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라 불리는 남자. '마틸다'라 불리려 했던 여자. 소설을 이끄는 이 이름들은 마치 봄날의 송진가루와 같다. 봄비에 고여 아침햇살을 튕기는 것이 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섞이지 않으나 함께 떠돌며 빛나다, 여름날의 폭풍우에 사라지는 꽃가루와 같은 일생을 담은 이름들이다.
누군가가 불릴 때 다른 누군가는 불리길 바래야 했던 이유가 소설의 이름에 드러난다. 누군가의 삶이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찬란하도록 조정되었고 누군가의 '분노'가 마치 필연적으로 계획되야만 했다면 어떨까. 운명의 장난인지 분노의 계획인지 모를 두 사람의 만남을 매개체로 지은이가 그들의 일생을 담담히 조명한다.
이야기의 배경에는 연극계가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물의 대화나 생각, 상황설명에 희곡의 대사나 신화 이야기가 자주 인용된다. 다양한 이 상징들은 분명히 내용을 풍요롭게 한다. 복잡다단한 세상을 그럴듯한 설명으로 흥미롭게 풀어내는 신화는 동일한 문화권에서 노소를 따지지 않는 동화와 같은 친근함을 주기에 더욱이 적절한 장치다.
그러기에 안타까운 것은 바로 본인이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나 로마 신화 이야기에 숨겨진 심상을 적절히 읽어내지 못하는 비 영미권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석이나 해설과 각주로 뛰어넘을 수 없으나 서구 문화를 이해하는 만큼 건널 수 있는 간극이므로 아쉬움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배우들의 화려한 삶이 소설에서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고 내면묘사에 주로 사용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요소다. 따라서 연극계와 관련이 없는 배경이어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다만 본인이 저자의 설정이 적절했다 생각했던 까닭은 극본을 읽는 듯한 전개 방식에 있다.
이 소설에는 그 흔한 가치판단이 없다. 하나의 삶이 의도된 결론에 다다르도록 유도하는 시도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전개방식은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세밀한 관찰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행동 묘사에 그려진 저자만의 세밀하고 독보적인 필체가 느껴진다. 마치,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이나 목소리를 들으며 극본을 읽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담담하지만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적절한 시점에 등장하는 '목소리'는 이 소설의 또 다른 특성이다. 장황하게 보이는 묘사에 지루해질 즈음, 독자에게 들리는 괄호 안의 '목소리'는 이야기를 파고들게 하는 동력원이자 독자의 좋은 동반자가 된다. 인물들의 대화 사이, 사건이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목소리는 누군가가 읊조리는듯한 독백 혹은 내면의 속삭임 같기도 하다.
읽는 이의 판단을 유보시킨 채 조용히 이야기의 중심부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묘사는 흐르는 물과 같다. 많은 것을 담지만 일시에 명쾌하게 보이지 않게 해서 편중된 시선을 지양하도록 주도한다. 이것은 하나로 뭉쳐진, 해체할 수 없는 삶들의 서사를 읽어내는 방식과 닮았다. 담벼락을 오른 덩굴들의 어지러운 문양을 볼 때는 선 하나 하나를 따르는 인내가 필요하다. 과거의 사건들이 뒤엉켜 만든 인물들의 고백을 따를 독자들은, 빛을 튀기며 사그라드는 소용돌이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