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 ‘선수용’이라는 말의 매력

by 속삭이는 물결

건물을 새로 짓느라 도로를 뒤집어엎느라 아침 일찍부터 온 동네가 요란한 요즘. 어서 취직을 해서 낮 시간엔 집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소음 공해다. 그럼에도 수영 끝나고 밥까지 먹고 돌아오니 졸려서 머리를 못 가누겠다. 저녁엔 일정이 있으니 어서 일기를 쓰고 낮잠에 들기로 했지만, 잠깐 쉬고 났더니 도파민이 팡팡 나와서 그러지 못했다.


음파 발차기 두 바퀴로 시작. 어젯밤에 본 발차기 비법 영상에서 발을 넓은 여덟 팔자로 만들어야 더 빠르게 나갈 수 있다고 설명한 것이 생각나서, 양 발꿈치를 최대한 멀리 벌린 채로 발차기를 했더니 정말 속도가 빨라졌다. 사실 수영 강습 초기에도 본 내용인데 그동안 다른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집중하랴 늘 챙기지 못했었다. 잘하기 위한 정답은 정해져 있는데, 신경 쓸 부분이 너무 많아 한 번에 해내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수영은 무용보단 단순한 분야인 것 같다. 그러니까 충분히 금방 잘할 수 있어! 성취감도 더 빨리 찾아온다.


배영 발차기는 내 마음대로 킥판을 잡지 않고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은 채로 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힘이 들어서, 왠지 연습 효과가 클 것 같아서다. 킥판을 잡고 하면 어깨와 팔에도 힘이 들어가서 발차기 자체에는 크게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팔을 귀 뒤로 쭉 뻗는 느낌에도 익숙해져야 팔을 돌릴 때도 어깨 롤링이나 가슴을 펴는 자세를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두 바퀴를 돌고 나니 뿌듯했다.


이어서 자유형 팔 돌리기로 네 바퀴, 배영 팔 돌리기로 다섯 바퀴는 돈 것 같다. 배영 팔 돌리기 연습은 정말 원 없이 한 것 같다. 얼굴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 경지까지 다다르진 못했지만, 이전에 비해선 훨씬 덜했다. 어깨 롤링을 하되 팔이 너무 뒤쪽으로 가지 않도록 중립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다. 선생님도 보고선 별말 없으셨으니, 이렇게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많이 하면 할수록 허벅지도 뻐근해졌다. 그런데 왼쪽만 그런 느낌이 들어서 큰일이다. (밤이 되니 왼쪽 허리와 고관절, 발목까지 욱신거린다. 수영 때문인지 다른 활동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 이 선생님께도 평영을 배우고 싶어서, 선생님의 동선을 주시하며 눈치를 봤다. 수업 시간이 10분 정도 남았을 때 유아풀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가 평영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신규 회원에게 음파 발차기를 가르치고 계시던 선생님은 나의 요청 때문인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평영을 같이 배울 만한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시더니, 모두 할 줄 알거나 아직 멀었다고 판단하신 듯했다. 이내 다시 돌아서서 내게 다른 요일에도 배웠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제 5분 정도 배웠지만 발 모양만 익혔다고 알려드렸다.


또 그 께름칙한 매트로 시작했다. 매트에 꿇어앉아 평영의 기본자세인 W자를 만들라고 하셨다. 이때 무릎 사이의 간격은 머리 하나 들어갈 만큼의 크기를 유지해야 한다. 내 머리가 얼마만 하지?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머리가 훨씬 작은 선생님의 시범을 보니 골반 크기만큼은 벌려야 하는 것 같다. 평영은 자유형이나 배영과는 다르게 발목을 꺾어서 사용한다. W자로 앉은 상태에서 가슴 앞이 물이고 등 뒤가 물밖이라고 가정했다. 지금은 매트 때문에 발 뒤꿈치가 수직 상태로 있지만, 물속에서는 사선 아래쪽을 향해야 한다.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은 동작을 하나 둘 셋으로 쪼개어 알려주겠지만 자신은 선수용으로 가르친다고 하셨다. 내가 딱 원하는 것이다! 선수용이라는 말에 열의가 샘솟았다! 지난번에도 물 삼킴에 대해 선수를 언급하셨는데, 나를 너무 잘 파악하신 건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본 만화 속에서 자주 나오는 이 W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고통을 표현했더니 그냥 편하게 앉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무릎을 꿇어앉았다.


