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교훈은 반면교사다. 사람의 좋은 점을 보면 그것을 닮으려 하면 된다. 사람의 나쁜 점을 보면 그런 점이 나에게선 머물지 못하도록 끝없이 각성하면 된다.
자유형 발차기 하나, 평영 발차기 둘로 시작. 오늘은 드디어 하이 엘보, 팔꺾기를 배웠다. 오랫동안 혼자 궁금해했던 팔꺾기. 킥판을 잡고 오른팔만 팔을 꺾어서 물을 잡고, 골반 옆에선 팔을 뻗고, 다시 팔꿈치를 들어 올려 산을 만들고, 물을 스치며 입수하기. 매우 느리게 분절해 가며 움직였다. 이게 되긴 되는 건가? 팔뚝이 아파왔다. 두 바퀴를 돌고 왔다. 선생님은 “잘 돼요?”라고 묻곤 나의 어리둥절한 침묵에 “잘 안 되는 것 같던데?”라며 한 바퀴 더 돌라고 하셨다. 세 바퀴를 채우고 나선 왼팔도 해보라고 하셨다. 여전히 킥판은 잡은 채. 두 바퀴쯤 돌고 나선 킥판 없이도 두 바퀴 더. 팔을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쓰다 보니 아주 느리게 움직이는 고래가 된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긴 하는데 매우 유유자적한…. 선생님은 나더러 팔이 “아주 엉망”이라고 하셨다. 산을 만들라고 했는데 왜 만들지 않냐며.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는데, 그렇게 화만 내면 어쩌라고.
같이 듣는 분 중에 입수 전 샴푸와 샤워를 하지 않는 분은 다른 요일 선생님은 어떠냐며 하필 선생님이 옆에 서 계신 근처에서 물었다. 예의가 없음과 규칙을 지키지 않음과 눈치가 없음은 모두 한통속인 것 같다. 나처럼 매일 하면 힘들 것 같다며, 내가 젊어서 가능한 것 같다는 첨언은 그 사람이 얼마나 꼰대인지도 잘 깨닫게 한다. 여러모로 내가 싫어하는 최악의 인간 유형이다. 그분이 씻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부터 정이 떨어져선 일부러 눈길을 주거나 말을 섞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굳이 정을 줄 이유가 없다. 나이를 그렇게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중간부터 힘들다고 걷기나 하고. 그것도 한 달 내내. 옆에서 70대 할아버지도 쉬지 않고 못하는 걸 개선하려고 저렇게 열심히인데, 나이 탓이나 하고 있고. 짜증이 난다.
자유형 두 바퀴를 얼른 하고 배영 두 바퀴도 얼른 했다. 배영을 할 때는 팔을 더 쭉쭉 뻗으며 길게 하라는 코멘트가 있었다. 배영까지 하고 나선 끝날 때까지 평영을 하라고 했는데,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짜증이 났다. 표현은 안 했지만.
평영을 한 바퀴 반 정도 하고 나니 수업이 끝났다. 마무리 체조를 한 뒤에 평영 연습을 더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다가와선 또 화를 냈다. 왜 다리를 접어서 기다리지 않느냐, 다리를 왜 띄우냐, 뭐 그 전날에도 들었던 내용이다. 동영상 보지 않았냐며. 그걸 본다고 바로 개선하면 내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됐게? 참는데도 한계가 있을 터다. 오늘은 그냥 웃으며 지나쳤다. 다음엔 말을 할까? “계속 그렇게 화를 내시면 저도 어쩔 줄을 모르겠네요.”
탈의실에서 또 그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얼른 배워서 옆 레인으로 넘어오라 하신다. 서로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이야기하다가 나는 선생님이 화가 많으신 것 같다고 말을 꺼냈다. 할머니는 열정이 많아서 그래, 하며 웃으셨다. 여유로운 노년의 시각. 나는 접영은 팔까지 이제 다 배우신 것 아니냐며 물었다.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못해서 야단만 맞았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멋진 매홍색 방수 점퍼를 두르시곤 센터를 떠나셨다.
밤이 되어 생각할수록 더 열받고, 화가 난다. 화에는 화지. 화내는 데 꽃 피겠냐. 지금은 수업을 등록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접영도 배우기 싫어졌다. 수영 다녀와서 무용 수업도 듣고 낮잠도 충분히 잤는데, 이런저런 일정에 집중하느라 잠시 덮어놨던 감정이 치밀어올라 큰일이다. 마인드 컨트롤, 이미 잘하고 있지만, 휴. 불평불만으로 일기를 가득 채우게 되어 유감이다.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지나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