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견뎌낸 기념물에 감탄하는 문학적 표현이 있다. '이 돌은 홀로 그 긴긴 시간을 보내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바라보았겠지.'
이 표현은 흐르는 시간에 대한 '추억'과 추억하는 지금도 지나갈 거라는 '자각'으로 공간에 대한 말의 장식이다. 마치 물컵에 꽃가지를 꽂아 꾸민 것처럼, 결국 꽃은 시드는 줄 알면서도 말이다.
더테이블. 곧 '그' 테이블은 영화 속에서 네 쌍의 사람들을 지켜본다. 또한 대화하는 인물들이 나누는 미묘한 추억의 잔상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공간을 빌려준다.
사람들은 그들 중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제 삼의 장소가 그들만의 공간이 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러나 정작 테이블의 시간이 다 지나도록 당사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대신 관람객은 대화를 엿들으면서 깨닫는다. 이들이 카페라는 공간만을 빌렸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까닭이다. 곧 서로의 삶을 빌려 채우던 혹은 채울 본인의 삶을 각자가 되새기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곧이어 서로에게 다시금 시간의 빚을 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한다.
재미있게도 이 모든 일은 하루의 시간 중 잠시 빌린 일시적인 공간에서 벌어진다. 아마도 테이블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던 이들의 대화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체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지켜보며 누군가의 기념이 되는 것.
그리고 이것은 사족이겠으나 우리에게 이러한 일시적인 공간인 까페가 없었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을 그려낼 수 있을까 싶은 괜스레 조바심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