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온도

[나의 끝동네 이야기]

by 이너프

추위 때문에 몸을 녹이기 위해 카페로 들어갔다가, 옆 테이블의 스무 살 언저리의 여성이 친구들과 대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듣게 됐다.


“나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는데, 겨울엔 난방이 안 되는 거야. 돈이 없어서...

겨울이 죽도록 싫고 가혹하게 느껴졌어."


겨울이 싫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녀가 겪었을 가난의 온도가 나에게도 다가와 쉽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햇볕 한 줌 가질 수 없어 퀴퀴한 냄새가 번지는 창문 없는 고시원 방, 해진 외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출근길, 김밥 한 줄 앞에서 망설이게 만드는 가격표. 나에게도 온기 없는 하루들이 축축하게 널려있던 적이 있었다.


같은 겨울을 통과하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눈을 맞으며 낭만을 즐기는 계절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빨리 지나가길 기도하며 더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의 연속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크리스마스를 앞둔 도시에는 반짝임과 설렘이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다. 거리의 불빛은 유난히 환했고, 사람들의 걸음에는 이유 없는 들뜸이 묻어났다. 그런데 그 풍경 위로 그녀의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가난하면 더 춥다는 말. 아무리 속도를 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한 달 전 읽었던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불현듯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작은 마을에서, 석탄 배달을 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펄롱이 수녀원 세탁소에 연료를 배달하다 감춰진 추위를 마주한다. 모두가 알고도 외면해 온 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여성을 본 그는 가족의 생계와 마을의 질서를 떠올리며 망설인다. 외면할 수도 있었던 순간, 지나치기 쉬운 선택. 그 사소함 속에서 누군가의 겨울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 사람의 선택으로, 그 겨울이 흔들린다.

카페에서 들었던 그녀의 말과 소설 속 장면들이 겹쳐졌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도 불빛은 여전히 반짝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크리스마스는 모두에게 공평한 날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장 불공평한 온도를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사소한 것들을 선택조차 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는 밤이다. 오늘만큼은 가난의 온도가 비껴나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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