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이나 수영이 없다며 아쉬워 발 동동 굴릴 땐 언제고, 전날 저녁부터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지금은 백수지만 월급쟁이 DNA가 인이 박여 휴일이 끝났음을 온몸으로 느꼈나 보다. 해일이 들이닥치기 전 새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기 시작하는 것처럼, 갑자기 모든 게 귀찮고 싫어졌다. 무기력에 빠졌다. 날도 선선하고 공기도 상쾌한 그 좋은 밤에.
그렇다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영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어제저녁 비눗물을 채워 넣은 수경을 물로 헹구고 짐을 챙겼다. 해가 쨍한 것이 낮에는 덥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 도착할 즈음, 너무 좋아 멈추고 싶지 않은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옷을 벗는 동안 한껏 여유를 부리며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음파 발차기로 시작이다. 그런데 웬걸, 속도가 좀처럼 나질 않는다. 휴일 내내 이론 공부를 그렇게 했는데 실력이 퇴행한 걸까. 분명 몸도 일자였고 발차기도 균일하다고 느꼈는데. 이렇게나 느리다니,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순 없어, 토요일에 선생님이 잡아주신 발차기의 각도와 세기를 조금씩 떠올려 보기로 했다. 그러려면 지금 하는 것보다 더 세고 크게 차야 한다. 선생님은 잡아주시면서 밀어주시기도 했는데, 나는 왜 영 밀리질 않는 걸까. 일부러 음을 더 오래 해봤건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멈출 순 없으니 계속해서 반복하고 반복했다. 다행히 한 바퀴를 다 돌아갈 때쯤 평소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틀 쉬어서 이런 거라면, 사흘 이상 쉴 땐 어떻게 된단 말입니까. 나 때 되면 수영 놓을 수 있는 겁니까?
선생님은 깃발보다 살짝 먼 지점에 킥판 2개를 마주 보게 세운 뒤에 여기까지만 왔다 가라고 알려주셨다.
발차기 두 바퀴를 다 돌았다. 아까 선생님이 킥판 잡고 배영 팔 돌리기를 하라고 하셨던 것 같아 배영 팔 돌리기로 가고 있었다. 그러다 머리를 부딪혔다. 사다리가 너무 가까이 보이는 바람에 ‘혹시 내가 가운데로 가면서 길을 막고 있는 걸까’ 싶어 당황하다가 벽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가서 쉬고 있던 분이 깃발이 보일 때 멈춰야 한다고, 자신은 그렇게 배웠다고 알려줬다. 나는 멈출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나한텐 물이 너무 깊어서 빠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선생님이 오셔서 깃발에 관한 정보를 주셨다. 규격상 깃발이 있는 곳부터 레인 끝까지는 5m이며, 깃발이 보이면 그 정도 거리가 남았음을 감안해서 팔 돌리기를 두세 번 하고선 멈춰야 함을 계산하고 인지해야 한다. 그 설명까지 하시곤 “지금은 자유형 팔 돌리기 연습”이라고 하셨다. 처음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보다. 하다 보니 그 남자분이 레인 끝에 도착할 때마다 너무 오랫동안 쉬셔서 답답했다. 워밍업은 얼른 끝내고 평영을 배워야 하는데 말이다.
킥판 잡고 팔 돌리기를 하니 팔을 앞으로 쭉 뻗는 느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느낌을 잘 기억하자. 한 바퀴 반을 돌고 나니 선생님이 킥판 없이 네 바퀴를 더 돌라고 하셨다. 왕초보 분들이 연습하는 구간을 제외하면 세 바퀴 정도만 도는 격이다. 남자분을 앞질러 갔다. 쉬지 않고 왕복으로 다녀와도 많이 힘들지 않았다. 선생님의 틈새 지적이 들어왔지만 “왜 또 이렇게 하느냐”라는 인트로 외에는 제대로 요점을 알아듣지를 못했다. 아마도 팔 돌리기의 방향과 각도에 대한 지적 같았다. 지난번에 이해한 대로 엄지 손가락이 먼저 출발해야 한다는 것과 팔이 너무 뒤로 빠지지 않게 하는 것에 유념하면 대충 맞겠지 싶어서 그렇게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마지막까지 돌고 돌아오니 선생님은 내가 오른팔을 물속에서 끝까지 밀어내지 않아서 몸이 계속 가라앉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것을 의식하며 연습할 시간은 없었다.
