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았다면 물속으로 풍덩 - 프롤로그 2

생애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는 30대 중반의 이야기. 프롤로그

by 속삭이는 물결

성인이 된 내가 수영 대신 선택한 취미는 무용이었다. 수영복과 무용복을 비교해 보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수영복은 치마나 바지, 스웨터나 티셔츠를 겹쳐 입을 수가 없다. 무용을 배우면서 생전 처음으로 전신 거울을 보며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게 됐다. 무용 수업 연차가 쌓이면서, 그리고 작은 발표회 몇 번을 거치면서, 나는 내 몸에 조금 더 당당해졌다. 수영을 배우기 위한 마음의 준비가 가까스로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수영을 배우겠다는 명목적인 목표를 둔 채 퇴사를 했지만, 수영장의 닫힌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물론 수영을 배우다가 코로나에 걸릴 일도 걱정되었다. 마침 국내 여행이 활발해졌고, 인스타그램을 가득 채우는 물놀이 인증샷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약간의 부러움과 분노를 섞어서 말이다.


그러다가 수영장 물속에 흐르는 소독약 덕분에 수영장 내 전염 확률은 극도로 낮다는 정보를 보고 배워도 좋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혼자서 배우러 다닐 테니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의 감염 우려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해 늦여름쯤, 드디어 수영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나는 쿠팡에서 수영복과 수모, 수경, 귀마개가 모두 들어 있는 세트 상품을 주문했다. 수영복을 입어보고 신난 나는 자전거를 타고 구에서 운영하는 체육시설로 향해 잽싸게 등록했다. 하지만 바로 며칠 뒤, 코로나19 재확산 문제로 체육 시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문자 메시지로 날아왔다. 취소를 하려면 직접 다시 접수처로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였다.



30대가 될수록 선택과 결단은 빨라진다. 긴 것과 아닌 것이 더 명확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좋좋소를 전전하던 나는, 수영 퇴사 포고를 던진 이후 두 번의 이직과 두 번의 퇴사를 경험했다. 삼재가 끝났다는 데도 인생이 주는 고난은 여전히 지독했고, 고난의 출발 지점인 나 자신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생각하게 됐다.


나의 문제. 상황의 문제. 조직의 문제. 관계의 문제.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만, 그 최선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끝없이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힘든 상황을 함께한 이도 스스로를 위한 최선책만을 선택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붙잡고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또 한 번의 이별은 얼마 전 일어났다. 일주일 정도를 멍하니 지냈고, 모든 것이 지독한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문득 연초부터 알아보았던 구내 체육 시설이 떠올랐다. (그 사이 다른 구로 이사를 했다.) 직장으로 가던 길에 늘 보이던 시설이었지만, 겨울에는 추워서 봄에는 바빠서 아직 찾지 못한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