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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Mar 20. 2020

멈춰진 프랑스의 시간

프랑스는 코로나와 전쟁을 선포했다.

거리가 조용하다.

격리 3일째가 지나고 4일째인 파리의 아침,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시골에 살고 있는 것 마냥 크게 급할 일 없는 하루에 일찍 눈이 감기고 일찍 눈이 떠진다.

커피를 한잔 뽑아 아무도 다니지 않는 새벽 거리의 공기를 마시고자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본다.

조용하다. 그리고 해가 떠 오르기 전의 아침 공기는 차갑지만 상쾌하다. 


아무 일 없듯 아침은 찾아오고 또 밤은 드리워진다. 우리는 비록 전쟁 중에 있을지라도.


대통령 담화 (출처:구글)


3월 12일 목요일 저녁, 마크롱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대학을 포함한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이미 자택 근무가 가능한 사람들은 3월 초부터 시작을 했지만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자 시작된 정부의 첫 방침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정부는 큰 결단을 내렸다. 

생활에 필수적인 곳들을(식료품점, 병원, 약국, 은행) 제외한 모든 상점의 영업을 무기한 중지한다는 선언과 함께 그에 따른 보상은 정부가 책임진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때마침 사장님과 샵 주변 친한 프랑스인 자영업자들끼리 한달 한번 식사를 하는 자리었고 우리들의 화제는 당연히 그쪽으로 흘러갔다. 아시아인인 나와 사장님 그리고 수습생은 일본과 한국의 케이스를 먼저 멀리서 경험한지라 발표전부터 사실 걱정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그만큼 의료시설이 빠르고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는 게 아니라 혹시 감염이 된다고 하여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으며 마스크 공급도 사실상 일반 시민에게는 막혀있는 상황에 안전불감증처럼 태평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어도 되는가 하면서 말이다.


1월 말 독감에 걸려 일본인 수습생에게 전달받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코로나가 창궐하여 어수선할 시기라 괜스레 더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기도 했으며 내가 아니면 누가 날 보호해주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샵에서 마스크를 쓰고 일하기엔 프랑스 고객들에게 위화감이 있을 것 같아 사용하지 못했지만 출퇴근 시에는 꼭 쓰고 다녔더니, 몇몇 프랑스인들의 눈총이 따가웠다.

내 주변으로는 착석을 피하는 듯하였고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굳이 시선을 창밖으로 돌려 나를 유심히 보는 듯했다. 그 당시 유럽 곳곳에서 아시아인들을 '바이러스' 자체로 보는 차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어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다.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독감이 나으면서 마스크 사용을 종료했고 그로부터 한 달 뒤, 이태리를 시작으로 유럽에도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텅 빈 거리의 마레 (출처:구글)



바이러스에는 여권이 없다 (Ce virus n'a pas de passeport')라고 마크롱이 연설한 것처럼 우리는 어쩌면 안일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안전불감증이라고 파리의 지인들과 걱정했던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테러와 전쟁, 혁명 등 어쩌면 많은 역경을 견뎌온 낙천적 근성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변인들을 인식해야 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역시나 함께 밥을 먹던 프랑스인 사장 중 한 명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레스토랑에 와인, 치즈, 디저트 다 가져와서 오늘 먹고 마시자!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죽기야 하겠어?' 라며 다들 인상 좀 피라며 잔을 올린다.

그리고는 지인들에게서 뒤로 받아 온 손 세정제를 나눠준다.


그래,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잘 먹어 면역력을 기르고 칩거하면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수밖에.






그리고 오늘 자정부터 모든 레스토랑과 Bar를 닫는다는 발표가 난 토요일 저녁, 거리에는 마지막 한잔을 놓치지 않겠다는 프랑스인들이 대거 나와 '마지막 밤' 이라며 유흥을 즐겼고 날이 화장했던 일요일은 카페와 런치를 즐기지 못한다면 산책이라도 하겠다는 듯 공원으로 센강 주변으로 삼삼오오 피크닉과 광합성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정신을 못 차린 게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그 단면들을 다뤘고 급기야 마크롱은 '정신 차리세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와 전쟁 중에 있습니다' 라며 레드카드를 내놓았다.


16일 낮 12시 이후 특별한 외출 외에 모든 외출을 삼간다. Stay at Home이라는  '프랑스 외출 금지령'을 말이다. 그 발표가 나기 무섭게 사재기는 더 심해졌고 그제야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지한 듯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누구 탓으로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난 몇몇 프랑스 인들의 인종차별적 발언들은 수면 위로 떠 올랐고 물건을 사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끼리 시비도 있었으며 마스크를 쓰면 벌레 보듯 했던 이들은 마스크 혹은 스카프로 꽁꽁 얼굴을 싸매고 다녔다.


패닉이 되지 않도록 마크롱은 아래 사항의 외출은 허가한다는 외출 증명서를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배포했다.

1. 자택 근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출퇴근

2.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위한 외출

3. 건강상의 이유로 인한 병원 방문

4. 가족과 아이들과 관련된 이동 (맡기고 데리고 오는, 독거노인을 위한 방문 등)

5. 애완견을 위한 산책, 혼자 하는 조깅

에 해당하는 사항을 체크하여 본인 이름과 주소 사인을 하여 외출 시 외출증을 꼭 지참하여야 하며 이를 어길 시 135유로에 해당하는 벌금이 청구된다.


경찰들이 불시 검문을 시작했다. 광합성을 하기 위해 벤치에 앉아있는 두 명 이상의 무리에게는 귀가 조치를 하며 뛰는 사람들에게는 검문을 생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핑계로 모래사장에 나와 휴식을 취하거나, 자전거나 스케이드 보드를 타며 여가 생활을 즐기는 듯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경치 좋은 곳으로 나와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외출 금지의 의미가 퇴색될 것을 우려해 집에서 반경 2킬로 거리의 산책을 허가하며 밖에서 머무는 시간을 제한하는 등 조건을 추가했다.


그리고 니스 해변은 오늘부터 폐쇄되었다.


출입금지령을 내린 니스의 바닷가


그렇게 15일간의 격리가 시작되었고 항간에는 한 달, 두 달 이상 간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이미 확진자는 만 명을 넘어섰고 치료를 할 병실이 모자란 관계로 상태에 따라 자가치료를 권고하기도 한다고 한다. 파리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는 곳은 드물며, 아마존에서 1월에 신청한 중국발 마스크는 국경을 넘지 못하고 강제 환불 처리가 되었으며 그 뒤에 주문한 마스크들도 현재 배달이 한참 늦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확진자 발생이 많은 지역 위주로 마스크를 시민들에게 공급하고 있으니 지금 우리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외부와의 접촉을 조심하며 이 기나긴 터널을 무사히 지나는 일뿐이다.


이 시국에도 파리의 봄은 찾아왔다.

이 좋은 날의 봄을 그냥 떠나보내야 하는 사실이 아쉽지만 오히려 날이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봄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평화로웠던 파리의 일상


어둡지 않아, 춥지 않아 다행이다. 

곧 다시 재개할 프랑스의 모습을 이 햇살 속에서 찾아본다.


소소한 그리고 무던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불과 몇 달 전 아시아를 보며 강 건너 불구경하던 그대들이 누구를 탓하며 원망하는 일이 무슨 소용이랴. 


하루빨리 아름다운 그 파리의 모습으로, 행복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서로 힘을 모아 이 시기를 이겨내야 하는 수밖에.


긴 터널에도 끝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침은 찾아오고 봄은 또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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