바로 배영 발차기 연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어서 배영 발차기. 팔과 어깨가 조금 뻐근해 와도 팔을 쭉 뻗어서 귀 뒤에 바싹 붙이지 않으면 속도도 나지 않고 몸도 많이 가라앉는다. 배영 발차기를 제대로 하면 팔을 아무리 이상하게 해도 물 먹을 일이 없다는 다른 요일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발차기를 충분히 세게 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배영 팔 돌리기 연습은 폭망이었다. 연습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은 팔 돌리기가 물음표를 그리는 형태여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오래전 내가 배영을 배우기 전 엿들었던 설명과 같은 것이었다. 태극무늬의 S자처럼 머리 뒤쪽에서 살짝 곡선을 그리다가 방향을 살짝 틀어 허벅지로 도착해야 한다. 이때 손목은 절대 꺾이지 않으며 손바닥은 늘 발이 있는 방향을 봐야 한다. 손날이 물을 베는 게 아니라 손바닥으로 물을 밀어내는 것이다. 또 배영은 엉덩이를 위로 들어 올려서 움직여야 한다는 설명도 있었다.
그 S자를 유념하며 팔 돌리기 연습을 시작했다. 머리가 잠기지 않도록 어깨 롤링에도 한껏 신경을 썼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지난주보다 더 많은 물을 코로 들이켜게 됐다. 약간만 들어간 거라면 머금고 있다가 배수로에 고개를 숙여 그대로 흘릴 수 있는데,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가다 보니 물이 코 뒤로 넘어가 식도를 타고 들어가 버렸다. 깊은 곳에선 발이 닿지 않으니 함부로 멈출 수도 없고 난감해하길 반복했다. 그래도 세 바퀴는 돌았다. 중간에 시계를 보니 10분도 남아 있질 않았다. 아 오늘도 평영 배우긴 글렀구나, 했다.
세 바퀴를 도는 내내 선생님이 다른 분들만 지적하셔서 나는 괜찮게 하고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돌아오니 “‘왜 또’ 팔을 뒤로 돌리냐”는 지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발차기는 왜 멈추냐고 하셨다. “제가 발차기를 안 했나요?ㅎㅎㅎ” 발차기는 신경도 못 쓰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선생님 말이 맞는 듯해서 그저 웃었다. 선생님은 나를 지상으로 부르셨다. 팔의 방향을 다시 다잡아 주셨다. “누가 이렇게 하래요?” 지나가는 말에, 나는 토요일 선생님이 팔을 뒤로 보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금 선생님이 알려준 S자도 분명 뒤쪽인데, 왜 다시 뒤가 아닌 옆으로 하라고 말을 바꾸시는 거지?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선생님이 핸즈온으로 잡아주시며 설명하는 걸 다시 들으니, 내가 생각하는 뒤가 선생님이 말하는 옆이었다. 머리보다 살짝 뒤로 가는 것이 옆으로 가는 것이고, 나는 그것보다 훨씬 과도하게 뒤로 팔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내 어깨가 유연한 게 일차 문제인데, 고개가 잠기지 않으려고 어깨 롤링을 열심히 하려다가 더 뒤쪽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러곤 물속에 있던 남자분까지 물 위로 소환하시더니 평영을 배우자고 하셨다. 내가 다음 시간에 같이 평영 배워요! 라며 용기를 건넸던 여자분은 탈락인 건가? (그분은 이미 옛날에 평영을 배우셨는데.. 당황..) 남자분은 야호! 또는 아싸! 를 외치며 드디어 평영을 배운다고 눈에 띄게 좋아하셨다.