선생님은 콤파스를 아냐고 물으시더니(ㅋㅋㅋ나의 학업 수준을 뭘로 보고. 선생님도 자신의 질문이 어이없으셨는지 같이 웃으셨다), 콤파스처럼 양다리가 각각 반원을 그리듯이 움직여서 총 한 개의 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다리를 뒤로 꺾어서 접은 W에서 출발해서 각 다리가 바깥으로 차서는 다시 다리를 가지런히 쭉 펴는 11자로 들어와서 3초간 멈추기다. 어제 선생님과는 다르게 11자에 상태에선 발등을 펴는 방식을 하라고 알려주셨다. (내일 되면 헷갈리겠지만 일단은 그날그날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타일 위에 상체만 대고 누워서, 다리는 물속으로 뻗어내는 연습을 했다. 나의 W는 눈으로 볼 수가 없지만 계속 찌그러져 있다는 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곤 물속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로 엉덩이를 들고 W를 만들어서 똑같이 시도했다. 엎드려뻗쳐를 하고 엉덩이를 띄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선생님은 엉덩이를 띄우려면 몸을 팔보다 앞쪽으로 밀어야 한다고 하셨다. 엉성한 시도로 한 번 더. 이제는 물안경을 쓰고 고개를 푹 숙여서 다시 해본다. 그런데 턴아웃하던 버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계속 무릎을 활짝 벌리면서 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머리가 너무 크다고 주의를 주셨다. 그리고 종아리를 쥐어짜는 느낌이 나냐고 물으셨다. 나는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밤이 되고 나서 종아리와 온 다리가 매우 피곤한데 평영을 배워서 그런 걸까?


