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비가 왔다, 아주 조금. 내릴 거면 시원하게 쏟아 내릴 것이지, 미스트를 뿌리다 만 것 같다. 가뭄 걱정도 걱정이지만, 애매하게 흩뿌리는 비에 괜스레 울적해진다.
어젯밤에 폼롤러, 마사지볼로 충분히 풀어주고 잤지만, 일어나 보니 역시나 늘 그랬듯 왼쪽 햄스트링이 욱신거렸다. 일어나자마자 워밍업 크림을 발라주고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점점 햄스트링 전체에 열감이 피어올랐다. 근육이 잘 덥혀지고 있는 것인지 피부에 열감만 주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수영장에 도착해 샤워를 하니 그 부분이 파스를 바른 것처럼 화-했다. 사실 이 크림은 파스로도 쓰이는 거라 당연한 일이다.. 덕분에 파스를 바르고 샤워를 하면 안 된다는 정보가 떠올랐다. 어차피 바디워시로 깨끗하게 씻어낼 계획이었지만, 물에 닿는 것이 피부에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바디워시로 씻어내고 나니 열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따뜻함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진 않았을까?
음파 발차기로 시작이다. 오늘은 어째 별로 힘들지가 않다. 쉬지 않고 빠르게 오갔다. 어제처럼 팔 자에 유념하면서! 앞으로 잘 나아가지 못하는 초보 분들도 함께하셔서 교통 정체가 발생했지만, 저분들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의 나의 모습이다. 그냥 잘 피해서 가거나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누군가도 날 잘 참아줬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그러곤 킥판을 옆으로 잡고 옆으로 누워서 사이드 킥 한 바퀴다. 엄지는 허벅지에 붙이고 손바닥 세우기. 머리가 가로막히는 느낌이 났는데 내 정수리가 그렇게 생긴 건지 머리 똥이 팔뚝에 닿은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불편한 느낌이 들었지만 확인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열심히 한 바퀴를 돌고 오니 팔뚝이 많이 뻐근했다.
팔뚝 스트레칭을 하면서 기다리니 선생님이 어깨 롤링을 설명해 주신다. 양쪽 어깨가 똑같이 옆으로 세워져야 더 잘 나아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킥판을 잡고 어깨 롤링에 신경 쓰며 두 바퀴. 앞팔은 자연스럽게 글라이딩이다. 나도 모르게 아주 약간씩, 아마도 5mL씩 물을 삼킨 것 같다. 고개를 제대로 숙이려다 보니 정말로 물이 입속으로 조금씩 들어왔는데, 뱉을 타이밍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적은 양이어서 삼켜버리고 만 것이다. 찝찝했지만 아주 적은 양이어서 뭔가 고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 삼킴과 수영 고수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는 없다.
이번에는 킥판 없이 자유형이다. 앞으로 쭉 길게 뻗어나가는 느낌을 기억하면서! 선생님은 이번에는 남자분을 선두에 세우셨다. 남자분이 너무 많이 쉬시는 편이라 지금까지는 내가 앞장서서 나갔는데, 사실은 키 큰 사람이 먼저 가는 게 맞다. 내가 처음부터 쉼 없이 오간 덕분인지 남자 분도 쉬지 않으시고 바로바로 오가셨다. 다행히 별로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아마 키가 크셔서 나보다 운동량이 1/3은 적으실 텐데.. 죄송하지만, 얼른얼른 끝내고 평영 배워야 한단 말이에요. 선생님은 내가 너무 급하다고 천천히 하라고 하셨다. 내 마음은 정말 여유로운데, 무슨 소리지. 음-하는 호흡이 너무 세서 파-도 너무 급하게 들이마신다고,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급해질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아니 나 지금 아주 여유로운데..
아무튼 두 바퀴를 돌고 오니 선생님이 오늘 새로 오신 경력자분 포함 4명을 유아풀로 부르셨다. 드디어 평영 연습 시간! 수업 시간은 20분이 남아 있어 아주 넉넉했다. 신이 났다.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서 다리 모양을 보여주셨다. 하나에 다리 턴아웃 플렉스로 쭉 뻗기, 둘에 다리 자연스럽게 접고(이때는 무릎이 자연스럽게 가깝다) 발목만 턴아웃 플렉스 바깥으로 돌리기(이때 무릎이 벌어진다), 셋에 발목 안쪽 힘으로 타원을 그려서 다시 처음 자세로 돌아오기. 여기서 3초 기다린다. 하나 둘 셋 순서별 동작은 뒤집어져 있을 수도 있다. 다리를 접을 때는 무릎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발목을 바깥으로 돌리는 걸 더 의식해야 한다(?). 정확한 설명이 기억나질 않는다.
