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력 없는 내용으로 채운 익숙한 심리도서겠거니 했다. 목차를 찬찬히 훑어보면서, 소개글에서 맛 본 기대만큼 실망과 마주할지 몰라 불안해했다. 미래에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자기를 신뢰하는 무한 긍정, 결국 성공한 사람의 자화자찬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다.
대기업을 다니다 책을 쓰기 시작한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빈정이 섞인 투덜거림은 얼마 가지 않았다. 마음을 채운 불만은 오히려 곧 종식되고 기분 좋은 불안으로 넘어갔다. 이런 양가적 감정은 그의 잔잔한 서술방식 때문이었다. 일본의 특유한 감성이라는 나름의 설명도 나의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잔잔한 문체는 설득력이 있어서 책의 위로를 받아들여야할지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행복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좀 더 나은 어떠한 처세술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더 나은 나, 혹은 나 다운 나를 찾으라고 섣불리 제안하지도 않는다. 우선 좀 내려놓으라 말한다. 행복을 위해 잡았던 것들을 좀 내려놓으라고, 나를 행복하게 해줄거라 생각했던 모든 문화적 관습을 놓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의 책이다.
그러기에 한편으로는 불안한 책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읽는 독자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릴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생각을 받아들이고 싶은 까닭은 왜일까. 게다가 다른 나라의 작가가 보내오는 공감의 손길을 잡고 싶은 이유는 또 무엇일까. 독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인줄 알지만 잘 들어보라는 저자의 뻔뻔함에 도리어 위안을 얻는다.
그는 거대담론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와 개인의 노력 사이에 그려진 끝없는 긴장감의 평행선을 의도적으로 희미하게한다. 대신 그는 모두가 공감하는 생각의 기저면을 건드려 파문을 일으키는데 집중한다.
본말전도. 너무 간단하지만 떠올리기 쉽지 않은 생각. 인간은 그저 성장하려, 남이 주는 인정만을 받으려 살지 않는다는 '인간다움'에 대한 삶의 성찰을 전한다. 성장과 인정, 더 많은 성과와 과도한 경쟁,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업무가 곧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의 변화를 촉구한다.
때론 어떠한 지식보다 이러한 잔잔한 내용이 도리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금 과도한 해석이지만 생각의 전환을 받아들인 이들의 사회를 상상하게 돕는 책으로 보이기도 했다. 개인들의 생각과 공동체의 변화를 불가분의 관계라 본다면 그만큼 선한 잠재력을 지녔다는 점에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덜 살아보자. 필자는 저자가 이 주제를 전하려 했다고 본다. 그는 성급하게, 주제를 드러내거나 독자를 설득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비슷하지만 다양한 경험이 나열되는 단문 덕분에 신뢰가 가는 상대와 찬찬히 얘기하는 느낌을 받았던 까닭이다. 행복하지 않았기에 심리치료를 공부하다 상담가로 일하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글의 전반부에서부터 그를 진솔한 온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라 느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반복되는 소주제로 이어지는 글의 흐름이다. 반복되는 이야기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것이 짧은 글이라는 저자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빠르게 읽으려 선택한 독자는 원점으로 회귀하는듯한 내용에 무료함을 느끼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상담가라는 저자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매일 짧은 호흡으로,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를 하듯 읽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책 속의 문장을 인용하며 저자의 생각을 가늠하도록 도우려한다.
p.71-72
사실은 성장의 근거를 모으기 위해 노력할수록 내면은 오히려 더 쓸쓸해집니다. 외부에서 모은 근거로 방어벽을 쌓아 만든 자신감은 말하자면 허황된 자신감입니다.(중략) 실은 근거 있는 자신감이야말로 진짜 위험한데 말입니다.
(중략)
지금은 아주 완벽해 보이는 근거도 언제 무의미해질지 모릅니다. 이렇게 위태로운 근거에 뿌리를 두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자신감도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