 아니고 무슨 8대2냐고.


TV 하단에서 단신 뉴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스포츠] 맨유 8 : 2 아스날, 루니 해트트릭, 박지성 1골…


뭐, 이따위 자막이었을 거다.


숟가락을 떨어뜨…리진 않았다. 밥을 삼키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날의 실망을 지금껏 곱씹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스날이 20년째 리그 우승을 못 할 줄도 몰랐고, 아스날을 이토록 오랫동안 좋아하게 될 줄도 몰랐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걸.


그날 아침은 아직 소화되는 중이다.








아스날은 우승하지 못했고 나는 아무것도 쓸 생각이 없었다. 방금 전까진.


내일 발제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해 인터넷을 서칭하다가 우연히 기사 하나를 만났다. 기자는 이렇게 쓴다: 스포츠를 왜 보느냐면… “패배를 배우기 위해서 봅니다.”


https://h21.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55385.html


기사는 아스날Arsenal에 관한, 그러니까 아르센Arsene 벵거에 관한 내용이다(별것도 아닌 이 철자의 겹침조차 내겐 왜 이렇게 낭만적인지...).


아르센 벵거의 영광의 순간과 절망의 나날들


벵거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2년간 아스날의 감독직을 역임했다. 96년은 내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내가 아직 아픔과 슬픔을 모르는 희망찬 소년이었던 동안엔, 벵거 또한 실패나 좌절 따위는 서랍 한칸에 치워 둘 수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했고, 그러면서 결과도 놓치지 않았다. 축구종가를 정복한 키 크고 콧대 높은 프랑스인. 그는 입지전적인 성공을 거둔다. 2004년엔 EPL에서 전무후무한 무패우승을 거머쥐기까지 한다. 영광의 시절.


이다음은 예상하기 쉽다. 정상 다음 내리막길. 벵거와 아스날의 나중 절반은 쓰디쓴 실패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나는 그의 실패 때문에 그를 더욱더 좋아한다.


그래서 원망하고.


그가 아니었더라면 나도 맨시티나 레알마드리드를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바이에른 뮌헨이나. 왜 있잖나. 맨날 습관적으로 우승하는 팀들...


물론 뮌헨은 올해 우승하지 못했다. 레버쿠젠은 120년 만에 창단 첫 우승을 했다. 그것도 분데스리가 사상 첫 무패우승으로.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스티브 카렐과 폴 다노는 진짜 찐따 같다. 그래서 좋다.



프루스트는 일찍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아니, 잠자리엔 들었지만 잠들지 못했다. 그는 밤새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타입이었고, 침대에 누운 채 떠오르는 대로 마구 끄적인 뒤에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는 외톨이고 실패자였다. 직업다운 직업을 가져본 적도 없고, 한평생 짝사랑을 했다. 동성애자였다. 아무도 읽지 않을지 모를 소설을 거의 아무도 모르게 20년이나 썼다.


그건 그가 그의 삶을 책임지는 방식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어서 프루스트가 됐다.


어느 영화는 그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한다: “힘겨웠던 시절들이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고. 그날들이 자기를 만든 시간들이었으니까.“






아스날은 또 한번 실패했다. 예전보단 한참 나아졌지만 실패는 실패다. (사실 정말로 중요한 건 그거긴 하다. 어제보다 나아지는 거.) 어쩌다 나는 늘상 실패하는 팀을 좋아하게 된 걸까. 내가 기질적으로 실패와 아픔과 비주류에 이끌리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아스날이 이길 때 누구보다 기쁘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걸 보면. 지는 날에는 열이 뻗쳐서 잠도 이루지 못하는 걸 보면. 나 또한 승리를 바란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단지 정직하고 싶은 것이다. 항상 그러진 못하더라도.


벵거는 오롯이 스스로 실패를 떠안았다. 도망치거나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좋은 제의도 여럿 들어왔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


왜?


아스날을 사랑하니까.


그는 선택했다, 실패까지도.





이만하면 장하다, 라고 말하고 흐뭇하게 잠들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아스날은 더 잘할 수 있고, 분명히 그럴 테니까.


언젠간 아스날도 우승할 테지만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다. 이제 아주 가까운 데까지 왔고, 당장 다음 시즌에 우승할지도 모른다. 또다시 한끗 차이로 우승을 놓칠지도 모르고.


그러면 지금 스쿼드의 주요 선수들은 하나둘씩 이탈하겠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법이다. 타이밍을 한번 놓치면 모든 걸 놓치게 되는 건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다시 암흑기를 겪게 될지도... 빠져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다음번 터널은 얼마나 길까?


왓에버. 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상관없다. 원래 이기는 팀이라서 좋아한 건 아니다. 그냥 좋아진 거지. 어쩌다 보니.


인생의 절반 동안 아스날을 응원하면서 배운 건 이게 전부다.


오늘은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겠다.



한두 라운드가 더 진행됐고,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진실은 하나다: 어쨌거나, 축구는 계속 본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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