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았다면 물속으로 풍덩 - 프롤로그 1

생애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는 30대 중반의 이야기. 프롤로그 1.

by 속삭이는 물결

2020년 봄, 나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비엔나커피를 홀짝이다 상사에게 말했다. 일을 곧 그만둬야겠다고. 나의 이런 선전포고를 예상한 듯하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던 상사는 내게 되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는 것이냐고. 나는 말했다. 수영을 배울 계획이라고.


수영을 배우겠다는 나의 말에 상사는 뒤집어졌다. 직원 하나가 퇴사를 하는데 향후 계획이 수영이라니,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 말해야 하냐고. 창피함을 먼저 걱정하던 상사의 진심이 무엇이건, 나는 계획대로 회사를 관뒀지만, 역병이 이미 창궐한 때였다.


오랫동안 찜해두었던 구립 체육시설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운영을 멈추고 있었다. 수영을 배우겠다는 나의 계획은 사실 이보다는 오래되었다. 어릴 때 수영을 배워두면 평생 따라오는 이점, 수영 그 자체의 즐거움, 어느 곳엘 가도 물놀이는 빠지지 않는 놀거리라는 점, 지금까지 많난 수많은 이들이 수영이 좋은 이유를 내게 주입시켰다.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들었다. 지금까지 수영을 배우지 않은 일이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기에, 꼭 배워야겠다는 마음이 세월 따라 겹겹이 쌓여왔다.



왜 우리 엄마는 날 수영장에 보내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딱 한 번 수영장을 찾은 적이 있다. 친구가 수영장에 가서 놀자고 해서다. 가면 수영복도 빌려준다고 했다. 적당히 빌려 입은 수영복은 내게 너무 컸고, 처음으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 부끄러움도 심했다. 그래도 물속으로 들어가면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


친구와 나는 수영을 하지는 못했지만 물속을 걸어 다니며 나름의 물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마침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동네에 유일했던 이 수영장을 찾아 놀고 있었는데, 그 누구도 수영을 하지는 않았다. 공놀이를 하거나 서로 장난을 치는 게 다였다. 친구와 놀던 나도 흥에 겨워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커다란 수영복이 물을 맞고 축 처져서 찌찌를 노출시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누가 봤을까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왔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가 저마다 노는 데 정신이 빠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자아이들은 이미 가슴을 드러내고 놀고 있는데 그 정도가 무슨 대수인가 싶지만, 그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수영을 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수영장에서의 즐거웠지만 수치심을 동시에 견뎌 내야 하는 그 경험이 나의 있던 흥미도 없게 만들었다. 이후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내 몸에 대한 자신감은 더욱이나 바닥을 쳤고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는 '내 몸을 드러내는 일'에 대한 공포가 문제다.) 수영은커녕 물놀이조차 기피 대상이 되었다.



그보다 더 옛날, 유아 시절로 거슬러 가면 가족 동반 모임을 따라 계곡에서 놀았던 적이 있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음에도 당시 남긴 사진 덕분에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기를 구워 먹으며 놀다가 갑자기 물놀이가 시작되었고, 엄마는 내게 수영복을 입히려 했다. 그것도 야외에서.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아빠 친구네 부부들, 그들의 자식들이 모인 십수 명 앞에서 모든 옷을 벗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수치스러웠다.


야속하게도 나의 아빠는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까지 했고, 수치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참담한 표정이 영원히 박제되었다. 어른들 눈에는 마냥 귀여웠으리라. 하지만 이때의 공포는 나를 오랫동안 잠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