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살아가다 #1

책: <쟁점한국사-근대편>, 창비

by 쓴쓴
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가 독자들에게 단회로 제공하는 '공부한당'을 통해 도서, <쟁점 한국사>를 읽고 4회에 걸쳐 서평을 나누어 올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목차를 첨부한다(이어질 4편의 서평 중 각 글에 해당하는 차례에 굵은 표시를 해둔다).

<쟁점 한국사-근대편>은 전근대편, 현대편과 더불어 총 3편으로 이루어진 기획도서다.


1) 동학농민전쟁을 다시 생각한다

2) 대한민국 외교의 가능성과 한계

3) 3.1 운동, 서로 다른 세 개의 기억

4)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식민지의 젊은이들, 오늘의 젊은이들

6) 기억 저편의 사회주의 혁명가들

7)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대가

8) 잘못 낀 첫 단추, 일본군 '위안부'


첫 번째 차례인 만큼, 이해를 돕는 설명을 더해야 해서 도입부가 조금 길어질 것 같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언제부턴가 이 어구가 우리 사이에 자주 나타나 역사에 무관심하던 마음들에 경종을 울렸다. 본서를 소개하는 '기획의 말'에 따르면 신채호와 윈스턴 처칠이 남긴 말이라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신채호가 저서에 남겼다던 어구는 발견되지 않았고, 처칠이 언급했다던 시기와 일치되지 않은 지점의 자료가 발견되었다는 식이다.


재미있는 점은, 다양한 이유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어구의 부름에 응답했다는 부분이다. 미약하나마, 또 부족하지만 시장의 수요를 따라 역사강좌들이 자주 열리고 또 지속된다. 뜻밖에도, 오염되었다고 치부할지 모르는 이 어구의 이끌림을 따라오던 누군가는 마침내 마주한 '진실'된 역사 속 이야기에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어지러운 시대 한복판에서 살아갈 위로다.


E.H. 카는 자신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가 옛날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분명한 의미와 메시지를 전하며,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혜와 통찰"을 주는 선생이 되기도 한다는 말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기억된 과거로서, 과거의 사실과 행적들을 알리는 데서 그 역할을 끝내지 않고 현재의 관점으로 인식하게 한다.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배우는 목적에 따라 다른 부분이 드러나는 여지를 역사가 허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하나의 교과서'로 역사를 배울 수 없다고 분명히 못 박는다. 나열된 암기 항목이 아니라 현재의 인식과 용인된 해석으로 이루어진, 곧 역사의 정체성이다.


갈 길이 멀기에 서둘러 첫 번째 주제로 넘어가 보려 한다.




동학농민전쟁. 처음으로 다룰 이 사건은 현대에 사는 우리가 '근대전환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고민하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를 치부로 여기며 과거와 결별하려 노력하던 서구 근대인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은 목적론이었다. 이것은 당시 유행하는 사회진화론과 연결되어, 역사에도 목적이 있고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는 세계관에 힘을 실어주었다. 즉 '근대화'란 진보이고 전근대는 미개하다는 개념이고 '근대'는 그러한 변화가 강요되던 시대인 셈이다.


이 흐름을 따르다보면 기존에 동학농민전쟁의 본질이 흐려졌음에 동의하게 된다. '반외세, 반봉건, 평등사상과 근대화의 토대'는 우리가 주로 배웠던 농민전쟁에 관한 의의다. 책은 먼저 이 부분에 드러난 근대 중심주의에 내포된 단절성이라는 한계를 지적한다. 이 말은 다음과 같다. '과연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근대와 근대를 나눌 수 있을까. 자본주의적 질서와 함께 탄생한 서구의 근대라는 개념이 완전히 다른 문화권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과 잘 이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의문에 더해 당혹감을 선사한다.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민중사는 농민전쟁을 이해하려는 독자가 소개받을 또 다른 시선이다. 역사를 채우고 만든 압도적 다수는 민중이므로 이들이 그려낸 삶을 제외한다면 역사에 대한 이해가 편향된다는 주장이다. 분명 연구는 쉽지 않다. 민중은 반대편에 있던 관리들이 남긴 기록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있는 기록들은 거의 지배자들을 향한 민중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라면 역사 기록물을 이해할 때, 좀 더 세세한 읽기, 반대로 읽기를 기본으로 여겨야 한다. 이는 상상력이 동원되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특이하게도 동학농민군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바로, 무장포고문. 농민군이 농민전쟁을 일으킨 이유와 목적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발표한 글이다. 놀랍게도 이 사료에 따르면, 단 한 번도 이들에게서 반외세나 반봉건에 관한 외침을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그들의 의거가 유교적 이념에서 정당성을 얻었으며, 그 목적이 유교적 이상 사회를 회복하는 데 있다고 천명한다.


