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팩트가 중요한 시대이니 엄밀한 과학 연구로 얻은 자료는 양질의 근거로 주장에 신뢰를 더한다. 수치심이 사회를 통제하는 데서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 설명하려는 제니퍼 자케는 생물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우선 사용한다. 동물의 세계와 인류의 집단에서 발견된 규범과 수치의 관계를 조망하며 수치심의 효과를 증명하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특별히 생태학은 저자의 핵심 주장으로 접근하는 관문 중 하나로 제시되어 지구를 오염시키는 원인이 누구에게 어떻게 할당되어 있는지, 그 비율을 주로 소개하는 방편이다.
제시된 자료는 곧, 소수의 개인이 스스로 되새김하는 죄책감보다 단체의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지적하는 '수치 주기'가 썩은 사과 - 공동체 구성원 간 협동을 방해하고 모두애게 피해를 일으키는 문제 혹은 존재 - 를 골라내는 해결책으로 택해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개념을 분리하여 설명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환경을 보호하려는 개인들이 오염 문제에 매우 적은 책임을 지닌 반면에, 기업이 대부분의 책임을 지녔음을 거듭 밝힌다.
필자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단순히 숫자 계산의 효율로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당위를 더한 시선이기에 의미가 깊다고 본다.
확장되는 근거의 범위
산적해 있는 실제 예를 들어 주장의 신뢰도를 높인 제니퍼는 사회과학을 끌어들이며 설득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시민과 소비자라는 사회화된 신분을 잘 이용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시장주의 하에서 '무엇이 제거되었거나 면제된' 상품을 사게 되는 소비자는 단순히 '옳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구매한다고 고발한다. 면죄부 효과 때문에 옳은 결과를 도출하려는 실제 행위는 사라지고 벌어진 문제에 책임을 질 이는 불분명해진다. 연이은 미해결 된 문제, 즉 썩은 사과가 결국 은폐되고 마는 현상이 누적될 위험을 경고한다.
저자는 공동체가 공동으로 부담할 해악을 만들어내는 소비자의 욕구로는 이 해악을 제거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소비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시장 중심 생각을 비판하며 소비자의 정부와 기업은 죄책감을 덜어 줄 '라벨'을 제공하는 선에서 그들의 의무를 그쳐왔다고 말한다.
사회적 존재인 우리들은 공동체 전체에 문제를 일으킬 행위를 막기 위해 규범을 개발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수치를 받지 않아도 수치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다시 말하자면 소속된 공동체에서 사회적 평판을 잃고 매장당할 위험을 부여할 합의된 규범을 지혜롭게 이용하기를 추천한다.
기업이 흔히 사용하는 마케팅 도구, 즉 도덕적 면허를 제공하는 방식 이상으로는 해결점을 찾을 수 없기에 죄책감을 덜어 썩은 사과를 걸러내려는 시도는 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틀렸음을 상기시킨다. 오직 구매를 통해서 변화를 꾀하는 소극적인 참여자보다 독려하고 지적하는 시민으로서 사회 문제에 간섭하자고 독려하는 셈이다.
한계 혹은 새로운 관점
저자는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죄책감을 이용해 썩은 사과를 골라내려는 시도가 적절하지 않았음을 보인다. 동시에 사례는 많으나 실제로 이용되었지만 선명히 밝혀지지 못한 수치심 적용 사례를 책의 후반부에 지속적으로 다룬다.
길게 나열되는 이 부분은 독자에게 크게 와 닿지 않을 수 있는데, 필자는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익숙하지 않은 지리적으로 먼 내용이기에 동의는 할 수 있어도 감동이 없다. 둘째는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여서 적용점을 설정하기 어렵다. 둘 다 어색한 대상에 대한 반응이지만, 여기선 두 번째 어색함에 대해서만 논해보고자 한다.
한국사회에서 '수치'라는 말은 이른바 '쪽팔리다'는 상태, 그리고 눈치라는 심리 표현과 같은 다소 부정적인 개념과 뗄 수 없다. 그러기에 이 책을 쉽게 읽기가 조심스러워진다. 제니퍼 자케가 명시했듯이 수치보다 죄책을 더 강조해 오던 서구권에서 쓰인 책이기에 그러하다. 이른바 동양에 위치한 사회에 속한 독자는 수치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책과는 다른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
저자가 속한 문화권에서 수치를 연구하려면 잊힌 유적을 발굴하는 듯한 접근이 더 합리적이고 쉽다. 수치심이 힘을 실제로 발휘하여 단체 안 개인들에게 동인을 제공한다 한들 인식하지 못한 원인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기에 저자는 우선, 잊힌 과거의 지혜에서 공동체 내에 반복되는 특정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구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저작 의도가 어떠하였든 한국인이 시도해 볼 독서방식은 낡은 수치 문화를 다른 각도에서 비춰보는 일명 '재활용 탐구'다. 서구 문화가 이해하는 수치의 의미와 가치가 '현재의 우리'에게도 그러한지 되묻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친 후 책의 내용이 설득력 있다 여기는 독자는 이 독서를 의미있는 일로 여길 것이다. 폐기되거나 청산되야 할 것이라 눈총을 받아오던 오래된 유산에서 유의미한 가치를 찾는다면 일그러진 한국사회를 풀어낼 가치도 발견할 거란 기대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와 실에 가리어진 수치 문화의 본질을 찾는 탐구가 곧 더 나은 사회 체계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도구로 탈바꿈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