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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테네리페로 출발!

"너는 이번여행에서 일체의 경비도 필요하지 않단다."

by 혜연

2022년 5월 28일. 시부모님과 카나리아제도로 휴가를 떠나는 날이 왔다!

시부모님께서는 나를 픽업하러 아침 일찍 우리 집에 들를 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차에 시부모님의 짐을 싣는 걸 도와드리고 싶어 시댁으로 캐리어를 끌고 갔다. 이번여행의 콘셉트는 나에게 있어, 일명 꽃보다 시부모님. 그리고 나는 자칭 짐꾼이자 포토그래퍼가 될 예정이었다.

시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한 시간 반정도 걸리는 룩셈부르크를 향해 출발했다. 낭시에서는 룩셈부르크 공항이 가장 편리하다. 차 안에서 어머님께서는 본인의 면허증을 놓고 오셨다며 나직하게 비명을 지르셨는데 테네리페에서도 시아버지께서 독점기사로 낙찰되시는 순간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프랑스 면허증도 유럽에서 통용이 된다고 하셔서 일단 렌터카 찾을 때 같이 등록하기로 했지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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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룩셈부르크 공항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그간 억눌려있던 여행충동들이 한 번에 터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인파에 이리저리 치이고 다녔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연신 기분이 좋으셨다. 서비스만족도를 조사하는 머신이 보일 때마다 최고만족을 눌러주는 걸 잊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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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항 ATM기에서 현금을 조금 뽑았는데 어머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 여행에서 너는 초대받은 사람이야. 그러니까 경비는 너에게 일체 필요치 않단다."

실제로 여행 중에 식사나 음료를 계산하려고 몇 번 시도를 했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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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항 카페에서 느긋하게 간식을 먹고 음료를 마시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창가, 가운데에는 시아버지, 그리고 복도석에는 어머님께서 않으셨다. 기내식 먹을 때 가끔 뚜껑이나 비닐봉지를 개봉하는 게 어려워 보이면 내가 미리미리 아버님 것도 열어드렸다. (아버님은 왼팔, 왼다리에 장애가 있으시지만 지팡이도 없이 평생 일반인과 다름없이 살아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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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스에어 기내식.

별것도 없는데 왜 이리 맛있지? 치즈랑 버터, 후식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고 베일리스까지 한잔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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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정도 비행했을 때 어머님께서 창밖을 가리키시며 테네리페섬이 보인다고 알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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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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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리페공항에서 입국심사는 따로 없었고 미리 등록한 코로나 백신 관련 서류만 확인하는 절차만 있었을 뿐이다.

대신 사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내가 별생각 없이 병아리처럼 시부모님만 졸졸 따라가고 있을 때 중년의 공항 여직원이 손가락으로 나를 콕 집으며 큰소리로 "당신! 당신은 저쪽으로!" 하고 다급하게 외치는 게 아닌가!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우리는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께서는 "울랄라 인종차별!"이라고 꽤 큰소리로 말씀하셨는데 정작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새로 안내받은 곳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라서 좋았던 것이다. 유럽연합과 나머지 국적의 줄이 달랐던 것 같은데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동양계 유럽국적자일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큰소리로 사람들 앞에서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지적한 행동은 인종차별이고 무례한 거라고 하시며 불쾌해하셨다. 제 대신 화내주시는 어머님이 계셔서 저는 그저 든든합니다!


그래도 렌터카를 찾아 공항을 빠져나왔을 땐 앞으로 일주일간 펼쳐질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모두 즐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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