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창비(창작과비평)가 독자들에게 단회로 제공하는 '공부한당'을 통해 도서, <쟁점 한국사>를 읽고 4회에 걸쳐 서평을 나누어 올린다.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목차를 첨부한다(이어질 4편의 서평 중 각 글에 해당하는 차례에 굵은 표시를 해둔다).
<쟁점 한국사-근대편>은 전근대편, 현대편과 더불어 총 3편으로 이루어진 기획도서다.
1) 동학농민전쟁을 다시 생각한다
2) 대한민국 외교의 가능성과 한계
3) 3.1 운동, 서로 다른 세 개의 기억
4)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5) 식민지의 젊은이들, 오늘의 젊은이들
6) 기억 저편의 사회주의 혁명가들
7)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대가
8) 잘못 낀 첫 단추, 일본군 '위안부'
요즘 드러난 청년문제는 누구도 변명할 수 없이 이 시대의 짐이 되었다. 온 세대에 걸쳐진 사회의 적폐가 청년의 피폐한 삶과 맞물려 생겨난 공공의 문제다.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이라면 청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다. 청년의 '삶' 자체가 이처럼 사회학적인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나 싶다. 역사상 청년문화, 청년의 사상, 청년의 생활양식만이 관심을 받았다. 대부분 우려 섞인 목소리와 억압하는 시선이었지만 말이다.
왜 청년은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것일까. 역사의 눈은 (성인이 아닌) 아동과 마찬가지로 청년을 잘 보지 못했다. 근대국가가 탄생하고 나서야 청년이라는 '의미'는 그 말의 '주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리고 국가의 '학교제도' 안에서 겨우 성장했다. 그러니 이러한 근대의 시선이 청년을 '과도기'로 분류했다는 저자의 소개에 독자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청년의 탄생 배경엔 어떤 의도가 담겨있던 것일까?
근대국가는 국가체제를 안정시키고 유지하는 '근대인'이 필요했다. 교육은 그런 능력을 지닌 청년을 양성하는 제도였다. 다시 말해 교육이란 젊은이들을 국가체제로 귀속시키는 과정이었다. 20세기 한반도의 사람들도 같은 방식을 썼는데, 청년을 미숙한 존재로 보는 기성세대의 생각과 어느 정도 일맥 하는 방법이었다.
1910년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시작되면서 일본 유학생들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청년 개념이 형성된다. 그들이 몰락한 부모세대와의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사라진 시대를 살아야 하기에 어쩌면 부유하는 존재로서 마땅한 결정이었을 수도 있다. 가르치는 동시에 스스로 배워야 하는 존재로 자칭한 그들은 실제로 자신에게 부여한 지위를 잘 인식했다. 청년들은 3.1 운동을 마주하고서 '민족'의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역사적 증거를 남긴다. 그들의 자각이 민족운동을 일으키는 촉발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살았다. 당시 청년의 주체의식은 한국의 역사에서도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청년운동이 민족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만큼 대중들이 청년들을 신뢰했기 때문인데 지금과는 다른 사회적 연대감을 보여준다. 다양한 청년운동은 1920년대 들어서 조선민족이 나가야 할 새로운 가치들을 각각 찾아 실천했다. 독립을 위해 일하던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행보는 일제강점기 내내 대체로 갈리지만, 청년을 민족과 대중의 대표로 봤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졌다. 이 운동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알았던 식민지의 정치세력들도 자신들의 청년상을 제시하여 대중을 사로잡으려 했을 정도였다.
청년을 민족의 주체로 보았던 청년운동에도 과오가 있었다. 민족주의는 소수의 지식인과 자본가들을 근거로 한 청년론을 폈기에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회주의는 계급투쟁에 집중하면서 청년운동을 점점 백안시했다. 또한 이들은 모두 여성을 청년의 개념에서 배제했다. 이와 같은 한계 때문에 청년운동이 주춤한 사이 1930년대 제국주의 권력은 청년층을 통제하려 현실 문제를 이용했다. 청년을 능동적인 주체로 인식하는 조선인 사회운동을 배척한 일제는, 청년을 철저히 국가와 사회의 훈육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선각자의 청년상이 권력에 의해 무너지자 청년은 문제 그 자체이자, 사회의 고민거리로 전락했다.