이들은 당대의 지배 이념이자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모두 동의할 만한 정치문화, 곧 유교이념을 들어 사대부의 사회 정치적 위치를 부정하고 있다. 이른바 양반들이 의지하던 명분론을 이용하여 지배층이 지닌 정당성을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들의 이념에 따라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다시 말해 자신들이 나라의 뿌리라는 주체성까지 드러낸다.


정리하자면, 농민군은,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오던 체제(왕정)를 부정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통치자들이 내세운 지배 이념이 지켜지지 않은 현실에 분개해 일어났다. 기획자의 소개글처럼 일상사로 들어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도는 이처럼 중요하다. 선입견으로 해석된 세계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이 스스로와 세상의 흐름을, 또한 자신의 결정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했는지 살펴보아야만 보이는 것이, 역사다.


체제를 따르는 보수적 사상이 기존 질서를 유지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 이와 같은, 세밀한 접근으로 밝혀진 단 하나의 역사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수 십 번의 촛불집회와 헌법을 지키지 않아 탄핵된 대통령. 그러한 헌법을 새롭게 하자는, 같아 보이지만 다른 여러 갈래의 목소리. 동학농민들의 외침이 이 시국의 외침과 많이 겹쳐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다.




대한제국의 외교는 중립화 정책이었다. 이 정책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풀자면, 겉치레 외교, 명확한 국제질서관 부족 혹은 무지, 지나친 대외 의존으로 독립성 상실, 일관성 결여 정도이다. 한국인이라면 이러한 한계점에 분개하거나 안타까움을 표할 수 밖에 없지만, 저자는 이러한 평가 중, '무지'와 '일관성 결여'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한제국이 주변국에 의존했던 이유는 청나라와 오래도록 유지해 온 조공 질서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개항과 같은 난감한 문제를, 이전처럼 황제국인 청나라에 떠넘겼다 다시 넘겨받으면서 충분히 회피할 수 있다 여겼다. 약소국이라는 자의식도 한 몫 했다. 끊임없이 의존국을 바꿨던 정책은 생존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자 열강들의 힘겨루기를 이용해 중립국으로 남으려는 외교수단이었다.


저자는 대한제국의 외교력 보다는 한반도를 둘러 싼 힘의 불균형에 방점을 둔다. 중립화 정책을 견지할 힘은 이미 부족했다. 대한제국을 둘러싼 세력다툼은 잦아지기만 했고 시간은 정책의 명분 마저 빼앗아 갔다. 청일전쟁, 시모노세키 조약, 러일전쟁을 거치며 균형에 금이 고종의 노력은 무력해질 수 밖에 없었다.


세력균형을 유지하던 시기가 지나가자 주변국들에게 이권을 보여 관심을 유도하던 정책도 빛을 잃어갔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열강들은 점점 조선을 중립국으로 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고종의 미약한 제도적 장치로는 밀약을 맺으며 조선의 자주를 방해하는 일본을, 더 이상 한반도에 관심을 두지 않는 러시아를, 자신을 지킬 힘조차 잃어가고 있는 청을 곧바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청, 일본, 미국, 러시아에게 골고루 관심을 기울여 중립을 지키고 자주국의 위상, 독립을 인정받으려던 고종의 노력은 점점 빗나가기만 했다.


근대 한반도와 지금의 외교적 자산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근래의 외교에 불안을 느낀다. 이는 여전히 자원을 잘 사용하지 못하거나 사용해보지도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인 특성을 가진 이상 고종의 중립화론에 대한 의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볼 수 있다. 다만, 오직 세력균형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기에 타의에 묶인 결정 밖에는 하지 못했던 대한제국과는 달리, 한반도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결정을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