먼저 수영장 턱에 걸터앉아 연습을 한다. 어제 배운 W자라는 표현 덕을 많이 봤다. 그저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만들라고만 설명을 들으면, 몸이 바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게다가 이 평영 발차기 동작은 난해하기 그지없어서 물음표가 내내 100개는 떠다니거든. 내가 배영을 배울 때 평영을 배우시던 분들의 아리송한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게 평영의 특징인 것 같다. 그럴 때 W자를 떠올리면 훨씬 수월해진다.
앉아서 한참을 반복 연습하고 있자 선생님이 킥판을 들고 오셨다. 킥판을 앞으로 잡고 연습하려나? 생각하던 차에 의외의 연습 과제가 주어졌다. 배영처럼 킥판을 배 위로 안고 뒤로 누워서 평영 발차기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유아풀 끝에서 끝까지 나가기. 처음에는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이미 배우다 오신 여성 두 분은 저만치 가 있었는데, 나와 남자분은 아직도 제자리였다. 뭐가 문제일까? 자세를 다시 바로 잡으며 발목 안쪽 힘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조금은 속도가 빨라졌다. 여차저차 가장 얕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왕복하길 두세 번.
저쪽에선 이미 마무리 체조를 마치고 수업을 파한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다시 유아풀로 오셔서 마지막으로 킥판 없이 손으로 걸으면서 앞으로 나가보라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활짝 벌리고 발목은 모르는 개구리 자세를 하는 것과 발끝을 포인해버리는 버릇만 자제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중간쯤 가니 이제 차렷 자세로 몸을 띄워서 해보라고 하신다. 수심이 낮아서 그런지 몸 중심이 잘 잡히질 않았다. 몸 중심 잡느라 허둥댔다. 그래서 발차기는 제대로 해본 것 같지가 않다.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신 것 같은데 기억은 잘 나질 않는다.
나는 허벅지 안쪽이 너무 아픈데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세게 차서 그렇다고 하셨다. 어젠 분명 세게 차야 한다고 했는데.. 본인이 언제 차라고 했냐고, 반원을 그리라고만 말했다고 한다. 할 말이 없다. 종아리가 아픈 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발끝을 세워서 그런 거라고 하셨다. 더 이상의 해부학적 질문은 하면 안 될 것 같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은 하루 종일 꼬인 듯이 아프다. 게다가 한동안 잠잠했던 발목과 발가락에도 다시 이상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골반 주변 근육이 단축되고 긴장되면서 당겨 올라오는 듯하다.
수영을 오래 배운 지인에게 평영으로 인한 통증 이야기를 했더니, 힘을 너무 세게 주고 하는 게 아니냐며, 평영은 영법 중에 제일 쉽고 할머니들도 잘하는 영법인데 그렇게 아픈 게 말이 안 된다며 이해하지 못할 답변이 돌아왔다. 덕분에 기분을 망쳤다. 타인에게 함부로 조언을 건네는 일은 언제나 위험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선에서 요령을 알려주는 것과 상대가 잘못됐음을 확신하고 그 전제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너무 다른 문제다. 이 대화 때문에 오늘 즐거워야 마땅한 내 저녁이 저기압에 우울한 시간이 되어버렸다. 그 생각에 사로잡힌 나도 싫고, 상대의 실수에 나를 되돌아보며 또 자책하는 나도 싫고, 이 좋은 시간을(무언가를 감상하러 갔다) 흐트러진 집중력으로 반쯤 나간 정신으로 보내고 있는 나도 싫었다. 자기혐오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감상을 하는 내내 머리를 굴리며 내 생각과 감정을 분석하고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느라 바빴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 것인가. 이 예민함으로 괜한 스트레스를 사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는 인생이 너무 싫다. 그래도 머리를 열심히 굴린 덕에, 사람을 미워하는 지경까진 가지 않게 되었다. 결국엔 나 자신과의 화해가 필요한 일이다. 예민한 게 아니라, 예리한 거야. 다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