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까지 공급할수 있는가
책을 읽다가 문득, 가끔 궁금해하던 것이 다시 떠올랐다. ‘즐긴다’라는 표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늘 어딘가 종종 의아하고 약간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즐긴다’라는 말을 분해해보면, 한자어가 아니며 본래 우리말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즐겁다’는 ‘마음에 흐뭇하고 기쁘다’는 뜻이다. 이를 바탕으로 ‘즐기다’는 스스로 어떤 행위나 상황 속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 감정을 스스로 지속하길 바라며 기꺼워하는 태도를 뜻한다. 즉, 타인이 주입하거나 규정할 수 없는 내면의 감정 작용이다.
그런데 건축가나 호스트처럼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종종 자신이 만든 공간을 소개할 때 “이 공간에서는 와인 한잔 하시면서 친구들과 분위기를 즐기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 표현을 들을 때면, 나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다. ‘프로 불편러’는 아니지만, 그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공급자가 미리 정해주는 듯한 뉘앙스 때문이다.
내게는 “이 공간에서는 와인 한잔 하시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러울 뿐더라 전문가 다운 태도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만든 감독도 특정 장면에서 관객이 웃거나 울거나 놀라길 바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감독이 “이 장면에서는 웃으시면 되고, 저 장면에서는 슬퍼하시면 됩니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감정은 기대할 수는 있지만,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즐기시면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이 진심 어린 배려의 말이라 하더라도, 어색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