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두렵다면 이 책!
몇 달 전, 나는 다수의 책을 낸 에세이 작가님을
아주 조용한 오피스텔에서 간첩 접선하듯 만났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에세이 쓰는 걸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다.
그러나 해당 작가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첫 수업이 마지막 수업이 되면서 나의 의지도 무참히 꺾여버렸다.
그 작가에게 뭘 얻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가 행주 같이 너덜너덜해진 내 감정을
깔끔하게 분류해 주고 다림질까지 마무리해 번지르르한 양복으로 재탄생시켜 줄 거라는
이상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많은 책들과 강연에서는 글 잘 쓰려면 '많이 써 봐라'라고 조언한다.
알고 있다. 그러나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폼을 잡으면 구질구질하게 내 발목을 잡는 게 있다.
바로 ‘시작 병’이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벽에 가둬버린다.
꼬이고 얽힌 감정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글로 풀어써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재능이 없군' 괴로워하며 애꿎은 머리카락만
쥐어뜯는다.
글쓰기의 무서움과 무거움을 <<심심과 열심>>이라는 책이 300g 정도는 가볍게 덜어주었다. 나의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는 와중에 <<심심과 열심>>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에세이 작법서인 줄 알았는데 글 쓰는 과정의 희로애락이 잘 담겨 있어서 초보 작가에겐 힘이 되고 살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도서관에서 대여한 책이라, 읽다가 인덱스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일 정도로 밑줄치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다. 굉장히 솔직하면서 유머 한 스푼이 아주 적절하게 들어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술술 읽게 된다. 글 쓰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고통의 시간을 김신회 작가는 남들보다는
조금 촐싹 맞게(?) 또는 지질하게 표현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글이 아니라 감정의 밑바닥까지 진짜를 그대로 녹여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과하게 표현해 봤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동안 작가와 단둘이 골방에 들어앉아
밤새 수다를 떤 기분이랄까. 그녀는 나를 모르지만, 내적 친밀함은 이미 베프다.
<<심심과 열심>>을 통해 얻은 내용은 이렇다.
"나에게 솔직할 것! 일단 끝은 생각하지 말자.
성찰? 안 하고 끝낼 수도 있디.
일단 고삐 풀고 더럽게 글을 써 보자!"
‘지금 네가 이럴 수도 있는 거야’, ‘찌질(?)해져도 괜찮아’ 이렇게 조곤조곤 옆에서 응원해 주는 거 같다.
글 쓰는 게 두려운 사람, 글 쓸 때 마음이
백 갈래인 사람에게 적극 추천한다.
<밑줄 문장>
p31
인간관계를 굴러가게 만드는 것은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닌 자질구레한 이야기다.
그 쓸모없음이 바로 쓸모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우리는 글쓰기만 시작하면 비장해질까. 왜 번번이 뻔한 끝 문장 쓰기에
중독되고 마는 걸까.
<밑줄 문장>
p48
그렇게 일기는 가끔 우리의 일상을 구원한다.
언제 모아뒀는지도 몰랐던 마음속 이야기는
에세이의 글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일기는 에세이의 초고다, 초고는 총알이다. 쌓여가는 일기장을 볼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나한테는 총알이 이만큼 있어.
그 총알 중 하나로 이 글을 썼다.
<밑줄 문장>
p135
어쩌면 내가 쓰는 글은 즐거움으로 하는
sns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저 하루하루에 대해 조곤조곤 떠드는 게시물들.
결국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소 쓰는 글과 비슷하게 사는,
스몰 토크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