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아 에세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

닮고 싶은 선택

by 이너프

어떠한 정보 없이 제목만 들었을 땐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인가 했다. 연인 관계에서 가장 먼저 소환되는 단어이니까. 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그 익숙한 방향을 비켜 나갔다. 수녀가 되고 싶었다는 그녀의 마음처럼 가볍게 쓴 책이 아니었다. 책장을 넘기며 사람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깊고 다채로울 수 있구나 하고 깨달았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깨끗하고 큰 그릇의 성품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존경하는 아버지처럼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제자들을 사랑할 줄 알고, 덕망을 갖춘 교사였던 그녀가 결혼과 함께 고된 시간을 겪게 된다. 신혼 때부터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적잖은 상처를 입는다. 함께 산다는 건 곧 서로의 가장 취약한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걸 시간 속에서 배워간다.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결국 마음의 병까지 얻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시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감정과 제자들과의 행복했던 나날을 숨기지 않고 기록한 이야기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자신에게 상처 주고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고백하는 대목이었다. 이 책은 지독한 시집살이를 ‘참아낸 며느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던 시어머니를 ‘한 여자의 생’으로 바라봤다는 점이다. 가난과 남편의 부재,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며 버텨온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전혀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감정이 변해서가 아니라, 선명한 이해가 원망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사랑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여러 번 나에게 질문을 했다. 사랑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리고 나는 과연 이런 사랑을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주저할 때 저자의 진심은 멈추지 않고 고백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선택하는 거라고. '매일의 선택'이다. 그 하루들이 모여 그녀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싶다. 저자처럼 사람을 사랑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매일의 선택에 집중한다면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고 반발짝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어제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기 위해 선택해 보려고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녀의 진솔한 사랑 이야기 88편이 담겨 있다. 문장 한 줄 한 줄이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기에,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인간관계로 지치고, 가족이라는 이름의 관계 앞에서 자주 무력해지는 사람,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경계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오래 곁에 남을 것이다.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

-왕조개 미역국-

어머님이 내게 남겨주신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먼저 사랑하는 나의 남편을 낳아주신 것, 그리고 우리 삼 남매의 엄마로 살게 해 주신 것, 그리고 음식은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세 가지가 바로 떠올랐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의 함정-

그래서 그 족쇄로 자식이 얼마나 심적 부담을 크게 느끼는지 모른다고, 반복되는 그 말이

자식을 점점 멀어지게 한다고도 했다. ‘했다는 마음, 주었다는 마음’만 잘 비우고 살아도, 우리의 삶이 더욱 행복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백 점이야, 백 점!”-

내 안에 들어온 말 한마디가 어느새 내 것이 되고, 그것이 씨앗이 되어 어디론가 훨훨 날아간다. 날아간 그곳에서 예쁜 꽃이 피어날 것이고, 또 씨앗이 생길 것이고 또 어디론가 날아가겠지. 이래서 세상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는 걸까? 그래서 나 귀하듯 남도 귀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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