몸을 띄워서 W를 만드는 게 마치 물구나무서기처럼 느껴져서 가장 어려웠는데,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물이 깊은 곳에서 하자고 하셨다. 물속에서 엎드려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다리는 발목이 엉덩이에 가깝게 W자를 만들고 바깥으로 원을 그리면서 차내기. 차고 나선 3초 멈추기! 유아풀의 깊은 곳에서 한두 번을 하고 나니, “소리 들리세요?”라고 하셨다. 무슨 소리를 말씀하시는 거지? 안 들리는데요? 발차기 소리에 집중해보라고 하셔서 두 번 더 해봤는데, 고개를 물속에 넣은 상태였기 때문에 음-하며 숨 내뱉을 때 나오는 뽀글뽀글 거품 소리만 크게 들리고 발차기 소리는 아주 작게 들렸다. 선생님은 내 발소리가 너무 크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하셨다. 평영 시에는 발차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발이 수면 아래에서만 움직이기 때문에 애초에 소리가 날 수 없기 때문이다. 발차기의 방향이 사선 아래로 향해야 하니까. 나는 발을 수면 방향으로 뻗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헬퍼를 가져오셔서 등에 차라고 하셨다. 아무래도 부력 도구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헬퍼 하나로 엉덩이를 드는 게 훨씬 편해졌다. 이번에는 발을 아래쪽으로 뻗으려고 의식해 보았다. 선생님이 말하신 다리를 모을 때 추진력을 내는 느낌에도 집중해 보았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드디어 지금 한 것 중에 제일 나았다는 칭찬을 들었다. 두 다리를 차듯이 모으는 느낌을 잘 냈기 때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제 깊은 곳에 가서 킥판을 잡고 해 보라고 하셨다. 모두가 마무리 체조가 끝난 뒤에 나머지 연습을 하고 계셨다. 나는 마땅히 연습할 자리가 없어서 눈치를 보다가 킥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이곤 두 다리를 뻥 차 보았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수강생 분들도 나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었다. 한 분이 내가 오늘 처음 배우는 건데 처음부터 잘하면 안 된다고 농을 치셨다. 선생님은 또 나의 발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지금 다들 보고 있다며 (더 주의하라고) 농담을 건네시며 이제는 헬퍼를 빼고 해 보라고 하셨다. 헬퍼가 엉덩이를 띄우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만, 다리를 아래로 차 내리는 데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헬퍼를 빼고 나니 다리가 훨씬 아래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두어 번 하고 나니, 갑자기 화목 선생님이 보여서 인사를 했다. 오늘의 선생님은 킥판과 도구를 정리하느라 바쁘셨고, 화목 선생님은 나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계셨는데 이 상황이 굉장히 민망하게 느껴졌다. 같은 영법을 다른 선생님께 이틀 간격으로 배우다니 뭔가를 들킨 것 같은 느낌! 괜히 쑥스러워 다른 수강생분들께 화목 선생님을 소개해 드렸다. 그런데도 계속 웃으면서 보고 계시길래 민망해서 왜요?라고 말을 건네니 폼은 제법 나네!라고 하시며 대신 다리가 더 반원을 그려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한 가지 피드백을 더 말씀하셨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른 분들은 이미 자유형 연습을 하며 저 끝까지 가버린 상황이었다. 오늘의 선생님도 상황이 민망했는지 자리를 비우셨다. 나는 자유형으로 저 끝까지 갔다가 떠날까 정각까지 1분밖에 남지 않은 시계를 보고는 순순히 포기한 채 샤워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을 나와서 수다 타임을 가졌다. 수강생 한 분이 배영을 할 때 깃발이 보이면 뒤돌아서 자유형으로 가는 것이 좋다, 자유형을 할 땐 팔을 쭉 뻗어야 한다고,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가르치듯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고마운 마음도 들었지만, 역시 수강생끼리는 조언은 함부로 건네지 않는 것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묘하게 좋질 않다. 하지만 그건 나도 자주 저지르는 실수다. 좋게 말하면 조언, 무겁게 말하면 충고, 나쁘게 말하면 잔소리가 되는 것. 같은 말이라도 어떤 식으로 포장해서 전달하느냐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일단은 나부터 자중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우리 레인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시던 할머니 수강생이 지난주부터 안 나오셨는데, 오늘은 지난주에 팔 돌리기를 배우신 할머니까지 안 나오셨다. 두 분 다 그만두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할머니들의 포기가 너무 슬프다. 또 어떤 할머니는 힘에 부치시는지 가다가 멈추는 걸 자주 해서, 그 뒤를 따라갈 때 여유를 많이 두고 출발하지 않으면 자주 부딪히는 편이고, 방향 감각도 부족하셔서인지 가운데로 가시며 길을 막을 때가 잦은데, 다른 수강생 분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바빴다. 나도 얼마 전까지 그 할머니처럼 길막을 하고 헤맬 때가 있어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기다려주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드는 걸까. 게다가 할머니인데. 우리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고 어딘가 느려지고 젊을 때만큼 기능하지 못하는 시기가 올 텐데 말이다.


그분들은 선생님을 비판하는 데도 올리는 열이 지나치다. 웬만한 수영복 값어치보다 훨씬 저렴한 강습료로 개인레슨 수준의 퀄리티 있는 수업을 바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최선을 다하고 계신데. 그렇게 퀄리티 있는 수업을 바란다면 더 비싼 곳으로 가는 수밖에 더 있을까. 수강생이 워낙 많고 모두의 레벨이 천차만별이라 선생님은 정신없으실 수밖에 없다. 자기네가 수업을 한다면 그렇게 잘하지도 못할 거면서. 선생님이 짠해서 한참을 편을 들어주다가 왔다. 그래도 이런 말들은 여기에 적고 말아야지. 굳이 듣기 싫을 입바른 소리를 꺼낼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수영을 배운 지 아직 만으로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물론 사나흘 뒤면 만 두 달이 채워진다만. 그날이 되면 자축이라도 해야겠다. 지금 내 삶을 지탱해주는 고마운 수영! 더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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