이광수와 같은 조선인 지식인들도 점점 파시즘을 받아들였다. 일제가 벌이는 전쟁이 시작되면서 더 심해졌는데, 청년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병사적 인간형"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다. 권력과 파시즘으로 망가진 '청년'은 해방 이후, 이념 다툼의 장마다 불려 다녔다. 남한에서 청년의 이미지는 곧 좌익에 맞서 싸우는 물리력의 실체였으므로 청년은 반공정신과 이승만을 비롯한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다하는 이들이었다. 국가권력에 귀속되었던 경험을 지녔던 '청년'은 역사의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근대를 거치며 탄생한 '청년'은 시대를 따라 부유하며 변해왔다. 시대의 주체였으나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질 못한 때도 있었고,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으나 권력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4.19 혁명의 주역, 독재에 대항한 민주주의 투사, 지식인, 대학생과 같이 청년을 의미하는 당시의 개념들을 살펴보자. 청년은 사회적 관계와 기대감 사이에서 결정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상이 불변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한국 사회에는 대표적인 청년의 모습이 있다. 새로움으로 과거를 혁신하고 지치지 않는 동력을 사회에 제공하며 불가능한 미래를 가져오는 심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살펴본 역사의 흐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금 떠오르는 청년상도 사회나 국가의 요구가 아닐까. 청년이라면 정말 그래야만 할까. 청년은 자신들을 규정한 이 생각에 동의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 순간 청년을 바라보는 모든 이의(청년 자신을 포함해서) 시선에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시대의 소모품이 아니라 주체가 되려면 말이다.
우리는 20세기를 풍미했던 사회주의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사회주의 사상이 독립운동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는데도 말이다. 사회주의자가 북한에서도 배척받는다는 내용은 놀라웠다. 오로지 김일성만을 높이고 세습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나머지 사회주의 운동가들을 종파분자로 낙인찍었다는 것이다. 남한에선 반공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회주의는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왜곡되었는데 저자는 사라진 이유를 익숙한 곳에서 찾는다.
한반도에서 사회주의를 처음으로 왜곡시킨 이들은 일제였다.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그들의 지배에 도움이 되질 않자, '과격파'라는 말을 퍼뜨려 혐오 분위기를 부추겼고 치안유지법으로 사회주의자들을 옭아맸다. 사회주의는 해방, 혁명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기에 노동자와 농민들뿐만 아니라 일제에 억압받던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유행했다. 역으로 하면, 사회주의는 권력자인 일제에겐 체제에 불순응 하게 하는 위험한 사상이었고 탄압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내세운 독립의 방법에는 여타 독립운동가들과 다른 생경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식민지 체제를 지탱하는 정치, 경제,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보았고 그 결과 계급전쟁이 필수라 주장했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전국적 봉기, 곧 혁명을 위해 다각도로 대중과 관계를 맺고자 했다. 노동자 파업과 소작쟁의에 함께 참여했고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열거나 지면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알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개인과 정신의 개조로, 민족주의자의 주장이며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는 와중에 사회주의자들은 비합법적인 대중단체도 여럿 만들었다. 그들이 민중이 소속된 단체를 세우는데 지속적으로 힘썼던 이유에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여기던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있다. 그들은 노동자연대파업, 원산총파업, 소작쟁의, 식민교육 반대, 민족차별 반대, 교육여건 개선, 백정을 위한 형평사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을 벌였다. 덕분에 민중은 민족해방운동에 주요한 세력으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가혹한 소작료를 실제로 낮추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분명 한국사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 있기에 사회주의의 흔적도 물론 한국사에 남겨져 있다. 그러나 역사의 굴곡을 거치며 한반도의 사회주의 역사는 감춰졌고 독립운동사 마저도 가려져 우리의 인식에서 많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익숙하지 않은 사회주의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주는 이질감을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익숙한 개념이나 상식이 많은 까닭이다.
우리는 종종 역사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가 반절의 기억이라면 분명히 배움에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일제가 남겨놓은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면 익숙한 역사적 견해라 할지라도 청산의 대상을 비껴갈 수는 없다. 익숙치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반복되는 과오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국 직면하는 용기 뿐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