유아풀에 다리를 담그고 기다리니 선생님이 오셨다. 평영을 배울 수 있는 수업 시간은 얼마 남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너무 더러워서 절대 접촉하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한 그 거대한 분홍색 스티로폼을 바닥에 깔고는 남자분을 부르셨다. 그분을 엎드리게 한 뒤에 다리를 돌려 모양을 만들어주면서 평영 발차기의 기본 원리를 알려주셨다. 자유형 배영과는 다르게 어떤 것이 작용한다고 설명하셨는데 동작을 쪼개서 외우는 데 집중하느라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 자유형 배영은 발등 힘으로 움직이지만, 평영은 발목의 안쪽 복숭아뼈 라인을 사용한다고 하셨다.
일단은 11자로 누워 턴아웃을 한 다음, 발목을 꺾은 채로 시작한다. 원래는 발등을 펴서 시작하는 게 맞지만, 그렇게 시작하면 잘못된 습관이 생길 수가 있어서 발목은 무조건 꺾어서 시작해서 꺾은 채로 들어오기로 했다. 발가락도 활짝 들어야 한다. 발목을 엉덩이 가까이로 가져오면서 발가락과 발목이 몸 바깥쪽을 향하게 한다. 거기서 발목 안쪽 힘으로 뻗으면서 원위치, 이때 차는 느낌을 낸다.
나도 매트에 누워서 몇 번 반복을 했다. 선생님이 발목을 꾹 누를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무릎인대가 짧아서 그런 거라고 무용 선생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내 다리가 짧아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정보 공유 차원에서 이 선생님께도 무릎이 아프다고 말씀드렸더니, 무릎이 안 좋냐며 자기가 눌러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내가 매트에서 근육에 강제 움직임 주입을 당하는 동안 남자분은 물에 다리를 담그고 앉은 자세로 발차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나도 매트에서 일어나 물속에서 연습을 해보려고 하니, 선생님은 다시 나와서 벽을 잡고 왼발만 해보라고 하셨다. 그분과 내가 둘 다 잘 돌리는 편이라고 하셨는데, 반복 연습을 해봐도 감이 잘 오진 않았다. 오른발로 해보는 동안에도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체육 교과서나 영상을 미리 찾아봤음에도 어색함은 가시질 않았다. 여기까지 배웠을 때 메인 풀에서는 마무리 체조가 끝나고 해산 분위기였다. 나는 유아풀에 들어가서 엎드려서 두 발을 동시에 움직이며 연습해 봤다. 영 어색한 움직임이다. 그런 만큼 더 빨리 익히고 싶었다. 집에 가서 지상 연습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레인으로 넘어간 분들도 불과 몇 주 전에 평영 팔을 배우셨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어 본다.
나오면서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지름길이었다.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닐까 싶어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길이 임시로 막혀 있어 차가 다니진 않고 주차 용도로만 사용되는 기다란 도로였다. 어릴 땐 새롭고 신기한 골목을 다녀보는 걸 즐겨했는데, 점점 꽉 막히고 도전을 사리는 사람이 됐다. 그것 말고도 새로운 자극이 늘 많이 때문일까. 내일부터는 이 길로 들어와야겠다. 어설픈 인도를 달리는 것보다 3분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렌다!
일부러 끼니를 거르고, 비몽사몽으로 이걸 써놓고 잠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근처 학원에 무용 수업을 등록하러 갈까 말까 두어 시간 고민을 하다가 귀차니즘에 완패하곤, 바로 다시 잠이 들었다. 아주 깊은 잠에 빠졌는데,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럼 얕은 잠인데, 몸은 천근만근이다. 결국 평영 지상 연습 방법은 찾지도 못한 채 하루가 다 가버렸다. 내일도 수영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