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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쓴쓴 Jan 04. 2020

움직임, 그 귀찮음에 관해 논하다가

행복을 찾아서

언젠가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만 말하자면, 살이 쪘다. 간단하면서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일 년 넘게 변하지 않는, 체중계의 앞자리 숫자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다가 곧 줄겠지, 하던 어설픈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이 자리에 왔는가. 맞지 않는 옷이 생겼고 움직임이 둔해졌다. 사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겠지만, 움직임은 나하고 거리가 멀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감상하고, 카페에 앉아 사람과 풍경을 관찰하는 게 내 주 특기다. 간혹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같이 운동을 하자거나 스포츠를 즐기자거나 하면 나는 금세 풀이 죽는다.


그런 내가 조금 위기의식을 느꼈던 건, 어느 순간부터 걷기를 귀찮아한다는 데서 였다. 바람을 맞으면서 산책하기를 즐겨했던 습관이 눈 녹듯 사라졌다는 현실을 깨닫기란 그다음 순서였으니, 흐려지는 과거를 붙잡기엔 많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둔해진 몸이 원인인지, 사라진 습관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둘 사이에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었음은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가끔 늦잠을 자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낮잠을 즐기지만 목표가 생겼다 하면 늦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게 나의 생리다. 물론 대부분의 일과가 글을 써내는 행위로 채워져 있기에 나름 공통분모가 있고, 글쓰기를 즐겨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한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사실 문장을 채우는 데서 큰 힘을 들이지 않는다.


이와 정반대로 여기는 움직임은 나에게 매우 큰 힘을 요구한다. 게다가 지금 한국의 계절은 겨울이지 않은가, 말이다. 앞다투어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들이 이곳저곳에 있는데, 나라고 다르지 않다. 그러기에 좋은 핑계가 생긴다. 난 그래서 시간이 나면 누워있다. 당연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쓰지만. 이게 게으른 것인가, 하고 나에게 반문을 한다.


걷기부터 다시 습관을 들여야 하려나 싶다. 누군가는 새해도 밝았으니, 올해 목표로 운동을 잡으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 싫다. 본인은 행복에 민감한 사람이다. 큰 것도 좋지만 소소한 삶의 조각들을 모으는 데서 재미를 느끼고 싶다. 움직이면 책, 카페, 대화, 관찰, 글쓰기 모두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니 귀찮은 무언가를 더해 나머지 모두를 몰아낼 생각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지금까지 운동을 하기 싫다는 본인의 변론이었다. 하지만 내면의 압박이 조금 남아있다. 채 털어내지 못한 잔여물이 생활 속 곳곳에 고여있다. 거울 앞, 옷장 앞, 식탁 앞에 괴로움의 웅덩이가 파여있다. 결국 나와 같은 사람을 움직이려면 작은 행복의 조건들을 들먹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대의명분은 마음만 괴로울 뿐이다. 이루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일은 그만 하고 싶다.


새해 다짐 같은 것은 다시 말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 올해 목표라는 말도 나에겐 거창하게 느껴져서 굳이 정해놓고 싶지 않다. 단지 이번 해에는 내가 무엇으로 행복해하는지 알고 싶다. 이제는 나 자신에 관해 어느 정도 알아야겠다 싶어서다. 이것도 너무 큰 주제인 듯하지만 이런 마음만은 유지하는 비결은 앎의 추구가 나에겐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데에 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할지 말지는 모른다. 또한 내가 올해 새로운 행복을 찾아낼지도 미지수다. 여전히 운동이 나에겐 힘든 일이니 그것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만, 어떤 지혜가 있어서 행복에 이르는 우회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다른 색깔의 행복을 찾아내는 한 해가 될 수도 있고, 그런 까닭에 어떠한 뒤집힘을 꿈꿔야 하는지도 알 길이 없지만 어제, 오늘 운동을 해냈다는 데서 작은 행복을 느끼 시작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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